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지도 - 12개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제리 브로턴 지음, 이창신 옮김, 김기봉 해제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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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지도 12개를 중심으로" 풀어낸 인류의 세계관

 

 

프리젠테이션을 하며 지구본 이미지를 사용한 발제자가 엉뚱한(?) 문제로 공격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미국'이 중심에 놓인 이미지를 따왔기 때문입니다. 북미 사람들이 자국 중심으로 만들어놓은 이미지를 무분별하게 사용하지 말고, '우리나라'가 중심에 놓인 이미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지구를 보여주는 사진 한 장에도 자국을 중심에 놓고자 하는 '욕망'이 작용한 것입니다. <욕망하는 지도>는 이처럼 "모든 문화는 지도로 세계를 바라보고 표현하는 특정한 방식"이 있다는 것에 주목한 책입니다.

 

지도사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제리 브로턴'은 "지도를 만들려는 욕구는 인간의 기초적이고 지속적인 본능"(27)이라고 말합니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다양한 형태의 지구를 만들어왔는데, <욕망하는 지도>에서 주목하는 것은 '세계지도'입니다. 지역지도와 세계지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시점'입니다. (세계) 지도 제작의 딜레마는 지구 자체를 납작한 명편에 표현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실제 모습대로 보여주는 세계지도"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어떤 형태로 만들어진 세계지도이든지 거기에는 '축소와 선별'의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또 하나, 지도 제작은 '과학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지도를 본격적으로 이해하고 지도 제작에 과학을 동원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28)이라고 합니다. 세계지도는 과학이 아니라, 만드는 이의 '세계관'에 따라 지구 전체의 모습이 다양하게 제시됩니다.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지구의 모양이 그리스의 것은 '원'으로, 중국의 것은 '사각형'으로, 계몽주의의 것은 '삼각형'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욕망하는 지도>는 바로 이러한 지도의 특성에 착안하여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지도 12개를 중심으로" 인류의 세계관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저자는 "과학, 교류, 신앙, 제국, 발견, 경계, 관용, 돈, 국가, 지정학, 평등, 정보"라는 12개의 욕망 코드로 지도를 해독하며 '그러한 지도를 만들어낸' 사상과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폭넓게 파혜쳐 들어갑니다.

 

 


 

 

"세계지도가 세계관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세계지도는 다시 해당 문화의 세계관을 규정한다"(30).

 

 

<욕망하는 지도>를 읽으며 무엇보다 감탄했던 것은 저자의 '박식함'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12개의 세계지도는 시대도, 문화도, 환경도 모두 다른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 하나의 지도를 읽어내는 저자의 지식이 얼마나 해박한지 정말이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덕분에 이 책은 단순히 '지도'에 관한 책이 아니라, 백과사전적으로 읽힙니다. 이 책에는 12개의 지도 가운데 '의외의', 그러나 대단히 '반가운' 지도가 등장합니다. 바로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입니다. 흔히 <강리도>라 불리는 이 지도는 "동아시아에서 제작된 현존하는 세계지도 중 가장 오래된 지도로 중국과 일본의 그 어떤 세계지도보다 앞서 제작 되었으며, 조선을 표현한 최초의 지도이고 아시아에서 최초로 유럽을 표시한 지도"(185)라고 합니다. 지도를 만든 사람이 세계를 인식하는 수준이나, 오늘날의 모습과 대단히 비슷하게 그려진 지도의 모습도 놀라웠지만, 당시 정치적 상황과 국제 관계를 이해하는 저자의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도 또 다른 감동을 주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제작된 지도로부터 시작된 여행은 현재 '구굴어스'에서 제공하는 위성 지도까지 내려옵니다. 저자는 혁신적인 기술로 '모든 정보'를 담아낸 이 인터넷 지도 덕분에 "우리는 다양한 개인, 국가, 단체가 다양한 지도를 제작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마지막 시대"(609)가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것은 경제적 이윤이라는 목적으로 정보을 '독점'하는 현상에 대한 우려의 말이기도 합니다.

 

<욕망하는 지도>를 보면 "지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지도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모양을 설명하고, 세계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하고,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알려줍니다. 종교적인 믿음이 지도의 모양과 내용을 결정짓기도 하지만(헤리퍼드 마파문디), 만들어진 지도가 국가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카시니 지도). 이처럼 "세계지도가 세계관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세계지도는 다시 해당 문화의 세계관을 규정"(30)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지도는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느껴지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가상현실을 통해 지도 제작자의 모든 주관적 요소가 배제된 완벽한 지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디지털 지구'를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도의 지도'에 대해 성찰하는 사유 능력이다"라는 김기봉 교수님의 말이 하나의 예언처럼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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