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긴 생각 이어령의 80초 생각나누기
이어령 지음 / 아이스크림미디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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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눈


짐승 가운데 인간의 눈을

제일 많이 닮은 것은 무엇일까요?

동물학자들은 그것을

'사자'라고 합니다.

힘이 센 백수의 왕이라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자는 들판에서 사는 짐승이라

언제나 먼 지평을 바라보며 자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멀리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인 것입니다.

초식동물들은

발밑에 있는 풀만 보고 다니지요.

그래서 시야가 아주 좁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사자와 비슷해도 호랑이는

숲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먼 곳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두 발로 선 인간은

언제나 먼 곳을 바라보며 삽니다.

 

상상과 지식의 넓은 초원에서 사는 사람들은

사자처럼

'지금, 여기'의 발밑이 아니라

먼 내일과 더 넓은 지평을

꿈꾸며 삽니다.

 

비전입니다.

비전을 잃으면

인간의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스티브 잡스도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스마트폰 금지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자녀들은 아이패드를 써본 적이 없으며, 저녁이면 부엌에 있는 긴 식탁에 아이들과 둘러앉아 책과 역사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기를 즐겼다는 것입니다. 당시 잡스의 자녀 4명 가운데 3명은 이미 십대였답니다.

 

요즘은 전철에서도, 식당에서도, 거리에서도, 심지어 모임 중에도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이 그러고 있으면 불쾌감이 느껴지는데, 한편으로는 나도 이제 어쩔 수 없는 구세대인가 싶기도 합니다.

 

<짧은 이야기, 긴 생각>은 이어령 선생님의 글로 "처음에는 애니메이션으로 KBS에 방송용으로 제작했고, 다음에는 그림책으로, 이번에는 순수한 글만을 모아 단행본 형태로 꾸민 것"입니다. 이 책은 특히 "부지런히 인터넷을 검색하고, 눈을 뜨면 트윗을 날리고, 유투브에서 영상을 다운받고, 그저 그런 이야기인 데도 수백, 수천 통의 문자를 쏟아대어야 외롭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 검색이 아니라 사색을 하자고 요청합니다. 그것은 생각을 나누자는 것이기도 한데, 이어령 선생님은 그 의미와 가치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생각을 나눈다는 것은 비 오느 날 우산을 함께 쓰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거할 든든한 집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생각을 나눈다는 것은 바로 그 삶의 공간을 나눈다는 것입니다."

 

 

  

푸는 문화


옷을 벗으려면

옷고름을 풀고,

원수와 다시 친해지려면

마음을 풀고, 원한을 풀고,

코가 막히면

코를 풀고.


맺히고, 뭉치고, 얽혀 있는

모든 것을 풀다가

나중에는 심심한 것까지

다시 풀어

심심풀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낸

한국인.


서양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어텐션(Attention)'의 차렷 자세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하려면

뭄부터 풀어야 합니다.

시험 치러 가는 아이를 향해서

엄마, 아빠가 말합니다.

"마음 푹 놓고 해!"


...


서양 사람의 힘이 긴장에서 나온다면

한국인의 힘은 푸는 데서 나옵니다.


"풀어 버려!" 이 한마디가

분열과 갈등을 창조의 빛으로 바꿀 것입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글은 글은 특히 "우리가 가진 것"의 가치와 숨겨진 힘을 깨닫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푸는 문화"라는 글이 그랬습니다. 오래 전이라 기억이 희미하긴 한데, 독일 사람들은 성냥 한개비도 절약을 하느라 담배를 피울 때도 몇 명이 함께 모여야 성냥을 켜서 불을 나누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 좀 빌립시다" 한마디면 다 해결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제 기억 속에는 이어령 선생님의 글로 기억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도 우리가 미처 그 가치를 모르고 사는 우리의 저력을 일깨우는 통찰이 가득합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에 구글과 네이버의 비교가 재밌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검색 시장의 패권을 잡은 것은 미국의 구굴이지만 우리나라에선 토종 검색 사이트가 굳건히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구굴은 원하는 정보를 정확하게 찾아주는 필터링 기술이 핵심이라면, 우리네 검색은 있는 정보를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만들어주는 검색 방식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사용자들이 서로 질문하고 답변하면서 만들어가는 맞춤식 대화형의 "지식IN" 같은 것이 우리만의 독특한 DB 생성 프로젝트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남을 가르쳐주고 싶어하는 한국인의 독특한 지식 풍토"도 한몫합니다(271-272).

 

이밖에도 "아버지에 대한 태도는 본능이 아니라 학습이고 인간이 만들어온 문화현상"이라는 것, 겨울이면 벽에 81송이 흰 매화꽃을 그려 붙이고 동지 이틑날부터 한송이씩 붉게 칠해가는 우리네 세시풍속 "구구소한도의 지혜"가 감동적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짧은 이야기, 긴 생각>은 이야기가 가진 힘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짧은 이야기 속에 마음을 울리는 진한 감동에 있고, 우리 삶에 대한 반성이 있고, 삶을 이끌어가는 지혜가 있고, 시대를 통찰하는 날카로운 통찰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당장 '지금, 여기'의 발밑이 아니라, 먼 내일과 더 넓은 지평을 꿈꾸게" 하는 넓은 시야를 갖도록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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