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류시화 지음 / 연금술사 / 2014년 6월
평점 :
"시를 배우지 않는 마음은 담벼락을 마주 보고 선 것과 같다"(공자, 182).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이 한 줄의 시어를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어야겠다 생각한 건, 어쩌면 하이쿠에 대한 궁금증보다도 류시화 시인이 읽어주는 "한 줄의 시"라는 것에 더 마음이 끌렸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하이쿠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건 일본 소설을 통해서입니다. 등장 인물 중 한 할아버지가 하이쿠를 짓는 동호회 회원이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하이쿠는 "일본 고유의 단시형(短詩形)"이며, "5·7·5의 17음(音)형식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라고 합니다.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라는 제목 속에서 구도자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공지영 작가의 책 <높고 푸른 사다리>에 보면, 수사였던 토머스 머튼은 보들레르나 랭보 같은 열혈 시인들을 전도된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며, "결사적 각오로 죽음을 들여다보고, 인간 무(無)의 심연을 헤아리고, 인간의 해방을 부르짖었다"는 이유로 하이데거, 카뮈, 사르트르 같은 이들도 수도자에 빗대었다고 합니다. 토머스 머튼이 이 책을 읽었다면 하이쿠 시인들도 수도자라 부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큰 짐수레가
요란하게 울리자
떠는 모란꽃
부손
"가능한 한 덜 보여 주어야 시의 의미가 깊어진다"(108).
시의 매력은 무엇보다 생략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이쿠의 매력 또한 "생략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말하는 문학"(46)이라는 데 있습니다. 무엇보다 평범한 언어와 단순한 서술만으로도 이렇게 깊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감탄스러웠습니다. 생략을 통해 내게 가장 많은 말을 해준 것은 부손의 "큰 짐수레가 요란하게 울리자 떠는 모란꽃"입니다. 아마도 류시화 시인의 해설을 알지 못했다면 이 시도 소리나 움직임, 풍경을 전달하는 하나의 하이쿠 정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이쿠에는 보다 깊은 역사적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부손이 살았던 18세기 에도 사회는 농민 반란이 잦고 상인들의 경제력이 무사 계급보다 커진 격동기였기 때문에 이 하이쿠의 배경에는 '지옥처럼 혼란스러운 현실 사회'가 가로놓여 있다고 평론가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설명한다.(...) 더 크고 더 요란한 수레들이 날마다 인간의 삶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다"(112). 이 해설을 읽고 나니 시가 살아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옆방의 불도
꺼졌다
밤이 차다
시키
"하이쿠는 지적 경험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실존적 경험이다"(49).
이 책에는 하이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대가들의 작품이 총망라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중에서도 가장 나의 마음을 끈 작품과 시인은 바로 "시키"입니다. 시키는 스물셋의 나이에 폐병에 걸려 숨을 거둘 때까지 병상 생활을 하며 나중에는 결핵균이 척추에 침투해 걷는 일조차 어려웠다고 합니다(71). 아픈 몸을 겨우 지탱하며 35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던 그의 작품에 자꾸만 마음이 갑니다. 여기에 덧붙여진 류시화 시인의 해설이 나를 울게 했습니다. "우리는 따뜻하게 하는 것은 타인의 불이다. 그 불이 소등되는 순간 더 추워지고, 마음 한편을 밝히던 불도 꺼진다. 외로움을 지탱해 준 것은 나의 불빛이 아니라 타인의 불빛이었던 것이다"(121). 시인의 고독이 내게도 전해지면서, 내 안에 감추인 외로움이 건드려진 까닭이겠지요. 류시화 시인은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시를 읽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시를 찾아 그 시를 이해하는 한두 사람 속에 자신이 포함되어야 한다"(192)고 말합니다. 내 삶의 한 자락이 시인의 것에 가닿는 느낌이 들었다면, 나도 그 시를 이해하는 한두 사람 속에 속하게 된 것일까요? ^^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와 감미를 모아야 한다. (...) 시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 경험이기 때문이다. 시는 알지 못하는 곳에 난 길, 뜻밖의 만남이다"(릴케, 153).
이 책에서 소개하는 하이쿠를 해설 없이 시만 읽어보면,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로 평범하게 느껴지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일본어로 읽는 것이 아니니 운율이 직접적으로 느껴지지도 않고, 초등학생의 일기장을 보는 것처럼 별뜻 없는, 그저 하루의 경험, 눈앞에 보이는 풍경, 그대그때 스치는 상념을 적어놓은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평범한 언어로 어떤 의미보다 소리, 움직임, 시간, 풍경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단순한 서술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그 단순함이 오히려 삶의 본질을 더 깊이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겠다"고 노래한 윤동주 시인처럼, "시를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고만 싶어집니다.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는 한 편의 시집이면서, 하이쿠 백과사전 같은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처음엔 하이쿠를 읽는 재미보다 류시화 시인의 해설을 읽는 재미가 더 컸는데, 어느 새 한 줄 하이쿠를 몇 번이고 되내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 때문에 제2외국어였던 일본어를 다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토머스 머튼의 말처럼, 하이쿠 시인들이야말로 결사적 각오로 죽음을 들여다보고, 인간 무(無)의 심연을 헤아리고, 찰나로 흘러가는 인생을 한 줄 시로 영원에 붙들어매 두었단 생각이 듭니다. 놀랍게도 짧은 17음 안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