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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 - 최신 원전 완역본 ㅣ 아르센 뤼팽 전집 4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평점 :
"하지만 이번에는 공포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르센 뤼팽이 사람을 죽였다. 그때까지 영웅적 미담처럼 전해오던 뤼팽의 신사적이며 때로는 감상적이까지 한 모험가의 이미지는, 그 야만적이고 잔혹하며 냉혹한 살인 사건으로 비인간적이고 피에 굶주린 야수의 형상으로 한순간에 추락해버렸다. 대중은 섬세한 기품과 기발한 재치를 지닌 뤼팽에게 그토록 열광했던 만큼 이제는 과거 자신들의 우상이었던 뤼팽을 증오하고 두려워했다"(73).
괴도신사 뤼팽이 또따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3권 <기암성> 이후, 돌연 자취를 감추었던 뤼팽이 4년만에 되돌아온 것입니다. 대중은 이를 두고 아르센 "뤼팽의 부활"이라고 불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뤼팽이 죽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뤼팽의 이번 재등장은 대중을 경악케 했습니다. 다이아몬드의 왕이라 불리는 억만장자 케셀바흐 살인사건 용의자로 뤼팽이 지목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상천외하고 신출귀몰하며 예축할 수 없는 대담무쌍함으로 사회와의 무지비한 결전을 벌였던 도둑이지만, '신사적인 행동'으로 영웅대접을 받아왔던 뤼팽이 잔혹한 살인마로 돌아오다니! 뤼팽에게 열광했던 대중들의 열기는 이제 증오심으로 돌변해버렸습니다.
과연 뤼팽은 억만장자 케셀바흐를 정말 살해했는가? 뤼팽이 범인이라면 그는 왜 케셀바흐를 죽었는가? 만일, 뤼팽이 아니라면 진범은 누구이며,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단서를 세 가지입니다. 담배갑과 L과 M이라는 머리글자, 그리고 호텔 관리소에 버려진 옷 꾸러미(148).
케셀바흐 살인사건을 맡은 "르노르망" 국장은 뤼팽은 살인범이 아님을 확신하는 가운데 사건을 풀어가고, 뤼팽은 다이아몬드의 왕 케셀바흐가 감추고 있는 비밀에 다가가기 시작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케셀바흐 살인사건은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케셀바흐가 그토록 흥분하며 감추고 있는 정체불명의 엄청난 계획은 무엇이었는가? 그가 애타가 찾고 있었던 '피에르 르뒥'이라는 부랑자는 누구인가? "813"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 라벨과 대문자로 "APPON"이라 인쇄된 글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물이라고나 할까... 의지와 능력이 있고... 행동력이 있는 사람... 내 의지에는 한계가 없고... 내 능력에도 한계가 없지. 나는 이 세상 최고의 갑부보다 더 부자네. 그자이 재산이 곧 내 재산이니까. 난 이 세상 최고의 권력자보다 더 강한 권력자. 그자가 나를 위해 그 권력을 사용할 테니까"(141).
<아르센 뤼팽 전집> 4권 <813>에서 뤼팽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에 자주 노출되지만, 또 그만큼 넘치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극적으로 나서고 통쾌한 승리를 거두는 삶을 사랑하는 뤼팽은 때로 지나친 자만심을 내비치는데, 시시때때로 스스로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이 남자 때문에 제 얼굴이 다 붉어질 지경입니다. "뤼팽은 자신의 능력과 지혜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 순간 생생히 절감할 수 있었다"(371). 작가는 왜 타인의 입을 통해 뤼팽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고, 뤼팽 스스로 자신에게 자화자찬을 하게 만들었을까요? 들어주기 민망할 정도로 과도하다 싶습니다.
"이 사건은 광기에 의한 범죄다"(543).
그럼에도 불구하고 <813>은 "치밀한 수법, 넘치는 활력, 번뜩이는 재기의 대명사"로 통하는 뤼팽과, 뤼팽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는 듯 매번 뤼팽보다 한 발 앞서며 뤼팽의 뒤를 밟는 미지의 인물,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괴물 같은 살인자와의 한 판 대결이 흥미진진한 작품입니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사사로운 이해나 시시한 도난, 하찮은 사적 감정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서구의 세 강대국(프랑스, 영국, 독일)이 정치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협할 수도 있는 세계적인 사건입니다. 그야말로 뤼팽은 여러 제국의 운명과 세계 평화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물급 괴도로서 그 존재감을 빛냅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나 드라마로 뤼팽을 만난다면 뤼팽과 같은 '괴도'의 삶을 동경할 어린이들도 있지 않을까 염려스러울 정도입니다!)
현대 과학수사에서는 통하지 않는 수법도 등장하지만, 도대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대담무쌍한 뤼팽의 활약과, "맹목적으로 광기에 사로잡혀 있을 때조차 명석하지 그지 없는 기묘한 정신병자"와의 대결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813>. 마지막 예상치 못한 반전에 뤼팽은 넋이 나가고 말지만, 오히려 <뤼팽> 덕분에 이런 소설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곳곳에 숨어 있는 반전의 단서들을 쉽게 눈치챌 수도 있겠습니다. 신사라기보다 '괴짜' 같은 영웅 뤼팽의 활약상, 4권에서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