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영웅들 - 필멸의 인간 영웅 아킬레우스에서 아고라의 지성 소크라테스까지
그레고리 나지 지음, 우진하 옮김 / 시그마북스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누가 영웅인가?



요즘 개그콘서트에서 '핵존심'이라는 코너가 인기입니다. 영웅적인 행동을 좋아하고 영웅인 체 하는 남자들 특유의 영웅심리를 희화한 것이지만, 구나 한번쯤은 영웅이 되기를 꿈꿔보지 않았을까요? 그런 점에서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져줍니다. 영웅은 신처럼 불멸의 존재도 아니고, 때로는 비극적 운명에 처하기도 하고, 도덕적인 결합도 지닌 그런 '사람인듯 사람아닌 사람 같은' 영웅을 동경하고 신과 가티 숭배하는 사상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유한하고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무한하고 불멸의 존재인 '신' 인식을 갖게 되었는가, 그러니까 '신'이라는 관념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오래된 질문만큼이나 철학적인 주제이기도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은 이런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이에 답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하버드대 그레고리 나지 교수의 강의록을 모은 것인데, 인류가 가진 영웅 이야기에 대한 '기록'이 그 연구 대상입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와 같은 (인류 최초라 할 수 있는) 서사시와 서정시,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과 같은 산문, 그리고 플라톤의 <대화편>에 이르기까지 기원전 8세기부터 4세기까지에 걸쳐 기록된 문학적(철학적이면서 역사적인 의미도 함축된) 텍스트를 분석한 일종의 원전연구인 셈입니다. 인류가 가진 가장 오래된 '영웅전'의 연구라고 이름붙여도 좋을 듯합니다.


텍스트를 분석적으로 읽어내려가는 일종의 주석, 주해이기 때문에 이 책은 그리 드라마틱한 영웅담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학술적인 영웅담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텍스트가 담고 있는 문학적 감동은 독자의 몫이기도 합니다.




"영웅은 영웅을 숭배하는 의식의 과정에서 절정의 순간에 신으로 불릴 수 있다"(779).



저자가 관심을 갖는 주제는 왜 영웅이 신과 같이 특별한 숭배의 대상이 되었는가 하는 종교적 관점입니다. 주요 논지는 '영웅'은 신과는 달리 필멸성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모두는 영웅의 운명은 필연적으로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그런 존재가 신적인 영역에서 숭배대상이 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죽하며, 두려운 것이 아니라 환영할 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 영웅은 궁극적으로 완벽한 죽음이라는 완벽한 순간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73).  그래서 저자가 던지는 첫 질문이자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도대체 누가 영웅인가?" 하는 점입니다.


저자가 서사시적 영웅의 전형을 정리한 것을 보면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 있습니다. 영웅 헤라클레스를 모델로 영웅에게는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고 말합니다. 영웅은 적절치 못한 때, 예기치 않은 시기에 나타난다는 것, 또 극단적으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또 영웅은 영웅과 매우 흡사해 보이는 신에 대해 적대적이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동경의 대상이자 숭배의 대상이기도 한 영웅에게서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모습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습니다. 오이디푸스가 그러하듯이 영웅은 실수하기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하며 비극적인 운명에 처하기도 합니다. "오이디푸스가 저지른 부정적인 행위들과 그로 인해 죄에 물들게 된 것은 영웅시대에는 전형적인 일상이었다"(819).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은 신비한 징조를 지니고, 초인적인 능력을 겸비했으며, 불의를 응징하는 구원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죄를 짓고 비극적인 운명에 처하기도 했던 불완전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초월적인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고, 불멸의 존재인 신들의 후예이기도 하지만 신들과는 구별되며 신에 대해 적대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런 영웅들이 어떻게 신처럼 특별한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까요? (저자가 말하는) 제가 찾아낸 정답 중 하나는 영웅과 관련된 의식 자체가 조상 숭배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기본적으로 보면 특별한 영웅을 추종하는 현상 속에서 영웅들을 숭배하는 일은 죽은 자를 추종하는 현상과 관련된 것으로, 다시 말해 조상 숭배라고 볼 수 있다"(763).


이것은 마치 어릴 때 태산처럼 크고 바위처럼 든든하며,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었던 아버지였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공존하게 되는 그런 이미지와 닮았다고 할까요?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동질감과 친밀감을 불러이르키면서 신보다 조금 더 가깝게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신은 아니지만 신보다 더 매력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하버드대 교수의 강의록을 모은 것입니다. 그만큼 학술적이고 그래서 읽기 까다롭고 지루한 일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학술적 가치가 있고 소장 가치가 있는 노트이기도 합니다. 소설적 재미보다 진지한 배움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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