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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어디로 갔나
서영은 지음 / 해냄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사랑은 어떻게 끝나는가?
소멸됨으로써? 완성됨으로써?
그렇다면, 사랑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사랑을 시작했다, 사랑을 끝냈다, 하는 사람은 봤어도 사랑을 완성했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하신 예수님밖에. 그런데 이 책 <꽃들은 어디로 갔나>에서 나는 꼭 완성된 사랑을 본 듯하다. 착각일까.
작가 서영은과 그보다 서른 살 많은 김동리 선생과의 결혼이 세간을 시끄럽게 했던 일이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다. 나이차도 나이차이지만 김동리 선생에게는 그것이 세 번째 결혼이라는 것, 그리고 서영은 작가가 오랜 시간 유부남 김동리의 숨겨진 여자로 살아왔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사랑에 대해 세상이 떠들어대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정작 당사자로부터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는데, <꽃들은 어디로 갔나>을 통해 서영은 작가는 직접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심한 시선으로 아주 담담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기까지 40년의 세월이 걸렸단다.
"견디어내리라, 하면서도 오랫 세월 동안 남의 남편이었던 사람을 자신의 남편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치러내야 할 고난이란 것이 결코 만만치 않았으리라 예상되었다. 그녀는 입술을 아프도록 깨물었다"(32).
이야기는 '그'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전처'가 죽고, 그녀가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것은 20년 전, 그러니까 그녀가 그를 만난 "스물네 살 때부터 시작된 이야기"(286)이다. "사랑은 함께했어도, 생활을 함께한 일이 없었으므로"(32) 다른 여자와 함께 산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간에서 시작된 그들의 결혼 생활은 낯설고, 불편하고, 어색하고, 민망하다.
생활이 시작되자 사랑은 사라졌다. '그'는 더 이상 그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애태우며 눈물짓게 하던 사람"이 아니라, 웬 '노인'이 서 있다. 인색하고 무심하며 자신이 살아온 방식만을 고집하는 '노인'. 그러나 그녀는 그곳에서의 굴욕과 수모를 견디어내리라 다짐한다. 그녀가 아는 그를 다시 찾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나 사십이 넘도록 사랑해 온 그 남자는 이제 마음속에만 존재했다. 그가 과거로 줌(zoom)된 시간 속으로 사라져버리자 그녀는 그와 교신할 방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떨림이 아직 그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지만, 응답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다시 찾아야만 했다. 마음에 숱한 기억을 남긴 그가 어떻게 신기루일 수 있겠는가. 이 낯선 혹성에서 어떤 수모를 당하고 어떤 시련을 겪게 되더라도 그녀가 아는 그를 다시 찾아내야 했다"(26-27).
"세인들로부터 돌팔매를 당하더라도 쟁취해야만 얻어지는 사랑. 사랑이 결혼이 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운명이 되는 그런 사랑. 그를 만남으로써, 그녀는 바야흐로 자기의 무의식이 바라던 바가 생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독하게 치르면서 알아가게 될 것이었다"(153).
운명 같은 사랑을 꿈꾼다지만, 서른이나 나이차가 나는 남자와의 사랑, 그것도 이미 부인이 있는 남자와 얽혀드는 운명을 바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도 헤어져 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을 안 남자가 그녀를 때렸다. 살의를 담고서 말이다. 그렇게라도 자신을 붙잡고 싶어하는 남자를 보며 여자는 사랑이 아니라, 운명을 감지한다.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었다. 운명의 확인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그의 주먹 안에 가득 차 있는 피투성이 살의 속으로 치마를 뒤집어 쓰고 뛰어내렸다"(206).
"사랑은 목숨 같은 거야. 목숨을 지키려면 의지를 가져야 해. 그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니 목숨을 지킨다고 생각해라"(68).
여인에게 최선의 것을 주지 못하면서도 '그'는 여자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단다.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끝내려 한 사랑, 그러나 끝내지 못한 사랑. 그녀는 무엇을 바래 이 사랑을 계속 했을까. 그런데 그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랑을 계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의 마지막 글 "휠체어"(前生, 今生, 後生)에 보면 화자의 시점이 바뀐다. 3인칭 시점에서 1인칭 시점으로. 담담하게 써내려가던 '그녀'의 이야기에서 갑자기 뜨거운 숨을 토해내는 '나'가 튀어나온다. "사랑 때문에"가 아니라 사랑 "했기" 때문에, 조롱과 비웃음과 학대를 무릅쓰고, 굴욕과 수모를 당해도, 다 잃어도, 짓밟혀도, 제물로 받쳐져도 괜찮다고 고백하는 '나'. 나는 그녀를 통해 사랑은 원 없이 줌으로써 완성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이 '소설'이라는 것을 잊게 만드는 것은 소재가 '자전적'이라는 것보다, 깜짝 놀랄 정도로 '사실적인' 고백(?) 때문이다. '전처'의 삶의 흔적들 속에서, 결혼생활이라는 틀 안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때로는 낯선 타인처럼, 때로는 강렬한 그리움으로, 때로는 차오르는 슬픔으로 다가오는 '그'를 바라보는 '그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아파도 다시 주저앉고 마는, 사랑의 자리, 삶의 자리. 그 모든 것들이 징그러울 정도로 '사실적'이다. 그러면서도 소설가만이 들려줄 수 있는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하는 감동이 있었다. 똑똑한 언니들, 여성학자들이 들려주는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사랑' 이야기와 다른, 왜 문학이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가 필요한가를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