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 본능 - 일상 너머를 투시하는 사회학적 통찰의 힘
랜들 콜린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사회학적 아이러니"
 
 
율리히 벡과 엘리자베트 벡 게른샤임의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이후, 사회학 관련 책을 이처럼 재밌게 읽기는 처음입니다. 띠지에 "처음으로 사회학적 사고를 흥미진진하게 만든 책"이라는 한 줄 서평이 있는데,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신학을 전공하고 사회학을 공부해보고 싶어 대학원에 다시 진학했을 때, 당황스러운 일이 많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사회학과 심리학이 사이가 나쁜 줄 알았는데, 사회학이 신학도 그렇게 경멸하는 줄 몰랐습니다. 특히 여성학을 전공한 친구들은 신학(교회)에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가부장제를 부치기고 견고히 하는 원흉이라나 뭐라나. 역사가 짧은 학문이라는 것도 오히려 그 친구들에게는 자랑거리였습니다. 학문을 발전단계로 본다면 가장 상위의 학문이라나 뭐라나. 교수님들과 학도들 포함 사회학자들의 학문적 자부심이 참 대단하구나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사회학적 사고"를 연습하는 일이었습니다. 현대 사회학으로 올수록 권위자의 이론들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다양한 논문들은 연구 과정만 복잡할 뿐 도출된 결론은 뻔한 말들이 많습니다. 자연법칙처럼 절대적인 사회법칙을 찾아내는 일이 가능할까 하는 회의도 들었습니다. 통제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았고, 잘 설계된 논문도 조작적 정의의 범주를 벗어나면 무의미해지는 결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주 여성(국제결혼)을 중심으로 다문화 가족 내 권력관계가 가족의 종교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준비하다 사회학적으로 사고하는 일이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손을 놓은 상태로 몇 년을 보내고 있는 중에 이 책을 만났습니다.
 
 
"사회학의 가장 핵심적인 발견 중 하나는, 합리성이 제한되어 있으며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사회 자체도 궁극적으로 이성적인 추론이나 합리적인 합의가 아니라 비합리적인 기초 위에 서 있다"(18).
 
<사회학 본능>을 읽고 사회학이 다루는 큰 주제가 무엇이며 그것에서 어떻게 다양한 주제들이 파생되어 나오는가 하는 사회학의 큰그림을 처음으로 확실하게, 그리고 통합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합리성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 믿음을 뒤엎는 사회의 비합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이 탁월했습니다. 한 번쯤 관료제에 분통을 터뜨려본 적이 있다면, "최대 효율을 위해 설계된 관료제가 오히려 비효율로 악명이 높"(19)을 수밖에 없는지 이 강의를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합리적이지 못한 과정들에 대한 연구가 바로 사회학의 장기"(22)라는 한 줄 설명은 사회학을 연구하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던져주기도 했습니다. <사회학 본능>은 사회학적 사고의 큰 틀을 중심으로 사회학적 연구가 어떻게 다양한 주제로 파생되어 가는지 보여줍니다. 사회학의 기본적인 질문 중 하나는 '사회는 과연 존재하는가?'입니다. 이에 대한 논의들을 보면서 '신 존재 증명'이라는 철학과 참 흡사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랜들 콜린스는 사회가 곧 신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신에게 부여한 성격을 모두 갖고 있는 존재가 현실 속에 하나 있다. 자연이나 형이상학이 아니라 '사회 자체'가 바로 그런 존재다"(66).
 
<사회학 본능>은 에밀 뒤르켐의 사회학 이론을 큰 줄기로 사회의 비합적 기초, 신의 사회학(종교), 권력의 역설, 범죄의 정상성, 사랑(가족)과 소유권, 인공지능에 사회학이 기여할 수 있는 것 등을 풀어갑니다. 저자가 근거로 삼고 있는 뒤르켐의 핵심적 주장은 이것입니다. "사회와 합리성 그 자체가 비합리적 기초 위에 서 있음을 증명해주는 그의 주장과, 사회적 의례가 바로 집단의 유대를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이라는 그의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23).
 
<사회학 본능>은 종교가 사회에 의해 창조된다는 것(87), 개인주의는 현저히 현대적인 특징을 지닌 종교의 새로운 형태라는 것(94), 전문가의 능력이 뛰어날수록 전문가의 권력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135), 범죄를 바라보는 급진적인 시각에서는 "범죄를 야기하는 것은 개인이나 사회환경이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장치라는 것"(173), 나아가 "사회가 살아남으려면 범죄가 필요하다"(179) 하다는 것, 개인화된 현대인들에게 "사랑은 일종의 개인적인 미니 종교이며 그 안에서 커플은 각자 상대방에게 숭배의 대상이 된다"(227)는 것, 진정한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서는 왜 반드시 사회학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244) 등등 흥미로운 사회학적 통찰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사회학적 시각이 아니면 알아채기 불가능한 통찰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반적인 상식과 믿음을 뒤트는 <사회학 본능>을 읽으며 사회학적 시각을 가져야 할 필요성과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는 인간 사고의 능력에 경외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반대로 우리(이성)가 가진 한계가 여실히 느껴지도 했습니다. <사회학 본능>을 통해 깨닫게 된 사회학적 사고가 없을 때, 우리가 얼마나 무서운 편견과 어리석은 판단과 합리적 사고의 오류 속에 빠질 수 있는지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회학은 익숙한 나 자신으로부터 한발짝 떨어져 나를 관찰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는 일은 심리학을 공부하는 일만큼이나 나와 직접으로 맞닿아 있으며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것은 1982년이고, 개정판이 나온 것은 1992년이며, 이 책은 1992년에 나온 개정판을 번역한 것이라고 하는데, 시간의 간극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회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주제가 가득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단 '뒤르켐'의 이론을 다시 공부해보고 싶다는 학문적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어쩌면 손을 놓은 채 사실상 포기하고 있었던 논문을 다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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