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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개의 관 - 최신 원전 완역본 ㅣ 아르센 뤼팽 전집 9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평점 :
"보르스키, 왕의 아들인 너는 친구의 손에 죽을 것이며 네 아내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리니"(15-16).
명탐정의 대명사 <셜록 홈즈>에 대중들이 그토록 열광한 것은 그가 과학수사의 포문을 열였기 때문이랍니다. 당시만 해도 아직 미신과 주술이 지배적인 분위기였는데, 방대한 양의 백과사전적 지식과 비상한 추리력을 자랑하는 셜록 홈즈는 본격적으로 과학시대의 태동을 알린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추리과학의 진수를 보여주며, 범죄 수사를 과학의 경지에 올려놓은 전설이 되었습니다. 그보다 늦은 시기에 활동한 <아르센 뤼팽>은 시대적인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셜록 홈즈>와 오버랩되는 면이 많습니다. 이미 과학시대에 접어 들었지만 아직 남아 있는 미신의 잔재를 이 <서른 개의 관>이라는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른 개의 관>은 비극적인 가정사에서 시작됩니다. 1902년 6월 어느 날, 친구들 사이에서 미녀로 통하던 베로니크가 납치 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베로니크는 아버지 데르주몽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왕족이라고 주장하는 납치범 보르스키 백작과 결혼을 감행합니다. 마지못해 결혼을 승락하기는 했지만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복수하겠다고 먕세한 데르주몽은 자기 딸과 보르스키 사이에서 태어난 손자를 납치하는데, 곧 둘은 요트 사고로 죽었다고 알려집니다. 두 사람이 익사했다는 증언을 전해들은 베로니크는 그 길로 수녀원에 들어가버리고 맙니다(9-10).
그리고 14년 후, 베로니크는 14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자신의 서명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 서명을 추척하다 "서른 개의 관"이란 별명을 가진 "사레크 섬"까지 들어오게 됩니다. 베로니크는 아버지와 아들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벅찬 가슴으로 사레크 섬으로 향하는데, 사레크 섬은 온통 수세기 전의 예언에 의해 역사와 삶을 지배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전해내려오는 드루이드교의 기묘한 예언은 "서른 개의 관"과 "십자가에 매달린 네 명의 여자", 그리고 기적의 돌이라 불리는 "신의 돌"과 관련된 예언이었습니다. 예언된 대재앙이 일어나는 시점은 1917년이었고, 베로니크가 사레크 섬을 찾은 해가 바로 1917년이었습니다.
베로니크가 섬에 도착하자마자 느닷없이 시작된 광기 어린 살육, 대재앙의 시작을 알리는 데르주몽의 죽음, 극도의 공포에 제정신을 잃고 끔찍한 악몽에 사로잡힌 채 날뛰는 사레크 섬 사람들! "베로니크를 괴롭히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은 누구인가? 대체 누가 "서른 개의 관"이라는 예언대로 사레크의 관 서른 개를 채우려고 기를 쓴단 말인가? 누가 이 가련한 섬 주민을 깡그리 죽이고 있단 말인가? 여자들을 십자가에 매다는 그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뒤에 자리 잡은 극악무도한 목적은 무엇인가?"(122)
미개한 시대의 광기와 무질서한 혼돈, 기괴한 발작 현상, 야만적인 범죄 행위 한복판에서 아들 프랑수아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베로니크, 그녀는 대재앙이 시작된 사레크 섬에서 무사히 아들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모든 게 밝혀질 거야... 이런 잔혹한 수수께끼 뒤에는 사실 아주 단순한 원인이 있을 테지. 겉보기에는 초자연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랑 똑같은 인간이 계획적으로 저지른 범죄일 뿐이라고. 모든 일은 분명 전쟁이 일어났기에 가능했던 거야. 전쟁은 이런 일이 벌어질 만한 독특한 환경을 만드니까 말이야. 그래봤자 결국 일상의 법칙을 벗어난 것도, 신기할 것도 하나 없어"(122).
황당무계한 전설적인 요소로 가득하지만, 괴도 신사 뤼팽의 눈부신 활약으로 엄연한 현실에 바탕을 둔 사건의 전말이 시원하게 밝혀집니다. <서른 개의 관>은 "전쟁으로 인한 광기와 방황의 시대"를 상징하는 괴물 같은 악인과 순수한 영혼, 초자연적인 기적과 자연과학의 한판 대결이기도 합니다. <서른 개의 관>에서도 뤼팽은 여전히 이 세상에 없는 인물이지만(전작에서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뒤), 순수의 절정체 꼬마 영웅 프랑수아는 "위험이 닥쳐 필요한 순간이 오면 아르센 뤼팽이 기적처럼 자기를 구하러 오리라 확신"(174)을 가집니다. 손을 씻기라도 한 듯, 언제부터인가 도둑질을 잠시 접어둔 우리의 뤼팽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 없이 나타나는 홍반장"로 거듭나는 분위기입니다.
전설과 예언의 신비, 증오와 광기의 폭발, 그리고 과학에 대한 예찬으로 아르센 뤼팽 시리즈 중 가장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서른 개의 관>에는 또하나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독특한 존재가 등장합니다. 바로 "만사사형통"이라는 이름을 가진 귀여운 강아지의 활약이 그것입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앞길을 인도하듯 우리 앞에 나타나는 "만사형통"의 활약, 기대해도 좋숩니다! 만나보시면 "만사형통"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