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문장강화 - 이 시대 대표 지성들의 글과 삶에 관한 성찰
한정원 지음 / 나무의철학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최근 3주 동안 전혀 글을 쓰지 못했다.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그저 따분한 결론이나 흐릿한 인상뿐이었다. 하염없이 작심을 하고 또 했지만, 내 마음은 갈대보다 더 갈대답게 흔들렸다. 나는 줄곧 글을 쓰려고 했지만 시간만 낭비했고 황홀한 망상의 세계에 빠져 시간을 죽이며 무슨 일이든 일어나길 바라는 꿈만 꾸었다"(57).

 

원고 청탁을 받아 놓고 글을 쓰지 못해 고민하는 ​뉴질랜드 소설가 실비아 애슈턴 워너의 탄식입니다. 업이건, 취미이건, 의무이건, 좋은 글을 쓰려고 해본 사람은 한 번쯤 이런 고통을 느껴봤을 것입니다. <명사들의 문장강화>는 이런 고통을 한 번쯤은 느껴본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10인"(이 책의 작가 기준에서)의 명사에게 어떻게 글을 쓰는지, 글쓰기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내 마음의 명문장은 무엇인지, 글을 잘 쓰는 비결은 무엇인지 등을 물었습니다. 무엇보다 치열하게 글을 쓰시는 분들이고, 그 치열함을 즐기는 분들인데, 이 책은 단순히 글쓰기의 기술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빚어지고 훈련되어 비로소 세상에 나오게 되는 글에 대해 통합적으로 사고해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이 책은 글쓰기의 기술적인 작문법에 초점이 맞춰진 책이 아니다. 그보다 더 앞선 것에 대한 이야기다. 왜 글을 쓰고, 무엇을 써야 하며, 쓴다면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6).

 

 

 

10인의 명사가 글쓰기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비슷합니다. 먼저는, 누구는 관찰이라고 표현하고, 누구는 관심이라고 표현하고, 누구는 경험이라고 표현했지만, 한마디로 삶과 생명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은 시인님의 말처럼, 생동하는 우주의 춤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온 가슴으로 느낄 때, 비로소 세상에 내놓을 말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모든 삶이 시입니다. 심지어 무생물까지도 시인입니다. 먼지, 티끌, 아메바, 이런 것들 모두 다 그렇죠. 지구도 움직이고, 태양도 움직여요. 우주 전체에서 움직이지 않는 건 없어요. 이건 일종의 춤입니다. 우주의 율동 자체가 하나의 생명채에 와서 심장의 율동이 되는 것입니다. 심장이 움직여야 피가 온몸에 돌잖아요. 세상 만물이 우주의 율동에 동행하면서 모두 움직이잖아요. 한시도 고착되지 않고 말이죠. 이것들의 움직임, 이것이 바로 시의 리듬입니다"(20).

 

 

 

또 명사들마다 공통적으고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많이 읽으라는 것입니다. 많이 읽는다는 것은 많이 생각한다는 것이고, 많이 얻는다는 것이고, ​끊임없이 찾는다는 것이고, 내 것으로 만든다는 뜻인 듯합니다. 고은 시인이 자신을 '언어 거지'에 비유하신 것에서 그 절박함이 잘 묻어납니다. 고은 시인님은 비단 읽어서만 찾는 독서로 한계를 짓지는 않았지만, 많이 읽으라는 것, 많이 읽는다는 것은 언어의 허기, 표현의 허기, 생각의 허기의 다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언어의 거지예요. 그런데도 다른 언어를 얻어서 배를 채운 적이 없어요. 끊임없이 공기에 들어 있는 새로운 언어를 찾는 거죠. 끊임없이 갈망하고 찾아 헤매요. 그래서 나는 언어 거지예요. 허공에 던져져 있는 그것을 가져와 내면화시켜요. 찾고 또 찾아도 나는 늘 언어에 배가 고파요"(38).

 

 

<명사들의 ​문장강화>가 또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치열하게 치열하게 퇴고하라는 것입니다. "미리 글쓰기"가 자신의 글쓰기 비결이라고 하는 최재천 교수님은 일단 쏟아내고 그것을 소리내어 읽으며 100번쯤 고쳐 쓴다고 합니다. 물 흘러가듯 쉽게 읽힐 때까지 말입니다. 내용이 쉬운 것이 아니라 문장이 쉽게 굴러갈 때까지 말입니다. 소설가 김홍신 선생님도 퇴고의 과정을 강조하는데, 글은 일단 쓰는 것이 중요하지만 문장은 만지고 손질을 할수록 좋아진다고 조언합니다. 글쓰기란 부지런함과 동의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 중 하나는, 글쓰기도 배움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하지만, 내 안의 절박함이 없다면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겠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명사들의 문장강화>는 10인의 명사들이 어떻게 글을 쓰는지를 보여주며 명사들의 삶까지 들여다봅니다. 글쓰기와 삶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절실함에서 나와야 진실한 꿈이 될 수 있"다는 고은 시인님의 말처럼, 상투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글은 이론이나 형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말 가슴으로 쓰는 것인가 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이 방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나는 여러분들의 심장에서 시를 꺼내려 합니다. 이 시간은 여러분들의 심장에서 꺼낸 시와 내 심장에서 꺼낸 시가 만나는 순간입니다"(18).

 

감동을 노리지 않고 그냥 물이 흐르듯 우주가 율동하듯 글을 쓰신다는 고은 시인님, 뜻이 정확하고 간결하면서 우아한 문장을 추구하는 최재천 교수님, 재미와 의미가 교차되는 지점을 글쓰기의 핵심으로 삼고 글쓰기를 즐기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소장님의 이야기가 글쓰기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주었습니다. 또 한 가지 새로이 생긴 목표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좋은 글이 아니라, 나의 색채가 드러나는 글쓰기를 훈련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알게 것이다. 당신이 쓰는 글이, 당신 삶의 가장 아름다운 거처가 되어준다는 것을"이라는 작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듯합니다.

"표현은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수레바퀴가 굴러가면 바퀴 자국이 생겨요​. 이것이 표현의 문법이고 장르이고 양식입니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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