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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정리 해부도감 - 정리수납의 비밀을 건축의 각도로 해부함으로써 안락한 삶을 짓다 ㅣ 해부도감 시리즈
스즈키 노부히로 지음, 황선종 옮김 / 더숲 / 2014년 3월
평점 :
"아무리 치우고 청소를 해도 금세 다시 집이 너저분해진다면, 그것은 당신 책임이 아닙니다. 집을 설계한 사람의 책임입니다"(5).
사람이건 물건이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자신의 깜냥을 무시한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 때문에 여러 사람이 피곤한 것처럼, 물건들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우리를 피곤하게 합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어질러진 집을 보면 치워야겠다는 생각보다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좁은 집 탓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거 정리 해부도감>은 치워도 그때 뿐이고 집이 계속 어질러져 있다면 "그것은 집의 설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설계도를 그릴 때.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정리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위안을 받을 분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이 책은 "어떻게 집을 지으면 덜 어질러질까" 하는 주택 설계의 근본에 해당하는 문제를 다루었습니다"(5-6).
그러니까 정돈이 잘 되도록 설계 단계에서부터 공간배치를 계획하자는 것입니다. 같은 면적의 공간이라도 집의 형태(주택 그 자체의 구조)에 따라 정돈이 잘 되는 집이 있고, 정돈이 잘 안 되는 집이 있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정리"의 관점에서 설계를 고려할 때는, "사람들은 어떠한 물건을 집에 들여와서,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고, 어떻게 정리하려고 하는가라는 흐름을 파악하는 것"(6)이 관건입니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수납공간 만들기"
<주거 정리 해부도감>의 핵심은 "필요한 곳에 필요한 수납공간 만들기"(12)입니다. 설계 단계에서 필요한 수납 공간을 "미리" 만들어두자는 제안이기 때문에, 이미 지어진 집에는 소용이 없는 팁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집의 구조와 정리 공간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도와줍니다. 수납공간을 어떤 위치에 어떻게 배치를 해야 편리한지 기본적인 룰을 알려주기 때문에, 응급처치식 대응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론적 배경을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새집을 짓거나 리모델링을 할 계획이 있는 분들은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주거 정리 해부도감>을 잘 숙지하면 욕실을 1층에 둘지 2층에 둘지, 남향으로 할지 북향으로 할지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빨래는 어떻게 널어서 말리고 정리할 것인지와 소파의 선택과 같이 세밀한 부분까지 미리 생각해둘 수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이것만은 꼭 기억해두자 한 것이 있다면, 제가 그토록 원하던 "남쪽이 모두 대형 소제창"인 집은 수납이 불편하다는 것(수납이라는 기능 측면에서 말하자면 창문이 크면 클수록 쓸모가 없다고 조언합니다), 동시에 여러 일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작업공간을 마련해두면 항상 정돈되어 보일 수 있다는 것, 의외로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수납하기 좋은 장소라는 것 등입니다.
이 책을 읽고 집을 이렇게 정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보다, 집을 이렇게 지어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인지 주거공간을 만드는 분들이 조금 더 장인 정신을 가져주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간절했습니다. 오직 '장사'를 위해 사는 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마구잡이로 지어진 집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처럼 설계 단계부터 이렇게 세심하게 집을 짓는다면 수납을 위해 따로 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