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잔인한 달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신예용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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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눈으로 행복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519).
 
 
거센 질투의 불길에 삼켜져 본 적이 있습니까? 남편이 아내의 성공을 질투하기도 하고, 친구가 가장 친한 친구의 행복을 질투하기도 하고, 짝사랑 상대의 알콩달콩 연애를 지켜보며 질투심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도 합니다. 질투가 치명적인 건 애정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질투할 수밖에 없는 이 양가적인 감정은 한 번 빠져들면 모두를 지옥불에 가둬버리고 맙니다. 죽음 같이 강한 사랑일수록 질투의 불길은 지옥처럼 잔혹하게 타오르기 마련입니다.
 
<가장 잔인한 달>은 질투의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해낸 심리 추리소설입니다. '스리 파인스'는 작지만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서로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친밀하게 지내는 마을 사람들은 강한 결속력만큼 어쩐지 폐쇄적인 느낌을 풍기는 곳이기도 합니다. 4월 부활절을 맞이한 마을 사람들은 죽은 자의 유령과 접촉하는 '교령회'을 갖기로 합니다. 교령회는 악한 유령들이 사는 곳을 정화하는 의식인데,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호기심에 사로잡힌 주민들이 몇몇이 성금요일, 비스트로에 모여 들었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달리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자 교령회를 한 번 더 하기로 합니다. 두 번째 교령회의 장소는 버려져 있는 옛 해들리 저택입니다.
 
<가장 잔인한 달>은 '아르망 가마슈' 경감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물입니다. 첫 번째 작품은 가을의 추수감사절을 배경으로, 두 번째 작품은 겨울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이 책 <가장 잔인한 달>은 세 번째 작품으로 봄의 부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스리 파인스 주민들이 두 번째 교령회를 열기로 한 '옛 해들리 저택'은 전작의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였던 듯합니다. 사악하면서도 슬픔으로 가득한 해들리 저택의 사연이 궁금하다면 전작을 읽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옛 해들리 저택에서 교령회를 하는 도중 결국 한 사람이 공포에 질려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아르망 가마슈 경감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현장 조사를 벌이던 중, 사망자의 부검 결과 다이어트 약으로도 복용되는 '에페드라'라는 물질이 검출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사망자는 인생을 즐기며 언제나 활기와 즐거움으로 넘쳐 흘렀던 '마들렌'이라는 40대의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마들렌은 언제나 "마법을 품고 다디는 사람"(34)이었습니다. 그녀와 함께하면 언제나 주변이 빛처럼 환희 밝아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마들렌은 왜 교령회에서 사망하게 된 것일까요? 
 
<가장 잔인한 달>은 스리 파인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아르망 가마슈 경감을 둘러싼 음모가 얽혀진 가운데 독자들에게 두 개의 사건을 동시에 추리하는 즐거움을 던져줍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살인자를 추적해가는 아르망 가마슈 경감의 독특한 수사 방법입니다. 아르망 가마슈 경감은 "살인자를 찾기 위해 감정"을 모으는 사람입니다. "그는 감정을 모았다. 그리고 정서를 수집했다. 살인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살인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한 행동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 지점에서 모든 일이 출발하기 때문이다. 한때는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웠던 감정이 일그러진다. 그리고 기괴한 모습으로 변한다. 감정의 주체를 집어삼킬 때까지 비틀리고 부패한다. (...) 감정이 이 단계에까지 오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감정을 오랫동안 조심스럽게 키우고 보호하고 정당화하고 보살피다가 마침내 깊숙이 파묻는다. (...) 그러다가 어느 날 밖으로 빠져나와 끔찍한 실체를 드러낸다. (...) 아르망 가마슈는 살인자들은 보통 이와 같이 감정이 타락하는 단계를 거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142). 사건의 전말을 알고 나니 이 문장 안에 엄청난 단서가 들어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가마슈 경감은 사건을 수사하는 부하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네. 말만 해서는 아무것도 배을 수 없어. 살인 사건을 다룰 때는 배우는 과정이 중요하네. 사실만 배우는게 아닐세. 살인 수사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보거나 만질 수 없는 것이지.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점이야. 왜냐하면." (...) "우리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을 찾고 있기 때문이지. 건강하고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 무척 아픈 사람을 찾고 있기 때문이야. 단순히 사실만을 수집하지 말고 느낌을 수집해서 범인을 찾아야 해"(222).
 
자, 이 문장 안에서 단서가 들어 있습니다. 이 말을 힌트로 마들렌을 "누가 왜 그런 방법으로 죽여야 했을지" 직접 추리해보시기 바랍니다. 스리 파인스의 그해 4월이 왜 가장 잔인한 달일 수밖에 없었는지 그 사악함의 실체가 드러날 때 독자는 분노보다 스스로 비참해지는 기분에 사로잡힐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행복을 누구보다 열심히 축하하며 박수하지만 그 일로 소리 없이 무너져내리는 자부심과 상대적인 비참함의 늪에 빠져본 적이 있다면, 작가가 등장인물들을 통해 치밀하게 그려낸 복합적인 감정이 내 안에서도 고스란히 소용돌이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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