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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마개 - 최신 원전 완역본 ㅣ 아르센 뤼팽 전집 5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평점 :
"뤼팽은 이번 모험이 처음부터 심상치 않은 위험에 부딪혔음을 알았다. 그동안 사회 전체를 상대로 벌여온 뤼팽의 격렬한 싸움은, 새롭지만 끔찍한 단계를 맞이한 듯했다. 방향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뤼팽이 그토록 분노하는 살인사건인 데다 의심스러운 호화 생활자나 부패한 재정가를 골탕먹여 사람들을 통쾌하게 해 여론의 지지를 받는 유쾌하고 시원한 도난 사건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덧붙여 이번 모험에서 뤼팽은 누군가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방어하는 동시에 심복 두 명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32).
<수정마개>는 지금까지 읽은 뤼팽 시리즈 중 가장 답답한 에피소드였습니다. 뤼팽은 부하들이 준비한 작전을 실행에 옮기며 알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힙니다. 엄청난 자산가인 도브레크 의원이 별장을 비운 사이 그의 별장을 털기 위해 잠입한 뤼팽 일당은 하인 한 명이 별장에 남아 있는 것을 알고 당황합니다. 재빨리 그를 제압해 꼼짝 못하도록 묶어 놓았지만 뤼팽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뿐만 아니라, 물건을 훔치는 동안 뤼팽의 부하 질베르와 보슈레이가 매우 수상쩍게 행동하는 것을 눈치챈 뤼팽은 더욱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에 떠밀립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별장에서 총소리 한 발과 고통에 찬 비명이 들려오고, 피를 끔찍히 싫어하는 뤼팽은 자신의 부하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분노를 쏟아냅니다. 하얗게 질린 질베르는 하인 레오나르를 죽인 것은 동료 보슈레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뤼팽 일당은 모두 체포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궁지에 몰린 대장 뤼팽은 두 부하를 반드시 탈옥시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홀로 달아납니다.
이 날 밤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제 뤼팽은 살인자에 피 냄새가 나는 야수, 부하들을 단두대에 대신 올리고 자신은 어둠 속에 숨어버린 비겁한 인간이 되고 맙니다. 뤼팽이 신출귀몰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조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크게 한몫했습니다. 뤼팽은 홀로 움직이지 않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의 보스였습니다. 조직의 탄탄한 공모가 없었다면 그렇게 신출귀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부하 중에서도 정예 그룹에 속하는 두 요인이 교수형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궁리하던 뤼팽은 별장을 털던 날 밤, 두 부하의 행동이 수상쩍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냅니다. 질베르와 보슈레이가 도브레크 의원의 별장에서 진짜 찾아내려고 했던 것은 '수정마개'였으며, 뤼팽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수정마개가 두 사람에게 매우 큰 가치를 지닌 물건임을 확신합니다. 이 알 수 없는 문제를 풀기 위해 이번 사건에서 집중적으로 생각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수정마개라는 것을 직잠하고 수정마개의 원래 소유자 도브레크 의원을 주목하기 시작하는데 ….
뤼팽은 아는 것 하나 없이 치열하기 그지 없는 한가운데 던져졌는데, 그는 싸우는 두 패가 어떤 입장이고 어떤 무기를 가졌으며 어떤 비밀 계획을 세웠는지도 모른 채 알 수 없는 싸움에 끼어든 셈입니다. 그동안 뤼팽은 자신이 연출한 연극 무대의 배우처럼 활동하며, 관련 인물들마저도 그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배우로 만드는 힘이 있었는데, <수정마개>에서는 자신을 가지고 노는 미지의 인물에게 계속해서 농락 당하기 일쑤입니다. 농락 당할 때마다 뤼팽은 입에 거품을 물며 분노했지만, 새로운 적수의 힘과 능수능란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뤼팽>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다채로운 캐릭터의 항연에 경탄하게 됩니다. 작가 모리스 르블랑을 "캐릭터 제조기", "캐릭터 제조의 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역시 주인공 '뤼팽'이겠지만요. 계속해서 당하고 헤매는 뤼팽 때문에 뤼팽만큼이나 독자들도 답답할 지경인데, 위기의 순간에도 감미로운 사랑의 감정에 젖어드는 못말리는 뤼팽의 엉뚱한 매력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