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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콘서트 - 지루할 틈 없이 즐기는 인문학
이윤재.이종준 지음 / 페르소나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갖은 앙념과 나물을 함께 넣어 비비듯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서고금의 대문호, 사상가, 철학가, 종교인, 정치인, 배우 등이 쏟아내는 리파티(repartee 재치즉답) 등, 어록 사이사이 인문학적 지식-그들의 철학, 심리, 가치관 등, 당시 상황과 역사적 배경-을 집어넣어 버무려 꾸몄다"(19-20).
<말 콘서트>는 한마디로 세계적인 명언을 수집한 책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튀어나온 배경을 알지 못하면 말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이 느껴지는 명언들도 많습니다. "경구"와 달리, 이 책에 담긴 명언은 대부분 "리파티", 즉 재치 있는 즉답(26)의 성격을 가진 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 말하여진 즉답인지 알아야 그 번뜩이는 재치와 유머가 돋보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1부 "대문호, 예술가, 철학자, 성직자 편"에 마르크스 어머니의 말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돈에 대해 많이 쓰지 말고 돈을 많이 벌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상황과 따로 떼어놓고 보면, 이 말 자체에는 깊은 의미가 없어보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아들의 책, <자본론>을 받아든 어머니가 "생의 상당부분을 전당포의 단골손님으로 빈궁하게 살았던 아들의 삶이 걱정스러워" 아들에게 보낸 답장에서 한 말이라는 것을 알면, 느낌이 달라집니다. 어떤 이는 역사적 아이러니에 쓴 웃음을 지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박장대소를 터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이 다른 명언집에 비해 돋보이는 점은 단순한 명언 모음집이 아니라, 이와 같이 그 말을 배태한 역사적, 철학적, 정치적, 문화적 상황을 함께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배경 이해를 '인문학적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읽다 보면, 명언보다 인문학적 지식에 무게가 더 실려 있어, 그것을 읽는 재미가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고전이란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소개하며, 여기에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2008년 서울대 중앙도서관은 "서울대 선호도서 100선"과 "하버드대 선호도서 100선"을 발표했는데, 하버드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사보는 책 100선의 상위권은 모두 고전으로 1위는 조지 오웰의 <1974>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울대 선호도서 100선" 10권 내의 도서에는 소설이 9권, 에세이가 1편으로, 일본의 코믹소설 <공중그네>가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60). 물론, 하버드대의 결과는 서점에서 가장 잘 팔리는 책이고, 서울대는 가장 많이 대출된 책이라는 함정이 있습니다. 하버대생들은 수업 과제를 위해 책을 샀을 수도 있고, 서울대생들은 필독서는 구매를 하고 가볍게 읽고 싶은 책들은 대출을 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우리나라 독서 성향에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말 콘스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 하나는 유대인과 우라나라 교육을 비교한 글입니다. 저자는 "세계 185개국 국민 중 이스라엘 국민의 평균 지능은 세계 45위"라는 사실을 말하며 이렇게 묻습니다. 그럼에도 "노벨상 30%, 하버드 30%를 차지하는 유대인의 비밀은 무엇인가?"(90) 저자는 그 이유를 유대인의 '하브루타' 교육에서 찾습니다. '하브루타'는 "원래 '함께 공부하는 짝"이라는 의미로 '짝을 지어 상호 간에 질문하고 대답하는 토론식 공부'를" 말합니다. 그들의 배움은 "질문과 대답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토론과정"임을 설명하며 우리나라 교육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한국인의 교육이 100명의 학생에게 1개의 정답을 요구한다면, 유대인의 교육은 100명의 학생에게 100개의 생각을 장려한다. 이기지도 지지도 않고 맞고 틀리고가 없다"(90).
그런 맥락에서 <말 콘스트>는 1개의 정답이 아니라, 100개의 생각을 담은 책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저자인 '이윤재' 선생님이 영어저술가이며 영어칼럼니스트인 덕분에 이 책에서는 잘못 번역되어 알려진 유명인들의 말을 바로 잡아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묘비명의 원본을 풀이하며 버나드 쇼의 말에 담긴 원래의 의도를 밝힙니다.
총 7부로 이루어진 <말 콘스트>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잘 알려진 이야기에서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까지 명언보다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더 깊습니다. 다만, 어떤 글들은 저자의 편향된 생각이나 정치적, 종교적 편견이 가미되어 보이는 것이 다소 아쉽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촌철살인, 재치즉답의 말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거하게 차려진 말의 향연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칫 냉장고에 먹다말고 넣어둔 온갖 반찬들 다 꺼내놓은 잡다한 상차림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