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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이야기 - 다윈에서 뇌과학까지 생물학의 모든 것
김웅진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지구의 작은 부분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생물학에 처음으로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철학자 꽁트 때문입니다. '사회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냈다는 꽁트는, "자연과학 중 가장 일반적이고 단순한 천문학이 제일 먼저 발달하고, 시간에 따라 물리학, 화학, 생물학, 마지막으로 사회학이 그 뒤를 따른다"고 주장했습니다. 꽁트에 의하면, 가장 복잡하고 다른 모든 과학들이 다 발전하여야만 나타날 수 있는 사회과학은 이 위계상에서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며, 위계상 바로 아래에 있는 생물학에 매우 크게 의존합니다. 사회학이 생물학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물학의 전체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각 요소들을 분리시킴으로써 발전되어 온 물리학이나 화학과는 달리 생물학은 유기적 전체를 연구함으로써 발달하는데, 각 요소들을 전체 체계라는 관점에서 보는 생물학에 사회학이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생물학은 유기적 전체를 연구함으로 발달한다고 하는데 문제는 생물학의 영역이 매우 방대하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도 주지시키 듯, 유전학, 분자생물학, 진화심리학, 사회생물학, 뇌과학과 인지과학까지 생물학의 영역은 그야말로 광활합니다. 한 권의 책으로 생물학 전체를 소개하기가 어려우니 "대부분 생물학 관련 교양서적들은 특정 주제만 다룬다"는 것이 생물학의 함정이기도 합니다. <생물학 이야기>는 특정 주제만 다루는 생물학의 함정을 극복하기 위한 책입니다. "생물학의 고전이론들을 포함한 기초지식이 있으면 첨단 분야나 응용 분야의 시사적 사실들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며, 그래야 "생명현상을 보는 '생물학적 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9). "생명현상과 생물학을 전체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생물학을 소개하는 책"이 이 책의 취지이자 목표입니다.
생물학의 역사에서 뇌과학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특별히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의 원리를 중심으로"(43) 생물과 생물학의 요소들을 일관되게 설명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생물의 가장 근본적인 성질은 '진화'이며, 원자와 분자로부터 생명현상을 창출해낸 진화의 원리가 이 책 <생물학 이야기>의 주요 주제라고 밝힙니다. 저자는 "생물학에서 '왜?'라고 하는 질문은 자연선택적 진화의 원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30)고 주장합니다. 생명현상이 발생하고 변화되고 다양화되어 지구를 온갖 특이성을 갖는 생물체로 가득히 채우게 된 것은 '진화의 결과'라는 것입니다(36). 저자의 이러한 주장 뒤에는 전투적 무신론자로 더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의 향기가 납니다. 저자는 그의 제자이거나 추종자가 분명해 보입니다.
이 책을 통해 몇 가지 흥미로운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생명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은 모두 분자적이라는 것, 가급한 다양한 종, 서로 다른 개체, 다양한 표현형질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경향성은 생물의 기본적 성질이라는 것, 생물의 다양성이 생물의 번식에 도움을 준다는 것, 그리고 진화심리학에서 보면 뇌는 철저히 환경에 적응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 등이 흥미로웠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주장은 이것입니다. "뇌 용량의 업그레이드나 정보처리 프로그램의 변경과 같은 변화가 일어나려면 최소 수만 년 내지 수십만 년의 기간이 소요됩니다. 따라서 생물학적으로 우리의 뇌는 현대사회가 아니라 대부분 문명 이전의 삶, 수렵채취인 사회에 적응된 상태입니다. 문명의 발달이 가져다준 삶의 변화 속도가 자연선택에 의한 뇌 진화의 속도보다 수백 배 혹은 수 천배 빠르게 때문에,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대략 3만 년 전의 환경에 적응되어 있습니다"(170).
그런데 <생물학 이야기>는 "생물학의 모든 것"을 담아내겠다는 처음의 포부와 달리,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생물학의 모든 것"이라기 보다, "자연 선택적 진화의 원리"라고 이름부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자의 주장대로 "자연 선택적 진화의 원리'를 큰 틀로 하여 생물학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다 보니, 그 틀 안에 모든 것을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저자는 "과학의 역사는 대자연이 흩뿌려놓은 퍼즐 조각을 맞추어온 역사"(178)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저자도 '자연 선택적 진화의 원리'에 생물학의 퍼즐들을 끼워맞췄나 봅니다. 예측가능성을 토대로 인과적 논리로 유추를 하는 과정 속에서 '그럴 듯한 추리'를 '사실'이라고 믿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모든 생명현상은 오직 인과율의 법칙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저자 자신이 유추와 논리의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풀지 못한 생명현상을 보면 인과적 논리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가장 먼저는 빅뱅 현상이 그렇고 저자가 설명하는 캄브리아기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시간 감각으로 보면 결코 짧지 않지만, 에디아카라 말기의 최소 수백만 년의 시간은 지질학적으로 매우 짧은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수많은 동물들이 캄브리아기 초에 폭발적으로 나타난 것은 깜짝 쑈와 같이 놀라운 일이었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생물들에 관한 한, 에디아카라기의 생물계는 새롭게 등장한 캄브리아기의 생물계에 의해 완전히 교체되었다"(83). 생명의 진정한 경이는 오히려 인과 법칙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폭발적인 깜짝 쑈"에 있지 않을까요?
저는 저자만큼 생물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자에게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라는 책을 꼭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이 책은 과학에 철학이 꼭 필요한 이유, 그리고 과학이 겸허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책입니다. 장하석의 책에서 "과학의 정수는 비판정신이며, 또 언제든지 지금은 진리라고 믿고 있는 이론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독단성은 과학적 태도에 위배된다고도 배웠습니다. <생물학 이야기>의 저자도 말했습니다. "과학은 자연현상에 대한 질문과 검증을 통해 인간의 주관과 직관의 오류를 극복하고 누가 보기에도 사실과 부합하는 객관적인 지식체계를 수립하는 학문이다"(193). 그런데 진화론에 대한 저자의 신앙이 오히려 저자가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객관성을 해치고 있음을 꼭 지적해주고 싶습니다. 저자는 아직 풀지못한 생물학의 과제와 한계를 분명히 말하지 않고, "이럴 것입니다", "이랬을 것입니다"라고 설명하며 은근슬쩍 넘어갑니다. "관측 자체가 객관적 사실을 그대로 전달해지 않는다"는 과학(학문)의 태생적 한계를 아예 무시하는 학자들도 많은데, 한계를 알기에 더 겸손하고 정직한 태도가 오히려 과학을 더 매력적인 학문으로 이끌지 않을까요? 저자가 우리에게 들려준 찰스 월콧의 말을 저자에게 다시 들려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지구의 작은 부분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