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아이브 - 위대한 디자인 기업 애플을 만든 또 한 명의 천재
리앤더 카니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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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점은 다르게 가는 것은 쉽지만 더 낫게 만드는 건 아주 어렵다는 사실입니다"(176).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붙잡고 싶습니까?" 스티브 잡스가 펩시에서 일하고 있던 스컬리를 애플로 데려오기 위해 했다는 유명한 말입니다(82). 우리가 애플 사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오만하기까지 한 그들의 자부심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목적보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정으로 앞서 나가는 기업 정신, 그러한 자부심으로 세상에 내놓는 그들의 제품은 물건 이상의 가치와 감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워낙 애플의 모든 스포트 라이트를 독점했던 덕분에,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애플의 혁신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애플은 곧 스티브 잡스로 통했고, 스티브 잡스 외에는 그만큼 우리에게 알려진 인물도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러나 <조너선 아이브>는 애플의 혁신이 스티브 잡스 한 사람의 힘으로 가능했던 신화가 아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조너선 아이브"는 "스티브 잡스의 영혼의 파트너"라는 애플의 디자인 총괄 수석 부서장입니다. "디자인이 애플을 위대하게 하는 과업의 중심"임을 거듭 강조했던 스티브 잡스를 생각하면, 그에게 조너선 아이브라는 디자이너의 존재가 어떤 의미였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너선 아이브>는 스티브 잡스의 그림자와 같았던 한 천재 디자이너를 세상에 들어내놓았습니다. 이 책에는 "난독증이 있는 영국의 한 아트 스쿨 졸업생이 어떻게 해서 세계를 주도하는 기술 혁신가가 될 수 있었는지"(10), 그 과정을 취재한 책입니다.

 

<조너선 아이브>를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스티브 잡스와 대비되는 그의 성격에 관한 증언입니다. 독선적이고 독재적인 성격 탓에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덕분에 스티브 잡스는 더 유명해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스티브 잡스의 영혼의 파트너라는 조너선 아이브는 그와 너무도 대조적인 성격의 인물입니다. 모두가 증언하기를 조너선 아이브는 항상 조용하고 차분하게 일을 완수하며, 목청을 높이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굳은 표정을 내비친 적도 없다고 합니다. 대단히 조용하고 침착한 성품에 유머 감각까지 뛰어나며, 동료들로부터 열정적이고 근면한 팀 플레이어로 인정받는 인물입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천재적인 디자이너들에게는 보기 드문 성품이라는 증언이 재밌습니다. 

 

이런 조너선 아이브이지만 "자신을 따르도록 주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뛰어"(119), 일에 대한 열정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가 어떻게 그렇게 어린 나이(29세)에 세계적인 기업의 우수한 디자인 팀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많은 사람이 디자이너로서 조너선 스티브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대목입니다. 이 부분에서 전율에 가까운 감동을 느꼈는데, "다른 디자이너들과 비교할 때 가장 놀라운 부분은 깔끔한 마무리"라는 것입니다. "참신한 발상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는 디자이너는 예나 지금이나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너선처럼 완벽한 수준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디자이너는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중략) 바로 그 부분이 디자이너로서 조너선의 큰 장점입니다"(47). 그와 함께 공동 작업을 했던 대학 동기 톤지의 말입니다. 

 

명품과 기성품의 차이는 마무리에 있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조너선 아비브는 명장 특유의 디테일 감각이 빼어나며, 세세한 부분까지 허술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세심함이 평범한 물건을 훌륭한 작품으로 바꾸는 겁니다"(154). 애플에서 함께 일했던 매넉의 말입니다. 저자는 조너선 아이브의 이러한 기질의 근원을 영국식 교육에서 찾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은세공 전문가인 그의 아버지입니다. 어릴 때부터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예술적 열정을 다하는 아버지를 모습을 보고 자란 조너선 아이브는 완벽한 마무리에 대한 집념이 강했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것에 들어간 정성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죠. 저는 어떤 제품에서 소홀함이 느껴지는 것을 정말 싫어해요"(20).

 

조너선 아이브가 말하는 애플에 대한 첫인상은 이것입니다. "무례하기 짝이 없고 거의 반골 수준인 이 기업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점점 더 끌렸습니다. 무사안일주의와 의도적 파산이 횡행하는 산업 부분에서 거리낌 없이 대안임을 자처하는 기업 정신이 몹시 좋았어요. 뭔가 중요한 가치를 대변하는 기업이 아닌가, 돈 버는 것 말고도 존재해야 할 명분이 뚜렷한 기업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50). '컨설팅'이 자신의 생리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조너선 아이브는 "시대를 앞서 가면서 뭔가를 창조하고 싶다면 애플에 정식 직원으로 입사하라"(91)는 브러너의 권고로 애플의 일원이 됩니다.

 

<조너선 아이브>는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에서 조너선 아이브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다시 돌아온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와의 만남, 그리고 두 열정가가 만나 이룩한 혁신의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줍니다. 그 과정에서 엔지니어링이 다자인을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엔지니어링을 지휘하는 애플의 프로세스가 가진 강점과 의미를 풀어냅니다. 그들이 이룩한 혁신의 맨 앞자리에 왜 디자인 팀이 자리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애플이 디자인 주도적인 기업임을 고려할 때, 그 팀의 수장인 조너선 아이브의 존재는 스티브 잡스의 그것과 필적할 만하다 할 것입니다. 이 책에 보면 조너선 아이브가 "잡스가 습관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데 대한 불만을 토로"(346)했다고도 전합니다. 스티브 잡스 뿐만 아니라 조너선 아이브도 애플이 혁신을 주도하는 엔진으로 평가받아 마땅할 듯합니다.

 

스티브 잡스에게서는 초점과 단순함의 힘을 배웠다면, 조너선 아이브에게서는 세심함의 힘을 배웠습니다. 그 세심함이 디자이너로서 단순히 외형과 이미지만이 아니라 제품의 스토리와 기능까지 완벽하게 구현하여 깔끔하게 마무리해내는 능력으로 표현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혁신을 위한 혁신이 아니라, 그 세심함이 결과적으로 혁신을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요. 조너선 아이브의 스토리는 스티브 잡스처럼 드라마틱 하지는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나타낸 그는 애플이 아니었더라도 꽤 유명한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와의 만남은 조너선 아이브를 그저 천재적인 디자이너가 아니라, 세상을 바꾼 혁신가로 역사에 남게 해주었습니다. 스티브 잡스 없는 애플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조너선 아이브 없는 스티브 잡스도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를 알아봐준 스티븐 잡스가 있었고, 스티브 잡스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조너선 아이브가 있었기에 애플의 신화가 가능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애플에 특별한 관심이 없어도, 엄청난 열정으로 세상을 선도해가는 한 인물을 만나는 기쁨으로 읽어봐도 좋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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