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탄생 - 사라진 암호에서 21세기의 도형문까지 처음 만나는 문자 이야기
탕누어 지음, 김태성 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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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갑골문을 만나다!



이 책의 앞 표지 왼쪽 상단에 나오는 그림 같은 글자는 오늘날 "집"(家)을 의미하는 갑골문입니다. 원래는 용맹하고 포악했던 야생 돼지가 길들여지고 사육 당하는 가축으로서의 돼지가 된 형상입니다. 다소 철학적인 저자의 문자 이야기가 재밌습니다. "거대한 자연계에서 가장 프로이트적인 동물인 돼지는 이때부터 주거형 동물로서 더 이상 반하을 하지 않고 자포자기한 것처럼 미친 듯이 먹어대면서 살만 쪘다. '집'(家)은 우리에게 가장 따뜻한 공간이자 고향을 멀리 떠나 있을 때 그리워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대상이다. 돼지는 이제 즐거운 마음으로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게 됐다"(145).


<한자의 탄생>은 굉장히 독특한 책이면서 심오한 책입니다. 한자의 탄생 과정을 추척한 '문자학'이라고 해서 다소 딱딱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오히려 철학책처럼 읽힙니다. <한자의 탄생>을 읽으며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아름다운 '갑골문'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신비한 성경 속 한자의 비밀>에 보면 갑골문이 출토된 상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이며 따라서 갑골문은 동이족의 문자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갑골문이나 상나라 유적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기 때문에 더 깊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토로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나름 갑골문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이 있었는데 여기서 갑골문을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요. 더구나 <한자의 탄생>은 갑골문이 얼마나 아름다운 문자인지 보여주고 있어 갑골문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습니다. 


"문자는 도대체 어떻게 발생된 것일까? 아니면 어떻게 발명된 것일까?" 이 책의 기본적인 물음은 이것입니다. 지금껏 중국은 황제의 사관이었던 '창힐'에 의해 발명되었다는 신화를 가지고 있나 봅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중국인들이 수천 년 동안 교활하게도 이 문제를 창힐이라는 인물에게 미루어 피해왔다"(17)고 비판합니다. "문자 형성이 하나의 시간대에 한 지역에서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한자의 탄생> 과정은 인류가 가진 '상형문자'에서부터 지사문자, 전주와 가차, 성애의 문자, 오늘날의 도형문자까지 한자의 발전 과정을 추적합니다. (탄생의 과정이라기보다 발전 과정이라고 하는 것이더 정확할 듯합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갑골문의 위치도 바로잡습니다. 갑골문은 정확히 3,000년 전의 문자로, 상나라 사람들이 소의 견갑골이나 거북이의 배 위에 새겨 넣은 문자를 말합니다(6). 일반적으로 "갑골문자가 중국에서 발견되 최초의 문자"라고 알려져 왔습니다(18). 그러나 저자는 갑골문자가 절대로 최초의 문자가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오히려 "상당히 성숙된 문자 형태"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한자의 탄생> 과정을 읽으며 한자의 발전과정보다 갑골문의 아름다움에 더 주목하게 된 것은 문자 이야기의 근간에 갑골문이 자리하고 있고, 그 갑골문에 담긴 "역사와 충만한 미적 감각, 철학적 감성, 상상력"들을 저자가 무척 흥미롭게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한자을 대할 때 또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한자의 발명이 기독교 신앙의 야훼 하나님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도 "중국의 문자 발명도 하나님 야훼에게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흥미로운 사실이 매우 조심히, 그리고 아주 살짝 언급되지만, 저자는 "몇 가지 물증만으로는 문자의 발명을 단정"할 수 없다고 뒤로 살짝 발을 뺍니다. 




"문자가 생겨남으로써 인류의 사유와 표현은 시간의 독재에서 벗어나 순간적으로 공기 속으로 흩어지지 않으면서 축적되기 시작하고, 점차 두께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문자는 공간적 거리와 시간적 거리를 포함하는 언어 연계의 확장력을 크게 증가시켰고, 인간이 영감, 발견과 발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인간의 사유를 지속시켜주는 중요한 근원으로서의) 곤혹감을 더 이상 고독하지 않고 안정적이며 지속적이고 면밀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문자는 장시간 추상적인 사유를 할 수 있게 해주었고, 중간에 발길을 돌릴 수 있는 반성적 사유를 가능하게 해주었으며, 수정되고 보완된 항로를 따라 회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에 따라 사유는 수정되거나 부완됐고, 앞을 향해 대담하게 더 멀리, 더 깊이 나아가면서도 길을 잃어 돌아오지 못할 것을 걱저앟지 않고 계속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21-22).

<한자의 탄생>을 읽으며 문자학이 얼마나 흥미로운 학문이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문자가 생겨남에 따라 인류는 완전히 새롭고 전면적인 보존 형식을 확보하게 됐고, 이를 통해 기억과 대화, 사유를 몸 밖에 둘 수 있게 됐다"(22)고 이야기합니다. <한자의 탄생>은 문자를 통해 사유하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역자도 저자의 책은 번역하기 힘들기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옵니다. 확실한 논증보다는 문자를 통한 유희를 저자가 더 즐기고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아름다운 갑골문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있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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