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어스 - 인간의 네 번째 본능, 호기심의 모든 것
이언 레슬리 지음, 김승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인간의 네 번째 본능 : 호기심"

어떤 분이 말하기를, 남자들이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건 감탄을 잘 하기 때문이랍니다. 어디를 데려가도, 뭘 사줘도 "와우~"라는 탄성으로 반응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를 좀 먹은(?) 여자들에게서는 그런 풋풋한 감탄이 나오지 않는답니다. 어릴 때는 무얼해도 새롭기만 한데, 경험이 많아지면 웬만해선 감탄할 일이 없어지니 자기도 모르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게 되나 봅니다. 저는 이 차이가 호기심의 문제라고 생각했고, 나이가 들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큐리어스>는 호기심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인간의 DNA는 원숭이의 DNA와 거의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원숭이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절대적인 차이점이 하나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왜?"라는 질문입니다. 인간이 가진 세 가지 본능, 즉 식욕, 성욕, 주거욕은 원숭이에게서도 유사하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세 가지 본능 외에 인간만이 가진 네 번째 본능이 있다고 말합니다. "순수한 호기심"(16)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싶어 하는 것 사이에 간극이 있을 때 호기심을 느낀다"(77).

 

역사적으로 호기심은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고, 또 장려되기도 했습니다. 호기심은 일탈적입니다. "사회가 인정한 기존의 길을 경멸하고 계획에 없는 충동적인 길을 좋아"(17)합니다. "그래서 질서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사회는 호기심을 억누르려"(18)합니다. 가톨릭교회가 유럽을 장악했던 시대에는 '신'으로부터 정신을 흩트리는 죄악(113)으로 간주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진보와 혁신의 시대에는 인간의 "호기심"이야말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증폭제이며, 혁신의 원동력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호기심의 종류를 구분합니다. 흔히 말하여지는 것은 '다양성 호기심'입니다. 다양성 호기심은 한마디로 몸이 근질거리는 것으로, 충동적이며 이리 저리 관심이 옮겨다니는 것입니다. 중세 시대에 죄악으로 간주되어 억눌러야 할 무엇으로 취급되었던 것이 정확하게 말하면 이 다양성 호기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호기심은 무의미하고 정신을 흩뜨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혁신의 기폭제로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호기심은 '지적 호기심'입니다. 지적 호기심은 "더 깊이 있고, 더 많은 노력을 요하고, 더 방향성을 지운 종류"의 호기심입니다(25). 한마디로, 호기심은 생물학적 충동이 아니라, 지적 활동입니다.

우리는 흔히 어릴 때는 호기심이 왕성한데, 어른들의 교육이 아이들의 순수한 호기심을 망가뜨린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오해인지 가르쳐줍니다. 지식 호기심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뇌는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너무 많이 알아서 그것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도 더 알아보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호기심을 자극하려면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합니다. 순수 백지 상태일 때가 아니라, 해당 주제에 대해 어느 정도 기초 지식이 있는 호기심이 더 왕성하게 자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아는 것이 많아 먹고 싶은 것도 많다"는 말을 하는데, 그냥 나온 소리가 아닌 듯합니다. 

저자는 "아이가 호기심을 따라가게만 두면 놀랍고 현명하고 지적인 발견의 여정을 스스로 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207)이 호기심을 억누르는 것만큼이나 악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합니다.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학업성취도가 더 높은 것은 바로 이 지식의 테이터베이스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과 지식에 무관심한 사람들로 지적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148).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인으로는 "양육 습관, 교육 제도, 교육 방식, 사회가 호기심에 보이는 태도"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이 책에서는 "인터넷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느냐"를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다룹니다(145). 지적 호기심은 많은 "노력"을 요하는 지적 활동인데, 디
지털 기술이 '노력'과 '지적 탐험' 사이의 연결을 끊어 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호기심을 떠받쳐 주는 것은 답이 내려지지 않은 질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클릭 몇 번이면 쉽게 답을 찾아주는 인터넷이 깊이 질문하는 습관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쉬운 답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질문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있다"(108). 인터넷은 호기심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인터넷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지적 탐험의 취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책은 호기심이 충만한 탐구자가 되기 위한 일곱 가지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책에서 배운 것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수수께끼와 미스터리를 구분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수수께끼는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스터리는 "지식과 정보를 모으고 가장 중요한 요인이 무엇인지 찾아 나가면서 해결책에 다가"갑니다(94). 그런데 "우리는 미스터리보다 수수께끼에 더 관심이 많은 문화 속에 살고 있다"(99)고 지적하며 이렇게 경고합니다. "수수께끼로만 생각하는 사회와 조직은 아직 보지 못한 가능성들보다는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만 집중한다. 인생의 문제를 모두 수수께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처세술 책이 말하는 것과 달리) 단순한 답들로 분해되지 않는 문제에 접하면 당황하고 좌절하게 될 것이다"(100). 저자는 호기심을 잃지 않으려면 "수수께끼를 미스터리로 바꾸어 내라"고 요청합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 중에 하나는 호기심은 타고난 특질이 아니라 '상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고정된 양의 호기심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호기심은 살아가면서, 그리고 하루 동안에도, 늘었다 줄었다 하는 유동적인 특성이다"(67). 다시 말해, 호기심은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이나 상황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호기심에 불을 지피는 쪽으로 삶을 이끌어갈 수도 있고, 호기심을 짓누르는 쪽으로 삶을 이끌어갈 수도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믿기지 않을 만큼 흥미로운 곳이 될 수도 있고, 지루하고 따분하기 짝이 없는 하루 하루로 끝나버릴 수도 있습니다. <큐리어스>는 잠들어 있는 호기심 본능에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가볍지 않은 책이지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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