생각의 융합 - 인문학은 어떻게 콜럼버스와 이순신을 만나게 했을까
김경집 지음 / 더숲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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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345).



지금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인문학 열풍'의 실상은 '인문학 빈곤'을 확인하는 반증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문학의 위기가 곧 우리의 위기라는 것은 간파했지만, 우리는 이미 그것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방법조차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 열풍이 구호와 선언에서 그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대중에게 말을 걸어오는 김경집 선생님은 '다시 시작하는 인문학'의 최선봉에 선 선구자적인 인문학자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인문학은 밥이다>에서는 인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명쾌하게 정의했다면, 이번 책 <생각의 융합>에서는 인문학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인문학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를 보여주는 모범, 시범이라고 할까요.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아, 인문학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왜 인문학을 해야만 하는지 인문학이 가진 힘과 당위에 설득 당하고 말 것입니다.


<생각의 융합>은 동과 서의 역사를 종과 횡으로 넘나들며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는 역사 의식과 안목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이러한 고찰과 통찰은 이야기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기도 하는데, 우리 삶과, 아니 나의 삶과 상관 없을 것 같은 콜럼버스와 이순신, 코페르니쿠스와 백남준, 에밀 졸라와 김지하, 호메로스와 제임스 조이스, 히딩크와 렘브란트, 나이팅게일과 코코샤넬, 두보와 정약용, 그리고 김수영 등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물어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도록 만듭니다. 그것은 시대를 읽으라는 요청이기도 하며, 외면하지 말고 끊임없이 현재를 느끼라는 강제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감각과 고민이 미래의 방향을 제시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의 융합>은 동서양의 특정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과학과 예술, 정치와 인권, 신화의 문학적 재생산, 시대를 극복한 '자유로운 개인', 전쟁과 여성해방, 역사를 가로지르는 시적 감흥이라는 주제를 다루는데,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백남준 예술의 의미와 가치였습니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라고만 알고 있었던 제 지식이 천박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백남준은 단순한 비디오 아티스트가 아니라, 미술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세계인이었습니다. 김경집 선생님은 백남준을 "예술에 대한 근원적 정의를 바꿔놓았고 표현의 범위를 혁명적으로 확대"(108-109)한 예술가라고 평가합니다. TV라는 새로운 캔버스에 주목한 백남준은 "이전까지의 미술에서 꿈도 꾸지 못했던 '시간과 동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111) 혁명적인 예술가였다는 것을 이제라도 알게 되어 참 다행입니다.


가장 많은 생각과 고민을 던져준 주제는 정치와 인권, 바로 "에밀 졸라와 김지하" 이야기입니다. 정치는 우리 삶의 방식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 국가주의를 내세우지만 사실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국가가 아니라 권력이었다는 걸 목격하며, 진짜 중요한 가치를 잃을 때 기득권자는 어디까지 악랄해질 수 있으며, 인간의 가치는 어디까지 퇴보할 수 있는지, 그리고 개인의 삶은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고 있는 우리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냉혹할 정도로 철저했던 프랑스의 결단과 "자신들의 자유가 소중한 만큼 다른 이들의 자유도 존중할 줄 알고 공존의 지혜를 모색했던" 네덜란드의 관용의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생각의 융합>은 단순한 역사, 단순한 시사가 아니라, 인문학을 통해 문화와 역사, 배경과 맥락을 정확히 짚어내고 분석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래야 창조와 융합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을 하는 방법을 시범보임으로 인문학이 가진 힘이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생각의 융합>은 "인문학의 근간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가치에 대한 재발견"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예절과 배려, 사랑과 존중,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이러한 인문학적 기준에서 보면 지금 우리의 교육은, 우리의 삶은 얼마나 천박한지요! 지금 우리의 삶이 얼마나 천박한지 깨닫지 못한다면, 그 천박함을 벗어버리려는 노력조차 하지 못하겠지요? 바로 그 천박함을 깨닫게 해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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