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여행법 - 경전선을 타고 느리게, 더 느리게
김종길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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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걸음은 옛 시간의 흐름에 맞추느라 자연히 느려졌다"(223).
 
 
책상 속에 사표가 들어 있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 일한지도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렇게 훌쩍 흘러가버린 청춘입니다. 돌아보니 바쁘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같은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일상은 미친 속도로 돌아가는데 인생은 오래 전에 일시정지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이대로 살다가는 더 깊은 후회가 남을 것 같아 인생의 하프 타임을 가질 결심을 했습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친구들에게 산티에고로 순례를 가보자고 제안했는데 아무래도 선뜻 나서기가 어려운지 관심을 보이는 친구가 많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일 듯합니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남도여행법>을 보았는데, 먼 산티에고까지 갈 필요 없이 남도로 순례길을 떠나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관광지를 전투적으로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느린 여행이라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매혹적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느린 경전선"
 
 
<남도여행법>은 경전선을 타고 남도를 순례하듯이 떠나는 여행법입니다. "경상남도 밀양 삼랑진역에서 출발하여 남도의 구석구석을 800리쯤 돌아 광주송정역에서 멈춘다"는 경전선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기차라고 합니다. "경정선의 느린 풍경 속에 쉼표처럼 찍혀 있는 역은 모두 60개인데, 60개 중 폐역이 16곳, 기차가 서는 역이 34곳, 기차가 서지 않는 역이 10곳"이라고 합니다. 삼량진에서 광주송정까지 총 300.6km를 1년간 여행한 기록이 바로 이 책, <남도여행법>입니다.
 
저자는 "경전선 여행은 좀 더 느린 방식의 여행, 떠나기만 해도 치유가 되는 여행, 일체의 근심걱정을 떨칠 수 있는 여행"이며, "이 책은 단순한 여행안내서가 아니라 사라져 가는 것들의 기록, 잊혀가는 것들의 기록이다. 로드다큐이자 인문지리서이다. 또한 문화기행서이자 철도여행서이다"라고 소개합니다. 저자의 말처럼 남도의 삶과 역사와 문화를 찾아떠난 로드다큐 같은 분위기가 강합니다. 또한 <남도여행법>은 매끈한 자동차를 몰고 편리하게 옮겨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기차를 타고 내려서 걷고 때로는 버스로 이동하며 다시 또 기차를 타고 그렇게 천천히 이동하며 그곳의 풍경과 사람과 과거와 이야기와 하나가 되는 순례의 길이자, 그렇게 떠난 길 끝에서 또다른 나와 만나게 되는 구도자의 길과 같은 분위기가 짙게 풍깁니다!
 





부모님 고향이 남도인데도 어쩌자고 그렇게 동해쪽으로만 휴가를 갔는지, 이 땅에 태어나 40년 넘게 발 딛고 살았으면서도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곳 중 어느 한 곳도 제대로 가본 곳이 없습니다. 그동안 뭘하면서 살았나 싶습니다.
 
남도 여행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고 펼쳐 들었던 책인데, 남도를 어떻게 여행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아름다운 사진에 마음이 끌려 가보지 않고 벌써 남도의 풍경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봉화마을에 가서 봉화산을 일러 '낮지만 높은 산'이라고 했던 노 대통령의 말의 의미도 알아보고, 마산역에 내려 예술인촌으로 조성된 골목길도 걸어보고, 함안역에 내려 왁자지껄한 가야시장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함안 말이산 고분군도 찾아보고, 반성역에 내려 줄을 서서 사먹는다는 순두부집에 가서 줄도 서보고, 횡천역에 내려 스탬프도 찍어오고, 순천역에 내려 법정 스님이 계시다는 불일암에도 올라보고, 벌교역에 내려 그 유명한 꼬막도 맛을 보고, 코스모스 축제로 유명하다는 북천역에도 가보고,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이라는 남평역에도 가보고 싶습니다. 아니, 새롭게 길을 낸 이 책을 따라 나도 삼랑진역에서 광주송정역까지 완주를 해보고 싶습니다. 친구와 함께 간다면 이 책에서 알게 된 코스모스의 슬픈 사랑이야기도 들려주고, "논두렁에 덩그러니 버려진 듯 무심하게 서 있"(232)다는 작은 불상(석조인왕상)도 꼭 찾아 보여주고 싶습니다.
 
언젠가 이유도 없이 끓어오르는 마음의 불안과 격동을 이기지 못하여 춘천행 기차에 홀로 몸을 실었던 20대의 그 어느 날처럼, 나는 또다시 낯선 길로 뛰어들고 싶어집니다. 조금 특별한 여행을 원한다면, 낯선 곳에서 나와 마주할 고독한 시간이 필요하다면, 과거로의 여행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남도여행법>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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