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다치지 않게
설레다(최민정) 글.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첫 장에서부터 들켜버린 마음

 

어느 글에선가, "책을 읽을 때 감동하게 되는 것은 그 책이 내 마음을 읽어주기 때문이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내 마음 다치지 않게>는 미술심리치료사이자 일러스트레이터가 블로그에 올린 일상 글을 모은 것입니다. 가장 우울했던 시기에 그림 한 컷이 가진 치유의 힘을 경험하며 한 컷 한 컷 그리다 보니 어느 새 7년이 흘렀고 많은 이들의 공감과 사랑도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책은 관계에 지치고, 사는 일이 지치고, 다가가는 일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줍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가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은" 날에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투영하여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기 때문인지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저는 첫 장에서부터 마음을 들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이 잠들 시간이 되면 외로움은 그제서야 슬그머니 잠에서 깨어납니다. 어두운 방 안, 피곤에 절은 몸을 펴고 누워도 외로움에 흔들린 마음 때문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밤. 아무 생각 없이 머리맡에 있는 핸드폰을 열어보곤 합니다. 메신저에 지난 대화목록을 다시 읽어보거나 등록된 사람들을 훑어보기도 하겠죠(누구나 외롭다 中에서, 13).

요즘 제가 잠들기 전에 반복하고 있는 행동들입니다. 하루 종일 피곤에 절어 곧 곯아떨어​질 것만 같았는데 막상 불을 끄고 누우면 쉽게 잠들지 못합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잠들지 못할 때마다 핸드폰을 집어들고 메신저에 등록된 친구들의 사진과 한 줄 대화명을 확인해보곤 합니다. 변화가 있는지, 어떤 변화가 있는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중 누군가에게 "외롭다"고 말해볼까도 싶지만 늘 생각뿐입니다.




내 편이 필요할 때

좋아했던 노래 가사 중에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다 보면, 사랑하는 일도, 사람도 지켜워질 때가 있습니다. 도망치고 싶다는 간절함. 문을 걸어잠그고 좁은 방으로 숨어들듯, 그렇게 마음문을 꽁꽁 닫아걸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버리고 싶은 심정. 그건 너만은 내편이리라 믿었던 사람이 나에게 치명타를 날리고, 나도 똑같이 독기를 품고 되갚아주기를 반복하며 상처내는 일을 이젠 정말 그만 하고 싶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서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가 어떤 말에 쓰러지는지, 어떤 부위를 얻어맞으면 K.O 당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날린 한방은 빗나가지도 않고 정확히 치명타로 꼽힙니다(말싸움, 52).

그런데 닫아건 마음의 문이 스스르 열리는 날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마음에 와닿으며 '저 사람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하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사실은 내게 사람이 필요했던 거구나. 내 마음을 알아주는 한 사람이 필요했구나.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했구나' 하는 것을 말입니다. <내 마음 다치지 않게>는 내 편이 필요한 날에 조용히 내 곁으로 다가와 곁을 지켜주는 그런 친구같은 책입니다.

​어설픈 위로의 말보다 조용히 곁에서 커피 한 잔 건네며 토닥거려 주는 친구,

쓰러진 나에게 잘잘못을 따져 조언하기 전에 일으켜 세워 부축해주는 친구,

억지로 울음을 삼키려는 나에게 실컷 울 수 있도록 어깨 한쪽을 내어주는 친구,

그런 친구, 있으신가요?​ (친구 中에서, 98).




마음을 만나는 시간 ​

"언제부터였을까요? 전화번호 목록을 훑어보며 전화를 걸 누군가를 찾는 일이 줄어들고 무뚝뚝한 수신호를 들으며 상대방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일도 드물어졌습니다. 그리운 이와의 통화 기능을 잃어가는 전화기를 보며 통화 버튼 대신 그리움만 연신 눌러대게 되었지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지인의 소소한 일상까지도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요즘입니다만 어쩐지 직접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전하는 것만은 점점 어색해지는 듯합니다(뚝뚝뚝 中에서, 17)​.

우린 지금 살았으니 어쨌든 우린 살아야 하고,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고, 두려워도 일단은 시작해야 하고, 기운이 없어도 그렇게 한 발 한 발 걸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한 마디 말이, 한 장의 그림이, 한 번의 손길이, 따스한 눈길이, 한 번의 미소가 다시 우리를 일으켜세워주고, 힘을 주고, 웃게 하고, 또 해봐야겠다 결심하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내 마음 다치지 않게>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참 많구나, 남들도 나와 비슷한 상처, 비슷한 고민, 비슷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구나 하는 것을 다시 일깨워주었습니다. 어떤 글에서는 마음을 들켜버려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어떤 글에서는 함께 울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글에서는 책이 주는 위안 속으로 잠겨 들기도 했습니다. 부담이 없는 만큼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는 책이지만, 시시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와 진솔한 대화를 원한다면, 아니 자신의 마음과 만나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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