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건 무엇일까?

 

 

낫지 않는 감기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뇌종양 4기,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인공. 그것은 사실상 사망선고나 다름 없었습니다. ​부정 → 분노 → 공포 → 흥정 → 수용의 5단계를 거칠 겨를도 없이 그 앞에 난데 없이 '악마'가 등장합니다. 그와 꼭 닮은 모습이지만 성격은 정반대로 쾌활함이 넘치는 악마는 주인공에게 의미심장한 거래를 제안해옵니다.

 

 

 

"이 세상에서 뭐든 한 가지만 없앤다. 그 대신 당신은 하루치 생명을 얻는 겁니다"(22).

 

거래는 간단합니다. 이 세상에서 뭐든 한 가지만 없애면 그 대가로 하루치의 생명을 연장받는 것입니다. 거래의 원칙은 하나,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잃어야 한다"(21)는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일이고 터무니 없는 거래였지만, 인간은 몇만 년에 걸쳐 무수한 잡동사니를 만들어냈고, 그중에서 하나쯤 사라진다고 해도 아무도 곤란하지 않을 테고, 오히려 세상이 단순해질 수도 있으니 해볼만한 거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기 생명이 없어지면 어차피 모든 것이 끝인데 아무리 터무니 없는 거래라도 매달리게 되는 것이지요.

 

"세상에서 전화가 사라진다면,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까?"(36)

 

악마와의 첫 번째 거래는 '전화'였습니다. 어차피 그런 물건에 휘둘리는 자신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전화가 사라진 대가로 하루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도 나쁜 거래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악마는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없앨 물건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38)까지 부여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악마와 주인공은 하루에 한가지씩 없애는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전화, 두 번째는 영화, 다음은 시계.

 

이 책의 역자는 악마와의 거래로 세상에서 사라진 것들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전화는 문명과 과학기술의 상징이다. 인간이 그것에서 얻은 놀라운 혜택은 실은 더없이 소중한 무언가의 상실과 맞바꾼 결과물임을 시사한다. 두 번째로 없애는 영화는 문화의 상징이다. 우리는 철학, 사상, 문학, 예술, 법률과 같은 인간 고유의 문화적 창조물에 둘러싸인 환경에 놓여 있고 그 속에서 살아간다. 인간의 삶에서 이런 문화를 걷어낸다면 과연 어떤 세상이 도래할까? 일종의 사고실험인 셈이다"(221-222).

 

하루의 삶을 연장받기 위해 자기의 생명보다 덜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없애는 데 동의했던 주인공은 점차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더해갑니다. "전화가 생겨 곧바로 연결되는 편리함을 손에 넣었지만, 그에 반해 상대를 생각하거나 상상하는 시간은 잃어갔다"고 가치판단을 했던 전화. 그러나 그 전화의 편리함은 사랑하는 여인과의 추억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별은 예감했던 그 순간 그들에게 전화가 있었다면, 어쩌면 이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영화와 연결된 추억 속에는 연인뿐 아니라, 오랜 우정으로 곁을 지키고 있는 친구가 자리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 영화를 함께 본 연인이나 친구나 가족과의 추억을 내포한 채 내 안에 자리 잡은 영화들. 우리가 수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그래서 나를 형성해온 무수한 영화의 기억들. 그 모든 것이 아름다워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103). 그리고 깨닫습니다. 그 영화와 연결된 추억들이 단적으로 표현된 나 자체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시계가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주인공은 시간 개념이 없는 고양이와 맞닥뜨립니다. 시간 개념이 없는 고양이는 자신을 그렇게 예뻐했던 주인공의 어머니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주인공은 "양배추(고양이 이름)를 주워왔던 어머니의 얼굴. 늘 양배추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어머니. 양배추가 잠들 때가지 무릎에서 어루만져주던 어머니. 결국 자기도 같이 잠들어버려서 소파에서 양배추와 나란히 몸을 웅크리고 자던 어머니. 그 평온한 얼굴"(134-135)을 떠올리며, 그런 엄마를 기억하지 못하는 고양이에게 경악합니다.

 

양배추의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어머니. 악마가 네 번째로 고양이를 없애자는 제안을 해왔을 때, 주인공은 비로소 깨닫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전화, 영화, 시계 사이사이에 아름다운 추억이 스며들어 있었으며, 그 추억이 자신의 삶이었고, 그것은 더없이 소중한 기억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다

 

좋은 책은 좋은 질문을 던져주고, 좋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참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은 역자의 말대로 '가치'를 묻는 책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그 대가로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내 인생에서 진짜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사랑은 잃은 후에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고 했던가요. 평소에는 무관심했던 것들에 대해 그 소중함을, 그 고마움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저자 자신도 혼란을 일으키는 듯한 대목이 종종 눈에 띕니다. 예를 들면, 전화가 우리에게 추억을 쌓아갈 시간을 빼앗아 갔다는 식의 비판을 하다가 전화를 통해 쌓을 수 있었던 추억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며 후회 없는 인생을 살자는 식의 메시지는 던져주다가 그 후회마저도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래도 당신은 마지막 순간에 소중한 사람이나 둘도 없이 귀한 것들을 깨달았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알았어요. 자기가 사는 세상을 한 바퀴 돌아보고 새삼 다시 바라보는 세상은 설령 따분할 일상이었다라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어요"(198).

 

어느 묘지에 가면 이런 말이 써 있다고 해요. "이것을 기억하세요. 사랑할 시간이 아주 짧다는 것을!"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우리에게 사랑할 시간도 모자란데 따분해야 할 틈이 어딨냐고 묻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하루 이틀 더 살고 덜 살고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라는 것, 그러니 그냥 살지 말고 매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 무엇을 얻는 대가로 무엇을 잃어야만 한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신중해야 한다는 것 등을 새삼 깨닫게 해줍니다.

 

진부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문제라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은 책입니다. 또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참신한 구성으로 경쾌하게 이끌고 갔다는 점에서도 점수를 주고 싶은 책입니다. 생각 없이 읽다가 어느 순간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수많은 고양이가 있어도 서로에게 길들여진 단 한 마리의 고양이가 특별하듯,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어도 오늘 나의 삶을 함께 엮어가며 생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는 점에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대단한 인물은 아니지만 눈부신 사랑을 주었던 어머니, 무뚝뚝하지만 나에게 보물상자를 안겨주었던 아버지, 특별할 것 없지만 좋은 것을 함께 나누었던 친구, 헤어진 사이일지라도 생의 한 부분을 아름답게 공유했던 지나간 사랑, 때로는 지루하고 거추장스럽기도 한 일상이었지만 함께 밥을 먹고 산책하고 체온을 나누었던 고양이. 그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이 뻐근해질 때 서로를 다시 용서하고 서로의 연약함을 껴안는 기적이 우리 안에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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