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문장 2 - 자유롭고 행복한 글쓰기란 무엇일까 한국어 글쓰기 강좌 2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은 글은 논리가 있어야 하고, 덧붙여 문법적으로 단정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명료해야 합니다. 더 쉬운 말로 하면 조리가 있어야 합니다. 글의 앞부분에서 말한 것을 뒤에서 뒤집는다든다 하면 안 되겠죠. 논리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12).



<고종석 문장>은 "한국어 글쓰기 강좌"를 그대로 책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두 번째 책이라 기획이나 구성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없어 저처럼 사전 지식 없이 두 번째 책부터 읽는 독자들은 좀 어리둥절 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책을 읽으려 했는데 갑자기 강좌가 열리는 현장으로 순간이동을 한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고종석 문장>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문법에 딱딱 맞아떨어지고, 명료한 글", 그러니까 아주 표준적 문장입니다. 고종석 선생님은 작가로서의 노하우나 철학을 묻는 질문에서도 이렇게 답변합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원칙적으로 표현적 기능보다는 의사소통 기능을 중시합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아름답게 쓰려는 노력보다는 명료하게 쓰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는 뜻입니다"(397). 그렇다고 아름다운 문장을 경시하거나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가 명확한 문장을 우선한다는 뜻이며, 그런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는 견해를 피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강좌에서 '좋은 글"이란 "명료한 글"과 같은 의미입니다.


명료하고 아름다운 글의 좋은 예로 김현의 <'말들의 풍경' 시작하며>란 글을 함께 읽는 것으로 강좌가 시작됩니다. 글쓰기 실전에서는 고종석의 <자유의 무늬>라는 책을 함께 읽으며 첨삭하는 과정을 통해 좋은 글의 요건을 함께 생각해보는 방식으로 강좌가 진행됩니다. 하나의 원칙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예문을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발표된 글을 읽어나가며 좀더 좋은 문장이 되려면 어떻게 첨삭하는 것이 좋은지를 보여줌으로써 좋은 글의 요건을 세워나가는 식입니다. 같은 말이 되풀이 되는 문장을 고치고, 균형감과 대칭성이 맞지 않는 문장을 고쳐나가가 보면 저절로 명료한 글에 대한 원칙이 세워집니다. 실전을 통해 이론을 세워나간다고 표현하면 맞을까요?


이 책은 저자의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이 독서의 즐거움을 더해주기도 합니다. 전혜린의 글, 피천득의 글을 나쁜 예로 제시하며 날카롭게 비판하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전혜린의 글은 "구별짓기의 나쁜 예"로 등장하는데, 이렇게 가차없는 비판을 가합니다. "솔직히 말해 전혜린의 문장은 형편없습니다. 이국적 취향의 단어들을 점점이 박았을 뿐 문법적으로 단정하고 깔끔한 문장, 기다란 울림을 주는 성찰적 문장이 거의 없어요. … 정직하게 기록하지 않고 속된 말로 완전히 '뻥을 쳐서' 글을 썼다는 것. 그래서 저는 전혜린의 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실 아주 나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121). 서슬퍼렇죠?


아사코와의 인연을 그린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글도 혹독한 비평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글쓴이가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았는지를 스스로 폭로한 거예요. 자기자신의 헐벗은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낸 거죠. 내면의 천박함, 그리고 자기가 살았던 역사나 사회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는 것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드러낸 겁니다"(127).



"스타일만 가지고는 마음의 천박함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올바르고 기품 있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 제일 좋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 천박함을 절대 글에서는 드러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생각이 양식과 동떨어져 있으면, 아무리 스타일이 훌륭해도 독자들은 거기에 혐오감을 지니게 됩니다"(127).


저자의 강좌 중에서 가장 마음을 울린 부분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첫째, 명료한 문장으로도 가슴에 쿵 소리가 울리는 감동을 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둘째, 좋은 글을 쓰려면 비판과 성찰의식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을 쓴다는 것은 할 말이 있다는 것이고, 할 말이 있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비판적 시각이나 성찰이 없다면 우리가 하는 말은 공허한 울림에 지나지 않고, 하나마나 한 이야기가 되고, 앵무새처럼 누군가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리로 여겨지는 것들을 약간 거리를 두고 보자. 모든 것을 의심하자"(160)는 한 문장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밖에도 "글을 쓴 뒤에 소리 내어 읽어보라", "글을 잘 쓰려면 어휘를 늘려야 한다", "한 문장에서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말자", "균형감, 대칭성은 글에서 굉장히 중요한 미적 요소이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지려고 노력하라"는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글쓰기의 이론과 실제가 있다면 이 책은 둘 다 일수도 있고, 이도 저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떤 책은 직접 글을 써보도록 유도하고, 또 어떤 책은 명확한 이론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고종석 문장>은 둘 다 하는 듯 하면서 둘 다 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실제 글이 아니라 '생각'을 먼저 수정하는 책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최종적으로,) 고종석의 <자유의 무늬>를 읽었다면 이 책에 좀 더 몰입할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 하나와, 앞으로 글을 쓸 때 어떻게 고치면 좀 더 명료해질까 하는 물음이 생기겠구나 하는 것이 최종 감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