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시화선집
도종환 지음, 송필용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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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도종환 시인이 시를 쓰고, 송필용 화가가 그림을 그린 시화선집입니다. 제게 이 책은 도종환 시인과의 화해를 의미합니다. <접시꽃 당신>이라는 도종환 시인의 시와 영화가 온 국민을 울렸을 때, 그때 같이 울던 한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접시꽃을 알았고, 접시꽃을 사랑하게 되었고,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아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접시꽃 당신 中에서) 애달퍼 했던 당신인데, 결국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옥수수 밭 옆에 당신을 묻고 中에서)라고 노래하며 보낼 때에는 주저 앉아 통곡하듯이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내 평생 시 한 편 때문에 그렇게 울어본 적이 그때 말고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슬픔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들려온 도종환 시인의 재혼 소식. 제 어린 마음은 배신으로 멍들었습니다. 그의 시에 공감했던 것만큼 배신의 상처도 깊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를 짓던 그 마음이야 어찌 진실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글과 마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 하여 시집을 내다 버리고 이후로 그의 시는 듣지도 읽지도 않았습니다. 참 많이도 미워했네요. "그렇게 울리지나 말지" 원망도 하면서 말입니다.
 


 
 
어느 날, 마음을 울리는 시를 만났습니다. '담쟁이'라는 시였는데, 마치 영차 영차 응원해주는 듯, 예쁜 구슬 하나가 또르르 굴러 들어오듯 힘찬 시어 하나 하나가 마음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수수께끼 같은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이처럼 분명하면서도 쉬운 언어로 쓰여진 시에 마음이 끌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가 도종환 시인의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자동적으로 순간 멈춤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다시 그의 시에 끌리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경고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도종환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를 통해 내 인생을 진지하게 통과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시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시는 이미 내 오랜 운명입니다. 그러나 내 시가 너무 무겁지 않기를 바랍니다. 너무 고통스러운 언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암호이기는 더더욱 반대합니다.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할 수 있다면 고요하기를 바랍니다. 매화처럼 희고 고요하고 아름답기를 바랍니다"(5).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읽는 내내 마음이 마음이 좀 쓸쓸했습니다.
 
이 세상이 쓸쓸하여 들판에 꽃이 핍니다
하늘도 허전하여 허공에 새들을 날립니다
이 세상이 쓸쓸하여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유리창에 썼다간 지우고
허전하고 허전하여 뜰에 나와 노래를 부릅니다
산다는 게 생각할수록 슬픈 일이어서
파도는 그치지 않고 제 몸을 몰아다가 바위에 던지고
천 권의 책을 읽어도 쓸쓸한 일에서 벗어날 수 없어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글 한 줄을 씁니다
사람들도 쓸쓸하고 쓸쓸하여 사랑을 하고
이 세상 가득 그대를 향해 눈이 내립니다
 
(쓸쓸한 세상, 64)
 
 
시인의 시에서 세월이 묻어납니다. 그런데 그의 바람대로 그의 시는 희고 고요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무엇보다 어렵지 않아 좋습니다. 이제 그만 시인을 향한 혼자만의 미움을 모두 털어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마음과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을 테니까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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