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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가 찾던 여행지 100 - 이번에는 여기로 국내여행 가자!
유정열 지음 / 상상출판 / 2014년 3월
평점 :

"일상은 기계처럼 돌아갔고 마음은 무너져갔다"(프롤로그 中에서)
쉬는 날마다 시체 놀이를 하며, 휴가를 얻으면 무조건 미친 듯이 자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푹 자게 놓아두시던 엄마도 나중엔 자꾸만 흔들어 깨우며 "괜찮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때 내 몸과 마음은 만성피로에 찌들어 있었고, 그렇게 찌든 피로는 잠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말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결심으로, 이상하게 자고 나면 더 피로해지는 몸을 이끌고 세상 밖으로 나갔습니다. 거리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 처음엔 고생스럽게 느껴지도 했습니다. 낯선 곳에 던져진 긴장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걸음. 그렇게 거리를 헤매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서서히 변화가 생겼습니다. 다닐 때는 몰랐는데 돌아와서 생각하면 생경한 거리의 풍경이 마음에 이상한 활력을 주기도 했고, 다음 목적지를 찾을 때면 기대감으로 마음이 부풀기도 했습니다.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몸은 녹초가 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유쾌한 피로감이었고, 푹 자고 일어나면 몸은 전보다 더 상쾌해지기도 했습니다.
"스스로가 어쩌지 못해 선운사까지 기어 왔지만 이제 내 맘대로 보고, 걷고, 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겠다고 마음먹었다"(프롤로그 中에서)
작지만 그렇게 나만의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때로는 즐거운 놀이처럼 요란하고, 때로는 혼자만의 비밀처럼 고요한 여행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중입니다. 해외 여행이나 장거리 여행은 준비하는 일도 많고, 어렵게 시간을 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훌쩍 다녀올만한 곳을 찾아보는 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습니다.
<여기 내가 찾던 여행지 100>은 웬만한 국내여행지는 모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이드북을 보면 목차부터 살피는 버릇이 있는데, 이 책은 전국적으로 각 지역을 대표할 만한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가볼만한 곳을 100곳이나 소개하고 있지만, "꼭" 가볼만한 여행지를 엄선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에도 난 나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지금 삶이 여행이고 여행이 삶인 삶을 살고 있다"(프롤로그 中에서)
과일도, 나물도 제철이 있고, 계절의 별미가 있듯이, 여행지도 그곳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고, 또 그 계절이 아니면 체험할 수 없는 매력이 있기도 합니다. 계절별로 여행 계획을 미리 세워두는 것도 여행을 즐기는 한 방법입니다. <여기 내가 찾던 여행지 100>은 지역별로 여행지를 소개하기에 앞서, "계절별 추천여행지 베스트 5"를 선정해놓았습니다. 특별히 시간을 내어 여행을 떠나야 하는 분들이나, 본격적으로 여행을 처음 시작하며 어디부터 가야 할지 선뜻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분이라면, 이 책에서 추천하는 계절별 베스트 여행지를 한 계절에 두서너 곳만 다녀도 즐겁고 후회 없는 여행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여행이 주는 가장 주는 가장 큰 힘은 위로다"(프롤로그 中에서)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여행지 중에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면서, 이곳에서 처음 알게 된 곳이며,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영화 제목으로 더 유명해진 '밀양'입니다. 밀양은 "햇빛 가득한 고을"이라는 뜻인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여행지는 밀양의 "위양지"라는 곳입니다. 저자는 그곳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위양지의 아름다움은 수줍은 여인의 머릿결을 늘어뜨린 것 같은 왕버드나무와 하얗게 피어난 이팝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에 있다"(194).
여행가이면서 사진가이기도 한 저자는 여행지의 풍경을 직접 사진으로 찍어 소개합니다. 그런데 작가의 시선이 참 고요합니다. 작가가 보여주는 세상 풍경이 참으로 고요하게 다가옵니다. 나를 마주하고 싶을 때, 자연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을 때, 고요한 시간 속에 침잠하고 싶어질 때, 조용한 쉼이 필요할 때, 위양지를 한 번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책과 마주한 다른 풍경을 다시 찾아나설 듯합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그리하여 나를 가장 빛내줄 무엇인가를 찾는다면
그것은 여행이 될 것이다"
(프롤로그 中에서)
<여기 내가 찾던 여행지 100>는 참 간결한 책입니다. 여행지에 관한 정보가 딱 한 페이지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있어야 할 정보는 모두 수록되어 있습니다. 1박 2일 추천코스를 참고로 나만의 일정을 계획할 수도 있고, 꼭 챙겨야 할 정보에 친절한 여행정보를 더했고, 가는 법에 맛집까지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단지,여행지에 따라 숙소 정보의 유무만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여행지에 관해 따로 머리 싸매고 공부할 필요도 없이, 이 책 한 권이면 문득 떠나고 싶어질 때 가볍게 훌쩍 다녀올 수 있을 듯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이 땅을 떠나 살아본 적도 없는데 얼마나 체바퀴 돌듯 살았는지, 가본 곳보다 가보지 못한 곳이 훨씬 많습니다. 이 책에 소개한 여행지를 모두 가본다면 100번의 여행이 될테고, 그렇게 하고 나면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어릴 적 세계지도를 앞에 두고 세계일주를 꿈꾸었던 것처럼, 이 책을 앞에 두고 전국일주를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