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의 아이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박하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작!



미야베 미유키라는 이름은 기억 못해도 영화 <화차>를 재밌게 보았거나, <모방범>이라는 소설을 재밌게 읽는 독자라면 이 작품이 반가울 듯합니다. <화차>, <모방범>, <솔로몬의 위증> 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두터운 독자층을 가진 작가의 초기작이기 때문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 그랬던 것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초기작까지 번역되어 소개된다는 건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그 작가의 작품이 많이 읽힌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형사의 아이>는 화창한 일요일,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온 젊은 엄마가 아파트를 끼고 흐르는 강변에서 하얀 비닐봉지를 발견하면서 시작됩니다. 물살에 떠내려가는 봉지에서 튀어나온 것은 토막난 시체였습니다. 경시청 수사 1과에 근무하는 '미치오'는 이 사건에 투입되고, 그즘 아들 '준'은 살림을 도와주는 '하나' 할머니로부터 동네에 떠도는 괴소문을 듣습니다. 어느 집에서 살인이 벌어졌는데 젊은 아가씨가 살해되었다는 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준'은 집 우편함에서 괴소문의 대상인 그 집 주인이 바로 살인자라고 고발하는 익명의 편지를 발견합니다. 형사의 아들 '준'은 토막살인 사건 때문에 정신 없이 바쁜 아버지를 대신하여 '하나' 할머니의 조언과 형사를 동경하는 친구 '신고'의 도움을 받으며 비밀리에 수사에 착수합니다.





 





"인간은 죽으면 부패하고 남새도 나. 아름답던, 사랑스럽던 얼굴도 어디론가 가버려. 살인이 큰 죄인 건,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그런 모습으로 바꿔놓을 권리가 없기 때문이야. 그리고 보통 상상력을 가진 인간이라면 사람이 죽으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마음으로 이해해. (…) 그런데 요즘 상상력이 없는 인간이 늘고 있어. 무시무시하게 늘어났어. 그것도 확실히 소년들 중에 많이"(279).



<형사의 아이>는 형사 아버지 '미치오'가 쫓는 살인사건과 아들 '준'이 수사에 착수한 동네의 괴소문이 하나로 얽혀들면서 사건이 재구성됩니다. 강변에서 발견된 토막난 시체가 발견 이후, 다시 토막난 시체의 일부가 발견되는데 범인은 아예 다음 토막은 어디에서 발견될지 예고까지 하며 형사들을 도발합니다. 그런데 토막난 시체는 일정 기간 땅에 파묻어두었던 것을 다시 꺼내 '분해'된 채 버려지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땅속에 파묻었던 시체를 일부러 도로 파내 토막내서 버리고 다니며, 버린 장소까지 알려주는 범인, 그는 대체 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며 살인을 광고하고 다닐까요? 그리고 괴소문의 주인공인 유명 화가 '도고'씨는 진짜 살인자가 맞을까요? 도고 씨는 살인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길래 살인자로 지목을 받은 것일까요? 그리고 그가 살인자라고 지목한 편지를 보낸 사람은 누구일까요?





 

 




"난 이번 사건 배후에 대단히 상식적어고 머리 좋은 인간의 존재를 느껴. (…) 결코 상상력이 결여된 탓에 살인이 '가능한' 어린애가 아니야"(280).



미스터리 작품은 리뷰를 쓰기가 어렵습니다. 스포를 주의해야 하는데, 스포를 말하지 않고는 이 작품이 보여주려 하는 이야기의 핵심을 토론할 수 없으니까요. (최대한 스포를 주의하겠지만 힌트는 도처에 숨어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사연을 다 알고 나면 범인을 미워할 수 없게 되곤 합니다. 살인사건을 다루지만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에서는 그보다 더 뜨거운 온기가 느껴집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사회파 미스터리'라 부릅니다. 그것은 작가가 사회문제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작품에 녹여내기 때문입니다. <형사의 아이>도 '소년법'이라는 사회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읽다보니, 그녀의 작품에서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그녀가 가진 '상상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은 '공감능력'이라고 하는데 그녀는 작품에서 그것을 '상상력'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상처를 내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작가의 이러한 상상력이 작품에 진정성을 더합니다. 끔찍한 범죄 현장조차도 단순히 작품의 흥미나 자극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진지하게 호소하는 목소리가 되어 독자의 내면을 파고듭니다.


미스터리 소설은 범인이 누구이냐도 흥미진진하지만 범인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때에도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그 의문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미스터리의 흥미와 작품성을 좌우하는 것이겠지요. 이 책의 후반부에 보면 형사 '미치오'의 독백 같은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그래도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갈 길이 멀 뿐'이라고 생각하며 하나씩 차근차근 조사하는 수밖에 없었다"(229). 미스터리를 추적해가는 미야베의 호흡에서는 이 형사와 같은 인내와 끈기가 느껴집니다. 절대로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러한 끈기가 더 강한 흡입력으로 독자를 끌어들입니다.


미야베 미유키 같은 일본 추리소설 작가를 볼 때마다 부러워지는 것이 있습니다. <형사의 아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이 매우 생생하게 묘사되는데 가상의 공간의 아니라, 일본에 실제하는 마을 풍경을 그대로 작품에 옮겨 왔습니다. 책을 들고 소설 속 현장을 찾아가보고 싶을 지경입니다. 일본인들은 이 작품을 읽을 때, 작가가 제시하는 사회문제가 더욱 사실적으로 와닿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이야기'로 더 깊이 공감하며 작품에 빠져들게 만드는 쟁쟁한 추리작가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문학작품을 읽을 때마다 생각나는 장영희 교수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문학은 나와 남이 결국은 같다는 것, 인간적인 보편성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방식으로 살아도 나와 남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에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통로가 바로 문학"이며, 이것이 우리가 문학을 읽어야 할 이유라고 하셨습니다. 미야베는 이러한 문학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작가 중 한 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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