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12년 - Movie Tie-in 펭귄클래식 139
솔로몬 노섭 지음, 유수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여전히 끔찍한 범죄에 가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른 척함으로써, 무관심함으로써.

 

 

<노예 12년>은 자유인으로 살다가 납치되어 12년간 끔찍한 노예 생활을 한 뒤, 극적으로 구출된 한 흑인이 노예 생활의 실상을 고발한 책입니다. 진정한 흑인문학으로 평가되며 영미 문학에서도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며, <톰 아저씨의 오두막>(1852)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어(1853) "노예 해방의 도화선"이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요즘 다시 읽히기 시작한 것은 브래드 피트가 이것을 영화화했기 때문입니다.

 

<노예 12년>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사실은 노예 제도가 폐지된 북부와 잔인한 노예 제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남부의 공존이었습니다. 북부에서 태어나 자란 주인공 '솔로몬 노섭'은 "북부의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며" 살았기에 자신이 백인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납치되어 팔려간 남부에서 그는 가축보다 조금 더 비싼 동물, 그 소유주의 재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동시대, 같은 문화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처럼 판이하게 다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품성이 잔인한 성정인가를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솔로몬 노섭이 처음 노예로 팔려가 섬겼던 주인 '포드'는 지극히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 노섭은 그만큼 "상냥하고 품위 있으며 솔직담백한 기독교인을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런 사람이 사람을 노예로 삼고 인신매매를 하는 모순에 대해 솔로몬 노섭은 스스로 이렇게 진단합니다. "포드는 태어날 때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노예 제도의 밑바닥에 깔린 태생적인 잘못을 인식하지 못했다. 또한 단 한 번도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종으로 부리는 일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대대로 내려오는 조상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시각으로 현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틀림없이 다른 시각으로 생각했을 터였다"(76). (특히) 남부의 사람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노예의 등을 채찍으로 내리치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173) 노예 제도를 당연하게 생각했고, 노예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날마다 목격하면서 그들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그 무감각으로 인해 인간의 잔인한 본성이 더 악화되었다고 말입니다. <노예 12년>을 읽으며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의심해볼 필요를 느꼈습니다. 차별하면서도 차별인 줄 모르고, 착취하면서도 착취인줄 모르고, 폭력적이면서도 폭력인줄 모르는 것들이 우리 삶 구석구석에 얼마나 태연하게 자행되고 있는가를 말입니다.

 

<노예 12년>은 고된 노동과 매질, 욕설과 학대, 난폭한 백인의 폭력 속에서도 생명의 끈을, 삶의 의지를 놓치 않았던 한 사람의 경건한 투쟁을 통해 자유와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가르쳐줍니다. "지친 육신을 편히 누이고 쉴 수 있는 장소로 무덤을, 속세의 슬픔을 끝내는 방편으로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생명의 위협 앞에서는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 그 처절한 몸부림이, "아무리 비참한 노예로 살아가야 한다고 해도 그 순간엔 내 목숨이 소중했다"(115)는 그 뜨거운 고백이 나의 생명을 참 하찮게 여기며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깊이 반성하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우리의 일상이 그들에게는 바로 '천국의 삶'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쉴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천국을 꿈꿨던 노예에게는 자신을 위해서 밭을 갈고 가정을 이뤄서 살 수 있는 삶, 그것은 불가능한 꿈이었습니다. 

 

솔로몬 노섭을 옭아맸던 노예 제도는 이제 철폐되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구석구석에서는 아직도 노동에 내몰리는 아동, 착취 당하는 여성, 삶을 뺏아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보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또 간혹 "현대판 노예"라는 제목으로 보도되는 뉴스를 보면, 우리 삶 가까운 곳에서도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억압하고 노동력을 빼앗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기도 합니다. 노예 제도가 '합법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시 미국은 "나라 전체가 끔찍한 범죄에 가담하고 있었던 꼴"입니다. 인정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다 해도 이웃의 고통에 눈을 감고 산다면 결국 우리도 끔찍한 범죄에 동조하는 것이겠지요. (어떤 목적이었건) 노예 해방을 위해 전쟁까지 불사한 그들처럼, 누구도, 한 사람도 '노예'로 사는 일이 없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싸워야 할 것입니다. 이웃의 고통에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결심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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