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노먼 F. 매클린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하지만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해도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199).

 

 

지금 부모님과 동생과 한 집에서 복닥복닥 살고 있지만 언젠가 이별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어떻게 이별하게 될지는 모르지만요. 사랑할 시간이 아주 적다는 것이 생각나면 조바심이 일다가도, 인생이란 흘러가는 강물 같은 것 세월따라 시간따라 나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자, 마음을 다독여도 봅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우리는 이렇게 이별했구나, 깨달으며 그 완결된 스토리 한 부분이 내 인생에 새겨질 때, 나는 무엇을 추억하고 무엇을 아쉬워하게 될까요.

 

<흐르는 강물처럼>은 리즈 시절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던 영화의 원작인데, 올 봄, 이 영화가 재개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원작은 영문학 교수였던 노먼 매클린이 은퇴 후, "70세가 되어서야 소설을 쓰기 시작"(뒷 표지 中에서)한 후 젊은 시절 죽은 동생을 추억하며 써내려간 자전적 소설입니다. 서부의 목가적인 풍경이 스토리에 아름다운 숨결을 불어넣는 이 소설은 퓰리처상 후보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연암서가에서 발간한 <흐르는 강물처럼>에는 표제작 외에 <벌목꾼 짐과 그의 여자들>, 그리고 <산림청 임시 관리원의 수기> 이렇게 총 3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노먼 매클린의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는데, 역자는 "<흐르는 강물처럼>에 든 세 편의 소설과 관련 서문 및 작가의 말을 단 한 줄도 빼놓지 않고 모두 번역한 명실상부한 완역본은 국내에서 이 책이 처음"(7)이라고 밝힙니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아름다운 그림이 눈앞에 절로 그려집니다. 주인공이 가족을 추억하는 장면에 플라이 낚시에 관한 묘사가 많이 등장하는데, 영화의 예고편을 찾아보고 나서야 저자가 묘사하는 낚시의 아름다움과 짜릿함이 무엇인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예를 들면, "낚시란 말이야, 10시 방향과 오후 2시 방향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네 박자 리듬이야"(41)와 같은 표현들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족의 강 혹은 우리의 일부라고 생각했다"(58).

 

형의 기억 속에서 또렷하게 새겨진 아버지와 동생 폴은 아름다운 낚시꾼의 모습입니다. 형은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했던 플라이 낚시를 추억하며 자신이 스쳐지나왔던 시간의 점(点)들을 되새겨봅니다. "시인들은 '시간의 점(点)들'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영원을 순간으로 압축시켜 놓은 그 시간의 점을 실제로 체험하는 사람은 낚시꾼들이다. 온 세상이 물고기였던 순간이 있었으나 갑자기 그 물고기가 사라져버렸으니 그거야말로 시간의 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그 도망친 놈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107).

 

"나는 거기 앉아서 잊어버리고 또 잊어버렸으며, 마침내 흘러가는 강물과 그것을 바라보는 나만이 남았다. (....) 마침내 강물을 바라보던 자는 사라져버리고 거기에서 오로지 강물만 남았다"(134).

 

흘러가는 강물처럼 쉴 새 없이 흘러온 인생입니다. 플라이 낚시를 잘 했고 터프했던 동생은 이미 오래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없습니다. 이미 노인이 되었지만, 형은 그때 자신이 동생을 어떻게 도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다시 생각해봅니다. 세 살이 어린 동생이었지만 독립심이 강했던 동생을 형은 다소 어려워합니다.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동생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모릅니다. 막내아들의 문제를 눈치 챈 아버지는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누군가를 도와주기에 너는 너무 젊고 나는 너무 늙었어"(165).

 

"우리가 함께 살았고 사랑했고, 또 마땅히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이 실은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기 때문이지"(200).

 

우리는 가족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가장 가까운 친구보다, 함께 일하는 동료보다 가족에 대해 더 잘 알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막내아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의 어머니는 많은 것을 묻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가장 사랑했으나 제일 아는 것이 없었던 막내아들에 대하여 내게 묻지 않았다. 아머니는 그 아들을 사랑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198).

 

"하지만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해도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199).

 

이 책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이해를 넘어선 사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과 결혼도 경제원리가 지배하는 요즘 세대는 가족조차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지 따지고 묻습니다. 고통만 주는 가족이라면 참고 살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합니다. 차라리 헤어지는 것이 낳고, 안 보고 사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논리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흐르는 강물처럼>은 내 아들, 내 동생이 천하의 "개자식"이라도, 그렇게 사는 그를 다 이해할 수 없어도, 그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기꺼이 도우려하는 가족들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줍니다.

 

"나는 언제나 강물 소리에 사로잡힌다"(201).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냄새가 난다"는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가 강렬한 첫 문장으로 기억되는 책이라면, 노먼 매클린의 <흐르는 강물처럼>은 "나는 언제나 강물 소리에 사로잡힌다"는 마지막 문장으로 기억될 듯합니다. 형은 동생 폴과 떠났던 낚시 여행에서 들었던 강물 소리를 기억합니다. "내 인생의 패턴이 그 강의 패턴과 합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 동생을 기다리는 동안 이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에는 인생의 스토리가 종종 책보다는 강과 더 비슷하다는 것을 뚜렷하게 알지 못했다. 하지만 스토리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에 강물 소리에서 이 스토리가 시작되었는지 모른다"(137).

 

형은 폴과 아버지와 마지막 낚시 여행을 떠납니다. 그때는 그것이 가족의 마지막 낚시 여행이 될지 몰랐습니다. 우리 인생은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도 흘러가고 있으며, 언젠가 끝날 것을 알지만 언제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느닷없이 닥치는 일일 수도 있고, 이별을 준비해야만 하는 시련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랑할 시간이 아주 짧다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해도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동생을 보낸 형의 한마디가 오늘을 사는 우리가 알아야 할 인생의 해답은 아닐까요.

 

<흐르는 강물처럼>은 강렬한 울림이 있는 소설입니다. 깊은 슬픔이 차오르기도 하지만, 비틀즈의 "오블라디 오블라다(Ob-la-di ob-la-da)"라는 노랫말처럼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고,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고 웃으며 노래할 수 있는 감정으로 삶을 다시 보게 해줍니다. 우리가 문학을 읽어야 할 이유를 알게 해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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