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지음, 손영미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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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에는 성별이 없다"(10).

 

 

인류가 진화하고 있는 것이 맞다면, 인간의 지성은 바로 지금이 인류 역사상 가장 고등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진화'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여성 차별"이라는 뿌리 깊은 편견의 문제는 여전히 극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하고 여성 대통령도 나오는 때이는 여권이 많이 신장되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아직도 생활 곳곳에서 차별을 경험하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차별을 경험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평등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참 풀기 어려운 숙제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여성 차별 문제를 들고 나오면 "그럼 여자들도 군대 가라"는 식의 답변이 돌아옵니다. 평등의 문제를 잘못 다루면 역차별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분명 남자와 여자 사이에 존재하는 생물학적 "차이"를 무시하게 되는 일도 벌어집니다.

 

18세기 후반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인간 이성의 빛이 암흑(!)을 밝히기 시작하였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나봅니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었지만 그 이성의 빛은 남성편향적이었습니다. 계몽주의를 이끌었던 루소도 봉건적 전제 지배를 격렬하게 공격하고 출신에 관계없이 인간은 평등하다고 주장했다지만, 이 책에 보면 그 역시도 성차별적 인식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1789년 혁명 후 프랑스 의회에 제출된 탈레랑의 교육 법안에 대한 반론으로 6주 만에 완성되었다"(9)고 합니다. "교육 법안의 골자는 공화국의 모든 소년에게 국민 교육을 시행한다는 것"이었는데, 저자 울스턴크래프트는 바로 그 점에 분개했습니다. 소년만이 아니라, "소녀들도 국민교육의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교육의 불평에 맞서 왜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공교육을 받아야 하는가를 역설한 책입니다.

 

<여권의 옹호>는 "근대 페미니즘 혁명의 선구자"로 불리는 울스턴크래프트의 "불멸의 저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페미니즘 역사에서 보면 초기 저작이라는 것을 충분히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눈에는 그녀도 싸워할 '적'일지 모릅니다. <여권의 옹호>에 담긴 그녀의 주장도 여전히 가부장적 사고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권의 옹호>는 교육의 불평등, 법적 불평등에 맞서 여성의 법적 사회적 평등을 요구하는데, 그 첫 걸음으로 공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여러 논의의 핵심은 바로 여성이 교육을 통해 남자의 동반자가 되지 않으면, 그들은 지식과 미덕의 진보를 막게 될 것이라는 단순한 원칙에 기초합니다"(25). 울스턴크래프트는 "이 비참한 현실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잘못된 여성 교육이라는 사실을 절감"(32)하며,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관습과 사교육이 여성을 무지에 묶어두는 주범이라고 보았습니다. 순결을 강조하고, 순수와 여성다움을 강조하는 교육이 여성을 '유순한 가축 같은 존재"로 만들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상당 부분 여성이 받아온 교육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여자들은 언제나 남자가 먹여살려 주기를 기대하고, 자신의 몸을 그들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간주하도록 교육받아 오지 않았는가. 음란한 자태와 갖가지 교태는 욕망이나 허영심보다 더 강력한 자극을 가진 셈이고, 이는 순결을 잃은 여성은 존중받을 모든 걸 잃는 셈이라는 세간의 말이 정당하다는 걸 보여준다. 여성은 인간이 가지는 여러 열정 중 사랑만을 키우도록 교육받아 왔는데, 순결이라는 한 가지 미덕을 잃으면 순식간에 나쁜 여자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여성의 인격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닌 셈이다"(143).

 

울스턴크래프트는 이 문제를 깰 수 있는 방법이 남자와 여자에게 똑같이 행해지는 '공교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울스턴크래프트의 한계는 이러한 교육의 목표를 남자의 동반자, 즉 남자와 "똑같은" 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교양과 미덕으로 가정을 잘 이끌어가는 멋진 아내, 좋은 엄마가 되는 것으로 설정했다는 것입니다. "남녀를 모두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같은 학교에서 교육해야 한다는 것과, 가정에 대한 사랑을 길러주기 위해 밤에는 집에서 자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바다"(316).

 

그럼에도 이 책이 "근대 페미니즘 혁명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것은 다양한 인간 관계에 내포되어 있는 다층적으고 구조적인 종속의 문제를 끄집어 냈다는 것, 여성이 독립적이지 못하고 남성 의존적이며 무능하게 비쳐지는 이유는 선천적이고 자연적인 차이 때문이 아니라 차별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양산된다는 것을 포착해냈다는 데 있습니다. <여권의 옹호>는 200년도 더 전의 저작이지만, 스스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고전'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굉장히 시적으로 다가오는 문장들이 섬세하면서도 문학적 아름다움까지 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기쁨의 원천인 신의 존재를 느끼며 가만히 멈춰 서서 이 순간의 만족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부드러운 우울함이 가진 장엄한 암흑을 느낄 수 있는 정신이 아니면 진정으로 순결하다고 하기 어렵다"(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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