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의 시대 - 뇌과학이 밝혀내는 예술과 무의식의 비밀
에릭 캔델 지음, 이한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뇌과학이 밝혀내는 예술과 무의식의 비밀

 

<통찰의 시대>는 인류 사상에 일어난 세 가지 혁명을 말합니다. "첫 번째 혁명은 16세기에 일어난 코페르니쿠스 혁명으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 주위를 두는 작은 위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렸다. 두 번째 혁명은 19세기의 다윈 혁명으로, 우리가 신이 특별하게 창조한 존재가 아니라 더 단순한 동물로부터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진화했음을 인식시켰다. 세 번째 위대한 혁명, 즉 '빈 1900'의 프로이트 혁명은 우리가 자신의 행동을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 동기가 우리 행동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33-34).

 

이 세 가지 혁명들은 "자기 자신과 우주에서의 우리 위치를 보는 관점을 결정한 혁명들"입니다. 그중 세 번째 혁명, 즉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이성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비이성적 동기가 행동을 일으킨다는 무의식의 발견은 "마음"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새롭게 환기시켰습니다. "마음"은 어디에 존재할까요? 우리는 보통 마음이라고 하면 가슴에 손을 얹습니다. 마음이 아파다고 할 때도 가슴의 통증을 느낍니다. 그런데 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마음"은 바로 우리 "뇌" 속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나고 생각되는 모든 작동이 뇌의 활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아파"라고 말할 때 우리는 머리에 손을 얹어야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김경집 교수의 <인문학이 밥이다>를 읽으며 앞으로는 뇌과학의 시대가 될 것이며, 그것을 통합적으로 성찰하는 심리학의 힘이 세지겠구나 예측한 적이 있습니다. <통찰의 시대>는 그 힘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마음의 과학이라 불리는 인지심리학과 뇌 과학이 만나 "지각과 창의성을 가능케 하는 뇌 메커니즘"을 탐구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학, 인지심리학, 미술사, 신경과학을 종으로 횡으로 넘어들기 때문에 책의 주제나 논지를 한마디로 정리하기가 어렵습니다.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저자는 이 책의 성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책은 그 뒤로 내가 1890년부터 1981년까지의 빈의 지성사에 푹빠져 지낸 매혹의 산물이자, 오스트리아 모더니즘 예술, 정신분석, 예술사에 대한 내 관심과 평생에 걸쳐 연구한 뇌과학을 종합한 결과물이기도 하다"(7).

 

저자는 '빈 1900'의 모더니즘 초상화, 더 구체적으로 말해 구스타프 클림트, 오스카어 코코슈카, 에곤 실레의 미술 작품을 통해 당대의 과학적 사유와 '빈 1900'이라는 지적 환경이 세 화가에게 미친 영향을 탐구합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하기 시작한 의학(과학)에 영향을 받은 프로이드는 인간 내면에 주목하며 정신분석을 발전시켰고, 이에 영향을 받은 예술에서는 표현주의가 등장하기 시작했음을 탐구하며 이 책이 던지는 궁극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대체 어떻게 지각하고 배우고 기억하는 것일까? 정서, 감정이입, 생각, 의식의 본질은 무엇일까? 자유의지의 한계는?"(8) 신경학적 메커니즘의 대가인 저자는 빈 모더니스트들의 초상화를 중심으로 모델의 내면 감정을 묘사하려는 예술가들의 시도를 통해 관람자가 미술을 지각하는 데에 인지심리학과 뇌생물학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 현재 우리는 지각, 정서, 감정이입, 창의성 등의 메커니즘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 점검합니다.

 

 

 

 

 

"클림트는 르네상스 초기부터 화가들이 간직해 왔던, 이차원 캔버스에 삼차원 세계를 점점 더 사실주의적으로 재창조하려는 태도를 버린다. 오스카어 코코슈카와 에곤 실레는 화가의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삼차원인 바깥 세계를 벗어나서 다차원적인 내면의 자아와 무의식 쪽으로 나아갔다"(21).

 

저자는 "천문학과 물리학이 계몽사상을 고취했듯이, 생물학은 모더니즘을 자극했다"고 밝힙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클림트의 작품을 보면 현대 생물학이 클림트의 미술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왼쪽의 이미지는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Ⅰ>라는 작품입니다. 다윈의 책을 읽은 클림트는 '모든 생물의 기본 주성 단위인 세포의 구조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아델의 옷에 그려진 작은 도상학적 이미지들은 단순히 장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직사각형의 정자와 타원형의 난자, 즉 그 이미지들은 "남성과 여성의 생식세포를 뜻하는 상징"이라고 합니다. "생물학에 영감을 받아 나온 이 번식력의 상징들은 모델의 유혹적인 얼굴을 완전히 성숙한 그녀의 번식 능력과 연결 짓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21).

