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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성 - 최신 원전 완역본 ㅣ 아르센 뤼팽 전집 3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평점 :
헐록 숌즈의 라이벌, 천재 소년 탐정 보트를레의 등장!
"모든 점에서 보트를레가 앞서 확신한 내용이 실제와도 들어맞았다. 뤼팽으로서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제대로 만난 셈이다"(163).
1권에서 괴도 신사 뤼팽의 탄생을 알리고, 2권에서 오랜 숙원이었던 듯, 곧바로 영원한 맞수, 아르센 뤼팽과 헐록 숌즈의 맞대결을 그린 작가는, 이제 몸풀기는 모두 끝났다는 듯, 아르센 뤼팽을 주인공으로 한 본격적인 추리문학의 대서사를 시작합니다.
긴 호흡의 이 장편은 앙브뤼메지 수도원장들이 대대로 살았으나 대혁명 당시 파괴되었다가 20년 전부터 새로운 주인, 제스브르 백작이 복구한 대저택에서 시작됩니다. 모두가 잠든 이 고성에 어느 날 밤, 의문의 소리가 들려오고 백작의 조카 레이몽드와 백작의 딸 쉬잔이 불안과 공포에 떨며 백작의 침실로 향하는 가운데 백작의 비서 장 디발이 살해 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레이몽드는 달아나는 범인을 쫓으며 장총을 조준해 방아쇠를 당기는데, 도망치던 남자는 총상을 입고 쓰러집니다. 레이몽드는 하인들과 함께 도주로를 막으며 총상을 입은 남자를 쫓아가지만, 도망갈 곳이 전혀 없는 곳에서 총상을 입은 남자는 마부용 가죽 모자 하나만을 남겨 놓은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레이몽드와 쉬잔은 지난 밤, 분명 뒤 남자가 꽤 무거운 것을 들고 정원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정작 제스브르 백작의 대저택에서는 도난 당한 물건이 없고, 홀연히 자취를 감춘 남자를 추적하지만 도망칠 곳이 전혀 없는데도 끝내 추적이 실패하고 맙니다. 그런데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들 사이에 우연히 함께했던 '보트를레'라는 수사학급 학생은 이번 사건은 너무 뻔해서 금방 결론을 지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애송이에 불과한 한 소년이 수수께끼의 답을 찾았다고 하니 모두가 경악하는 가운데, 이 당돌한 소년은 도난 당한 물건은 없지만 도난 당한 물건이 무엇인지, 살인범은 체포되지 않았지만 살인범의 이름은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이 천재 소년은 총상을 입고 사라진 남자가 바로 아르센 뤼팽임을 확신하고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합니다.
보트를레는 가히 헐록 숌즈의 라이벌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논리적인 분석과 절묘한 추리력으로 미궁의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데, 가니마르 형사나 숌즈도 어린아이를 다루듯 가지고 놀았던 아르센 뤼팽도 보트를레가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간파하고 필사적인 결투를 벌입니다. 순수한 보트를레가 정의의 편에 있어도 독자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괴도 신사 뤼팽을 응원하게 되는 아이러니에 빠져들게 되는 것도 이 대결을 읽는 묘미일 것입니다.
<기암성>은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하나의 거대한 대서사를 완성해나갑니다. 미친 존재감을 자랑하는 보트를레의 등장으로 헐록 숌즈는 단역에 불과한 조연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지만, 순수해서 더 강할 수 있는 보트를레의 활약이 이야기에 막강한 긴장감을 불어넣습니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굉장히 스케일이 큰 영화가 될터인데 프랑스와 영국의 역사를 알고 있다면 더 흥미진진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특별히 <기암성>에서는 사랑에 빠진 뤼팽의 수순한 모습과 감추어진 사생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하나 뤼팽이 신출귀몰할 수 있는 이유는 그에게 조력자들이 있기 때문에, 혼자 활동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뤼팽의 수법도 실체를 드러냅니다.
<기암성>은 왜 아르센 뤼팽 시리즈가 추리문학의 고전 명작으로 칭송받아오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최고 추리문학가들도 모리스 르블랑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