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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너머의 연인 - 제126회 나오키상 수상작
유이카와 게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사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최근에 읽은 어떤 소설보다 재밌게 읽은 책입니다. (이런 분류가 가능하다면) 현대 여성들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자로 산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책은 2004년도에 초판되었는데, 두 여성이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가는 이들의 선택과 결정이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으로 비춰졌을 듯합니다.
"여자에는 두 종류가 있다.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무기로 삼는 여자, 그리고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약점으로 여기는 여자"(248).
스물아홉 살의 루리코와 모에는 20년지기 친구이지만 정반대 타입의 여성입니다. 루리코는 상냥하고 귀엽고 여자답지만, 껍질은 한 꺼플 벗겨내고 나면 늘 제멋대로고 자기만족에 빠져 살고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여성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고, 자기밖에 생각하지 않고, 남에게 태연하게 상처를 주고, 무슨 일이든 참지 못하는 성격이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참는 것을 너무너무 싫어하는데, 자신을 불행하기 만드는 일을 왜 굳이 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이기적인이라는 것은 순순히 인정하지만, 왜 이기적이어서는 안 되는지는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입니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물건이든 남자든 빼앗아서라도 가져야 직성이 풀리고, 결혼한 남성이나 친구의 남자친구를 빼앗고도 그것이 나쁜 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에게 그것은 행복해지려는 노력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루리코는 이기적이고 오만하고 자기만족의 덩어리 같은 여자입니다.
루리코가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을 너무나 좋아하는 여자만큼 골치 아픈 것도 없"습니다(10). 그녀는 행복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타인이 싫어하든 조롱하든 전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루리코는 성가신 일을 하느니 좋은 남자를 붙잡아 결혼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세 번이나 했습니다. 문제는 모두를 그녀가 바라는 행복을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결혼을 포기할 마음은 없습니다. 행복은 결혼으로 완성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래야 마땅한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것들 속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 그보다 중요한 일이 또 뭐가 있을까"(96).
루리코와 달리 모에는 냉정하고 거칠고 거만하게 보이는 타입의 여성입니다. 공부든 일이든 언제나 열심히 하는데 재미가 없습니다. 독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눈 하나 까닥하지 않을 정도로 고집이 있지만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기자가 되어 세계를 누비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 꿈에 한발작이라도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직장여성인 모에는 딱히 여자로 태어난 것을 불행이라 여기지는 않지만 불편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115). 학교에서 배운 남편 평등의 가치가 현실 세계에서는 허황된 기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통감하며 여자라는 성 자체가 핸디캡임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어차피 여자인걸 뭐' 하고 변명하며 포기하는 자신을 느낍니다. 그때마다 약해졌네, 라고 자조하지만 조금 더 긴장하며 살고 싶다고 느낍니다. 점점 더 시시하고 따분한 여자가 되어간다고 생각하는 모에는 "만약 내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역시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까"(114) 하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모에는 여성성을 내세워 남자에게 의존하며 살고자 하는 루리코의 삶을 좋아하진 않지만 결국 루리코 같은 여자가 인생을 재미나게 보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게으름뱅이에다 늘 남자에게 의존하고, 관심사라고는 연예인과 브랜드 제품, 그리고 멋 부리기밖에 없는 루리코가 늘 어처구니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비록 실패를 거듭하기는 했어도 그녀쪽이 오히려 행복을 거머잡지 않았나 생각"됩니다(118). 모에는 루리코라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의문을 하나 품고 있습니다. "대체 내게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는 뭘 원하는 걸까"(118).
루리코와 모에, 이 두 여성의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사랑에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사랑에 목을 멘 루리코도, 남자와 사랑을 믿지 않는 모에도 남자의 배신이나 이별 앞에서 심하게 상처받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자의식이 강해서일까요, 진짜 사랑을 해보지 못해서 일까요. 아무튼 '쿨'합니다.
"밤은 언제든, 아침을 데리고 온다는 약속을 지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심하고 잠 속으로 빠져든다. 모에와 루리코, 둘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353).
복잡해지는 사회만큼이나 현대인들이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도 날로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삶이 행복인거야, 라고 획일화할 수 없습니다. 생물학적 아버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정자 기증으로 아이를 낳고, 이혼 후에 아이들의 성을 자신의 성으로 바꾸고, 세 번의 결혼으로 성이 다른 아이 셋을 키우는 여성들의 삶을 두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고 돌맹이를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녀들이 만들어낸 세상의 균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균열이 반가웠습니다. 세상의 편견 때문에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상처투성이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들에게, 다시 행복해지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누구도 돌을 던질 권리 따위는 없는 것입니다.
루리코의 삶의 방식이나 모에의 삶의 방식의 대비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닙니다. <어깨 너머의 연인>은 완결되지 않은 채 끝납니다. 그녀들은 정지해 있지 않고 계속 전진하고 움직입니다. 현실을 직시하라는 쓴소리 앞에 루리코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럼 불행을 생각하는 것은 현실이고, 행복을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란 말인가요?"(330) 삶에는 완성된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늘 교차하게 마련이고, 우리는 끊임없이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매순간 행복을 선택하며 살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세상의 비난이나 편견에 갇히지 않는 루리코와 모에를 응원하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