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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 - 최신 원전 완역본 ㅣ 아르센 뤼팽 전집 2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평점 :
영원한 맞수, 아르센 뤼팽과 헐록 숌즈의 본격적인 맞대결!
어떤 창이든 다 막아내는 방패와, 어떤 방패든 단번에 뚫을 수 있는 창의 대결을 모순(矛盾)이라고 합니다. <아르센 뤼팽 전집 2권>에서는 모순(矛盾)과 같은 대결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영원한 맞수, 명탐정 헐록 숌즈와 신출귀몰하는 괴도 뤼팽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맞붙습니다. 뤼팽의 뒤를 쫓는 숌즈가 공격하는 창이라면 숌즈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는 뤼팽은 방어하는 방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한 고물상에서 시작됩니다. 베르사유 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제르부아는 고물상에 잔뜩 쌓인 물건들 틈에서 딸 쉬잔의 생일선물로 딱 좋은 자그마한 마호가니 책상을 찾아내고 흡족해합니다. 마침 한 젊은이가 쫓아와 두 배의 값을 줄테니 그 책상을 되팔라고 간청을 해도 제르부아는 딱잘라 거절합니다. 책상이 배달되자 딸 쉬잔은 뛸듯이 기뻐하는데, 다음 날 오전 쉬잔의 방에서 끔찍한 비명이 들려옵니다. 책상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도둑은 그 어떤 귀중품에는 손도 대지 않고 오직 그 마호가니 책상만 들고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두 달 후, 제르부아는 자신이 100만 프랑이라는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복권이 어디에 있더라?" 복권은 도둑맞은 그 책상 속에 있었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행운과 재앙이 동시에 일어나자 폭발 직전이 된 제르부아는 그 100만 프랑짜기 복권이 아르센 뤼팽의 손에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제르부아와 아르센 뤼팽이 서로 당첨금을 차지하려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새로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한 남작이 의문의 살인을 당하는데, 푸른 다이아몬드를 훔치려고 살인까지 저지른 범인은 정작 다이아몬드를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푸른 다이아몬드를 경매로 사들인 백작부인은 힘들여 얻은 이 귀한 보석을 도난 당하는데, 범인이 힘들게 훔친 보석을 가져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건은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이 수수께끼 놀음에 짜쯩이 난 사람들은 확실한 결판을 내고자 "그 유명한 영국 탐정"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사건에는 '금발의 여인'이 관련 되어 있으며, 그 배후에 뤼팽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헐록 숌즈와 아르센 뤼팽의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가 펼쳐집니다!
"정말 잘됐군요. 드디어 대단한 맞수를 만났습니다! 맞수란 진정 귀한 존재인데, 여기 헐록 숌즈께서 와 계시군요! 정말 흥미진진하겠습니다." 뤼팽이 외쳤다(99).
처음부터 셜록 홈즈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시작한 듯, 계속 셜록 훔즈를 인식했던 작가는 2권에서 두 맞수의 본격적인 대결을 그리면서도, 셜록 홈즈에 대한 찬사와 예의를 잊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예의 속에 조롱이 숨어 있다는 것이겠지요. 셜록 홈즈의 광팬으로서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닌데, <아르센 뤼팽>에서 셜록 홈즈는 그리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작품 속에서 괴도 뤼팽은 "사람을 가지고 놀면서도 예의를 갖추는 조롱의 대가"로 그려지는데, 진짜 조롱의 대가는 괴도 뤼팽을 탄생시킨 장본인 바로 '모르시 르블랑'인 셈입니다.
"뤼팽은 자신에게 주어진 열정적인 역할을 오만하고도 가볍게 소화해내는 위대한 배우 같았다. 숌즈는 이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훌륭한 연극을 관람하듯 장면의 아름다움과 섬세함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감상했다"(201).
괴도 신사 뤼팽은 마치 용의주도한 연출가처럼 움직입니다. 뤼팽의 사건을 뒤쫓다 보면, 마치 "어떤 전지전능한 존재가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연출해놓기라도 한 듯" 자신이 발걸음 하나까지 엄격하게 정해진 연출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가 된 느낌에 빠져듭니다. 뤼팽이 짜놓은 판 위에서 뤼팽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졸'이 된 기분이라고 할까요.
세상에는 이미 많은 히어로들이 있고 히어로들의 개성도 가운데, 우리의 괴도 신사 뤼팽은 '다크'한 베트맨과 정반대의 성격이라고 할까요.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처럼 특유의 유쾌함과 활력이 넘치며, 절도를 진심으로 즐기고,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생기발랄한 다소 귀여운 캐릭터입니다.
작가는 사나이 대 사나이, 뤼팽 대 숌즈의 대결을 승자도 패자도 없는 막상막하의 싸움으로 그리고 있지만 뤼팽을 훨씬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셜록 홈즈의 광팬임을 자처하면서도 책을 읽는 내내 뤼팽을 응원하게 되는 것을 보면, 제가 단순한 것인지, 모리스 르블랑이 지능적인 것인지 저도 헷갈립니다 여러분이라면 누구를 응원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