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질문 김영사 모던&클래식
로버트 노직 지음, 김한영 옮김 / 김영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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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숱한 밤들 나를 잠못들게 했던 질문입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도 힘들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권유로 실업계 고등학교에 원서를 넣었는데 덜컥 수석합격을 했습니다. 친구는 새로운 삶의 활력을 얻었고, 잃었던 삶의 희망을 다시 찾았습니다. 암울하기만 했던 친구 얼굴에 처음으로 환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 아르바이트에도 열심이었습니다. 벅찬 계획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겨울 날 아침, 찬물로 머리를 감던 친구가 쓰러졌습니다. 너무 고단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한 엄마는 방으로 데려가 누워 있으라 말하고, 따뜻한 밥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상을 차려 방에 들어갔는데, 친구는 하늘나라로 떠난 뒤였습니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라는 질문에 부딪힐 때마다, 그 질문이 나를 괴롭힐 때마다 나는 친구의 일을 떠올립니다. 친구의 죽음 그동안 내 삶을 이끌었던 모든 가치체계를 헝클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나에게도 닥칠 죽음이라는 운명 때문일 것입니다.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며 내가 결심한 단 한 가지는 후회 없이 살자는 것이었습니다. 후회 없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후회 없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답을 찾아 헤맸는데, 가장 흔한 대답, 많은 사람이 말하는 대답은 한 가지였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지금 당장 하라. 이 책도 비슷한 답을 내놓습니다. "한 개인이 지나온 삶에 대해 느끼는 후회(살아온 삶에 대한 후회와는 다르다)는, 그가 이루지 못하고 남겨둔(그가 할 수도 있었던) 중요한 것들과 그가 이룬 중요한 것들의 비율에 기인한다고 볼 수도 있다. (…) 여기에서 나오는 일반적 교훈은 매우 분명하고 놀랍지도 않다.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25). 

그런데 이 책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 일인가를 묻습니다. "이 책이 다루는 명상들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무엇이 중요한지 파헤치는 것이다"(25).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천재 철학자", "현존하는 가장 뛰어나고 독창적인 철학자 중 한 명"이라고 평가받는 저자는 철학적인 방법으로 진리에 다가가고자 합니다.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총 26가지 주제를 탐구합니다. 저자는 이 책이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 아니라, 하나의 초상화를 완성해나가는 화가의 붓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처럼 주제마다 핵심적 논점을 파고들기 위해 철학적 성찰을 총망라한 다양한 철학적 짜임새를 보여줍니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겸손함으로, 진리에 다가가고자 열망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에게는 그런 겸손함이 없어 다소 아쉬웠습니다. 입장을 주장하는 책은 아니지만, 오만하다고 할까요. 친구의 죽음이 내가 붙들고 있던 가치체계를 헝클어놓았을 때, 내가 가장 절실히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가치 판단은 "밖"에서 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후회 없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를 물었을 때, 그 기준이 모두 제각각이고 다분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이었기 때문에 어디서도 "절대 가치"는 우리 "밖"에서 와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신앙을 갖게 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자기 만족으로 끝나는 삶이 아니라, 절대 가치를 말해주는 진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허와 허무를 극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철학적 한계, 논리와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한 천재 철학자의 성찰은 소크라테스만큼 제가 감동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저자가 던져준 핵심 문제 중에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부분은 "홀로코스트"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유대인을 말살하겠다는 의도로 유럽 유대인의 3분의 2를 살해한 홀로코스트"의 야만스런 잔혹성에서 저자는 인류의 타락을 보았습니다(335). 그는 확신합니다. "우리는 타락했다." 저자는 여기서 인류 역사에 드리워진 비극적 종말을 예견합니다. "이제 인간의 역사와 인류가 더럽혀진 상황에서 그로 인한 상실은 개개인의 상실을 뛰어넘는 특별한 상실이 아닐 것이다. 인류는 존속할 권리를 상실했다"(338). 동시에 기독교 시대도 종말을 고했다고 비판하며, "예수의 십자가가 홀로코스트에 직면한 인류를 구속하기에 불충분했다"거나 "그리스도가 무엇을 성취했든 이제 그것은 효력이 없다"(342)는 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런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기독교 교의는 예수가 인류의 고통을 짊어지고 따르라고 가르쳤지만, 다른 사람들도 예수처럼 구속을 위해 고통을 짊어져야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만일 기독교 시대가 끝났다면, 이제 우리 각자가 인류의 고통을 짊어져야 하는 시대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홀로코스트 이전에 예수가 우리를 위해 했다는 것을, 이제 인류는 스스로 해야 한다"(342). 인류는 타락했다고 단언하는 그에게, 그의 논리대로라면 그 타락한 인류에게 가치 있는 삶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되묻고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의 논리는 홀로코스트가 인류에게 말해주는 무서운 진실, 예수의 제자들이 무엇에 실패하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삶을 성찰하면서 얻는 이해는 그 자체로 삶에 스며들고 삶의 경로를 좌우한다"(6).

이 책은 당신의 길은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성찰되지 않은 삶은 끌려가는 삶입니다. "나는 소크라테스처럼 성찰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그러나 깊이 있는 사고를 앞세워 삶을 이끌 때, 우리는 남의 삶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성찰되지 않는 삶은 충분하지가 않다"(11). 이 책은 진지한 성찰 없이 남들 가는대로 휩쓸려가는 인생들에게 던져주는 경고이기도 하고,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고자 하는 잠못드는 구도자를 철학적 성찰로 안내하는 하나의 길이기도 합니다. 불확실성의 시대, 가치 혼돈의 시대, 미친 속도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시대, 분주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소크라테스의 물음에 한 번쯤 진지하게 답해보면 어떨까.

소크라테스는 물었다. "아테네 시민이여, 오로지 돈을 벌고 명성과 위신을 높이는 일에 매달리면서, 진리와 지혜와 영혼의 향상에는 생각이나 주의를 조금도 기울이지 않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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