 

클림트의 작품은 프로이트의 심리 연구와 동시대의 산물로서 클림트는 "표면 아래 숨은 진실을 전하기 위해 생물학적 상징을 이용"한 것입니다. 클림트의 작품이 생물학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오른쪽 <다나에>라는 작품을 통해 더 분명히 드러납니다. 클림트는 다나에에게 오는 제우스의 그림에도 새물학적 상징을 집어넣었습니다. "이 그림에서 화가는 캔버스의 왼쪽에 그린, 제우스의 정자를 상징하는 황금 빗방울과 검은 사각형을 오른쪽의 임신을 상징하는 초기 배아 형태로 변형시킨다"(57-59).

 


 

 

 

 

"초상화는 과학적 탐구에 매우 적합한 미술 형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영향을 받은 빈 미술사학파는 "최초로 관람자에게 초첨을 맞춘 과학 기반의 예술 심리학을 발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관능미가 담긴 클림트의 그림, 다소 불쾌하고 불안한 느낌을 주는 실레와 코코슈카의 그림을 통해 뇌과학과 미술 사이의 대화를 시도합니다.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얼굴 표정과 손과 몸의 자세를 통해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그림에 담아낸 빈 모더니스트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인간 본성의 비합리성과 비합리적인 행동이 대인 관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탐구합니다. 예를 들어, 저자는 나체 상태로 고통스러우리만치 뒤틀린 자세를 취하고 있는 실레의 자화상을 통해 관람자가 지각적, 정서적, 감정이입적 측면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지화상들은 강력한 이미지다. 사실 그토록 많은 이가 오스트리아 모더니즘 화가들의 작품을 불쾌하게 여겼던 이유는 그들의 작품이 관람자의 감정을 수동적으로 끌어들이는 것 이상의 일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타인의 감정 상태를 우리 자신의 감정 상태와 분리된 것으로서 지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감정이입을 통해 우리 자신에게로 끌어들인다. 관람자가 실레의 자화상에 나온 뒤클린 자세를 무의식적으로 흉내 낼 때, 그는 실레의 감정이라는 사적인 세계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관람자의 몸이 실레의 감정 묘사가 펼쳐지는 무대가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뒤틀린 자세로 몸을 그림으로써, 실레는 관잠자의 감정이입도 유도하는 것이다. 예민한 관람자로서는 실레나 코코슈카의 초상화를 보는 것이 지각 행위만이 아니라 강력한 정서적 경험이기도 하다"(406).

 

또 화가가 그려내는 모델의 얼굴 대칭에서도 무의식적 내면 세계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얼굴 대칭성이 중요하다는 점은 오스카어 코코슈카와 에곤 실레의 작품에서도 뚜렷이 드러나지만, 클림트와 달리 이들은 얼굴과 감정을 과장했다. 사실 그들이 표현주의 화가로서 두각을 나타낸 데에는 이 과장된 표현이 한목했다. 클림들의 초상화가 모델이 심리적으로, 그리고 발달 면에서 자기 환경에서 평온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말해 주는 기표를 제공한다면 코코슈카의 초상화는 정반대다. … 그의 초상화들은 좌우 불균형과 그 불균형이 전달하는 내면의 갈등 때문에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이렇게 고통의 무의식적 기표를 활용함으로써 표현주의 화가들은 정교하고 미묘하고 지극히 현대적인 방식으로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할 수 있었다"(452).

 

 

"통합"은 이미 학계의 이슈가 된지 오래입니다. 그동안 잘게 부수는 분석적 학문이 주도를 했다면, 앞으로는 학문과 학문이, 분야와 분야가 경계를 넘나들며 통합을 이루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통찰의 시대>는 뇌과학과 미술의 통합적 통찰을 통해, 미술 작품을 볼 때 관람자의 뇌에서 어떤 과정이 진행되는지를 탐구하며, 인간의 마음, 즉 인간의 생각과 감정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한발 더 다가갔습니다. <통찰의 시대>를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사실은 '인간 내면(무의식)'의 발견이 얼마나 혁명적인 것이었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겉모습 아래로 파고들어야만 현실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큰 울림으로 마음에 남았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본래 대체로 비합리적이라는 관점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또 화가의 작품들이 당대의 지성적 환경에 영향을 받고, 그런 시각에서 그림을 읽어내는 작업도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빈 모더니스트 화가의 역할이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진리를 전달하는 것"이었다는 통찰이 그림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저자는 "내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마음의 과학이 지닌 관점과 인문학의 관점을 특정한 공통의 지적 문제에 집중하고 예술, 마음, 뇌를 연관 짓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13)이라고 밝힙니다. 뇌과학과 미술은 마음을 보는 서로 다른 두 관점을 대변합니다. 과학을 통해 우리는 모든 정신생활이 뇌의 활동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설명만으로 마음을 다 이해했다고 하기에는 무엇인지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술 작품들은 마음을 이해하는 데 좀 더 생생한 생명력을 부여합니다. 즉, 뇌과학이 우리가 우울하다고 느낄 때 뇌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설명한다면, 예술 작품은 그 우울함이 어떤 느낌인지 느끼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뇌과학과 미술의 대화는 필연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읽어내기 녹녹한 책은 아니지만 대단히 흥미로운 책이며 통합적 사고를 훈련할 수 있는 좋은 교재이기도 하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