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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사는 즐거움 - 자존감, 외모, 과거의 문제에서 자유케 하는 하나님의 도우심 ㅣ 크리스천우먼 멘토링 시리즈 1
스테이시 엘드리지 지음, 김진선 옮김 / 아드폰테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많은 여성이 자신은 여자로서 전성기는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18).
우리 할머니는 늘 저를 보면, "좋은 시절에 태어나서 호강하며 산다"고 부러워 하셨습니다. 딸이라고 공부도 시켜주지 않고 어린 나이에 시집을 보내버린 '아버지'에 대한 깊고 깊은 원망을, 할머니는 아흔을 넘기는 세월 동안에도 씻어내지 못하셨습니다. 시대가 많이 좋아지고 여권이 신장되었다고 하지만, 인류 역사에 뿌리 깊은 여성 혐오증은 지금도 세계 도처에,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내면 속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차별 받아야 할 때면, 여자로 태어나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또 다른 투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로 사는 즐거움>은 여자로 태어나서 여자로 사는 일에 지친 여성들에게 필요한 책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베로 수족을 꽁꽁 동여맨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로 사는 즐거움>을 읽으며 그 장면이 떠올랐던 것은, 여성의 삶을 꽁꽁 묶어놓고 있는 "공격, 압제, 차별, 비하, 두려움"의 속박을 이 책이 풀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들리는 듯합니다.

"진정한 변화는 외부의 압박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내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23).
<나로 사는 즐거움>이 여성을 위한 여느 자기계발서와 다른 점은, 변화를 위한 지침이나 실천 사항을 늘어놓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행동하라는 십계명도 아니고,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언니의 독설도 아니고, 여성성을 뽐내도록 응원하는 치어리더도 아닙니다. 여성을 위한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온갖 요구로 여성을 압박"하는 "행동교정의 또 다른 버전"일 때가 많은데, 이 책은 단언합니다. "진정한 변화는 외부의 압박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어머니에게 건강한 자존감을 물려받지 못한 저자는 오랜 세월 비만과 수치심의 문제를 안고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45킬로그램이나 체중감량에 성공한 적도 있지만 다시 40킬로그램이나 불어나기를 반복하며 이런 의문에 시달려 왔다고 합니다. "왜 나는 이 문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하지 못하지? 왜 지속적으로 변화를 유지하는 게 이토록 어렵지?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15)
그 자신이 산 증인이기도 한 저자는 "수치심"이나 "자기 훈련"으로는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자기혐오로 변화의 욕구를 자극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아무 변화가 없다. (...) 자신을 채찍질하고 발을 동동거리며 더 열심히 노력하면 몇 주일은 반짝 성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수십 년간 지속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22).
"우리의 변화는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고 믿을 때 시작된다"(28).
지속적이고 진정한 변화를 갈망하던 저자는 예수 신앙 안에서 그 길을 찾았습니다. 자신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시도를 그치고, 하하나님의 사랑에 자신을 완전히 내어맡겼을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어느 날 밤,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가운데 나는 내 힘으로 삶을 추스르려는 고된 노력을 포기하고 날 기다리고 계시던 주님의 품에 무너져 안겼다"(16). 아마 이 지점에서 이 책을 읽는 독자층이 갈릴 것입니다. 예수 신앙이 없는 여성들은 나와 상관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한 여인이 신앙(사랑) 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바꾸어갈 수 있었는지 귀 기울여보라고 초대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저자와 같은 간증을 가진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여성으로 태어난 한 사람으로서 예수 신앙 안에서 나를 바꿔갈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의 사랑을 통해서만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여성을 둘러싼 여성 혐오증의 정체를 폭로하는데, 예수님이야말로 그 여성 혐오증과 정면대결을 벌이신 최초의 남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이런 여성 혐오를 정면으로 배격"하셨습니다(74). 사람들은 교회가 가부장주의를 견고히 하고 여성 차별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교회의 과오입니다. 교회로부터 여성 혐오증이 세상으로 번진 것이 아니라, 세상에 가득한 여성 혐오증이 교회 안으로 흘러 들어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접촉하고 가르치시고 존중하셨습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여성이 잘 이해할 만한 비유로 진리를 가르치시는 예수님과 만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저마다 변화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는 수치심, 자기 훈련,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수치심의 목소리는 "난 정말 내가 싫어. 가능하면 이런 내 모습과 이별하고 싶어"라고 말한다.
자기 훈련의 목소리는 "넌 문제가 있으니 확실하게 손을 봐서 정상으로 고쳐놔야 돼"라고 꾸짖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회복시켜주겠다"고 속삭이신다.
나는 주님의 그 음성이 제일 좋다.
"당신의 인생에 대해 새 이름을 붙여주라"(305).
<나로 사는 즐거움>은 그 비결이 "하나님이 작정하신 여성이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정체성을 부여하고, 어머니는 자존감을 부여한다"(91)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아무리 자녀를 사랑하고 헌신된 부모라도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정체성과 자존감은 크고 작은 상처로 얼룩져 있습니다. 저자는 <나로 사는 즐거움>을 회복하기 위해 상처를 치유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과거의 기억(아픈 기억뿐만 아니라 사랑 받았던 아름다운 기억도)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치유가 시작됩니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사랑하며 미래를 꿈꾸는 치유와 회복의 과정 가운데서 자신의 인생에 다시 이름을 붙여주라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그 작업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 내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지 하나님의 비전을 보는 일이기도 합니다(315). 하나님은 "아름다움과 위험으로 가득한 이야기"에서 우리 각자에게 큰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나로 사는 즐거움>은 바로 그 이야기 안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를 찾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무엇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가 되기를 갈망하게 해줍니다. 그 안에는 이런 약속이 덧붙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면 세상에 불을 붙일 수 있다"(311).
그러니 저자는 그레이엄 쿠커의 말을 빌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더 빛나는 그림과 우리에 대해 더 아름다운 그림을 갖게 해달라고 주님께 구해야 한다"고 일러줍니다. <나로 사는 즐거움>을 읽으며 가장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를 배운 것입니다. 때로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도 기도의 방향과 내용이 올바른지 의문이 들 때가 있었는데, <나로 사는 즐거움>은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구해야 할 것인지 기도의 모범을 제시합니다. 그 기도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로 사는 즐거움>가 특별히 재밌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좋아하는 힐송 중에 한 여성 싱어가 애드리브로 "I'm free, I'm free"라고 고백하는 노래(Jesus Won It All)가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I'm free, I'm free"라고 노래하는 저자의 음성을 들은 듯합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과거의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그리고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개입하신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크리스천 여성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