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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1 - 오늘을 위한 성찰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14년 7월
평점 :
'고금통의'(古今通義)는 예나 지금이나 관통하는 의(義)는 같다는 뜻이다(5).
얼마 전에 읽은 소설책에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국가 위기를 빌미로 구테타 세력이 하루아침에 정권을 장악하자 그 기세에 놀란 한 정치인이 굴욕적이지만 무릎을 꿇으려 합니다. 그러자 선배 정치인이 "역사를 배우라"고 조언합니다. 그렇게 정권을 잡은 세력은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준다고 말입니다. 또 인간과 원숭이는 DNA가 유사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는데, 원숭이는 "왜?"라는 질문을 하지 못하고, 역사를 성찰할 줄 모른다고 지적하는 인문학 책도 기억이 납니다.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그 인생도 지워진다는 것을 우리는 어려운 책과 이론이 아니어도 알 수 있습니다. <메멘토>나 <내 머리속의 지우개>라는 영화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요.
<이덕일의 고금통의>는 왜 우리가 역사를 알고 배워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고,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그러니 오늘과 내일에 집중하는 것이 더 지혜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올바르게 설정하기 위해서는 내일이 아니라 어제를, 역사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이 새삼 깨우쳐주었습니다.
이덕일 역사학자의 책은 빠지지 않고 읽으려고 노력하는 독자 중 한 사람입니다. 이덕일 선생님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가 흥미롭고 새로워서 읽는 재미가 쏠쏠한 이유도 있지만,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하는 열정과 사명이 제 빈곤한 역사의식을 깨워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풍부한 사료와 냉철한 논리를 바탕으로 역사의 진실을 추적하는 선생님의 글은 거짓으로 덧칠해진 역사의 외피를 날카롭게 걷어내고, 우리가 잃고 있던 자긍심을 찾아줍니다. 지금 중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역사와 영토 뺏기에 나서고 있다"(15)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른 나라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기는 커녕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조차 일제식민 사학의 틀을 말끔히 털어내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이 책에 "싸우지도 않고 잃어버린 섬"이란 글에 보면, "백두산 반쪽을 중국에 넘겨준 데 이어" 1990년 북한이 옛 소련과 영토 조약을 체결하며 "녹둔도"이라는 섬을 러시아에 넘겨주었다고 한탄합니다. "박지원이 [열하일기] <도강록>에서 '조선의 옛 강토는 싸우지도 않고 오그라들었다"라는 한탄"(89)을 똑같이 토해내며 말입니다. 지금 동북아는 역사 전쟁, 영토 전쟁이 치열한데 우리는 그 싸움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제식민 사학의 잔재를 밝히고 반도사관을 극복하기 위해 붓으로 싸우고 있는 이덕일 선생님과 같은 역사학자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덕일의 고금통의>는 짧은 역사칼럼 형식의 글을 모은 것인데, 역사에 비추어 오늘을 반성하고 내일로 향하는 길을 모색하는 책입니다. 글은 총 5개의 카테고리(진실은 힘이 된다, 어제의 마음으로 오늘을, 사람에게서 길을, 역사 속 자기 경영, 어떻게 살 것인가)로 나뉘어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역사에 대해 새롭게 배우며 흥미를 가지된 부분은 "고인돌 문화"입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고인돌의 절반에 육박하는 3만여 기가 군집하고 있는 고인돌 왕국"인데, "고인돌은 고조선이 만주와 한반도 전체를 아울렀던 대제국임을 나타내는 유물의 하나"(19)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고조선이 대륙의 지배자였음을 말해주는 유물이라는 것입니다. 또 "유럽에 고인돌과 함께 청동기를 전한 민족"(67)이 우리 선조들이라는 주장도 흥미로웠습니다. 영국의 "스톤헨지 근처 에이번 강 주변 수십 기의 무덤의 주인공이 청동기 문화를 갖고 영국으로 들어온 아시아 계열 사람이라는 연구 결과"(67)가 놀랍습니다.
그동안 유럽 여행을 꿈꾸며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영국의 대영 박물관에는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이들 박물관은 "이집트나 아시아 지역에서 강탈해 온 유물이 훨씬 더 많은 약탈 박물관"(32)이라는 지적도 이 박물관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했습니다. "전 지구적 약탈 문화재 반환 운동이 필요한 때"(33)라는 지적도 강탈 당한 채 손놓고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 속 자기 경영"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읽은 선조들의 독서법이 흥미로웠습니다. 정사를 돌보느라 독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제왕들은 주로 밤 9-11시에 책을 읽어 이것을 '을야지람'(乙夜之覽)이라고 한다는 것, 세종 때에는 사가독서라는 유급 독서 휴가 제도가 있었다는 것, 조조는 누워서 책을 볼 수 있게 책상을 개조했는데 "이 때문에 조조는 누워서 하는 와독서의 원조로 비판받기도 했다"(324)는 이야기 등 재밌는 역사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지구촌 곳곳에 번지고 있는 한류 바람을 바라보며 우리 동이족은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흥이 많은 민족이었다는 역사적 기록도 고찰합니다. 옛부터 일할 때 열심히 일하고 놀 때 열심히 노는 민족이었다는 것이 새삼 재밌습니다. 외국에서 생활하다 돌아온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외국에서는 저녁이 되면 갈 데가 없고, TV를 틀어도 볼 것이 없어 심심했다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한류 문화가 우리 민족의 DNA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재밌습니다. <이덕일의 고금통의>를 읽어보면, 대륙을 지배하고 천문강국이었던 우리라면 문화의 한류 뿐 아니라, 역사의 한류, 과학의 한류, 경제의 한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는 예언의 두루마리를 펼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역사의 원리는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알면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덕일의 고금통의>가 말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역사를 기억할 때 새로운 미래를 써나갈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는 무엇인지 진지하게 함께 고민하는 마음으로 이 책이 널리 읽히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