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시절
안드레아스 알트만 지음, 박여명 옮김 / 박하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동안 나는 그저 불쌍한 자식, 불쌍한 개자식일 뿐이다. 심장이 산산조각난 개자식. 스크린 속 영웅 같은 존재를 갈망하는 개자식. 아들을 깨안고 보호해주는 아버지를 갈망하는 개자식"(320).

 

 

아이들이 입원한 정신병원에 가면 엄마(양육자)들에게서 공통점이 보인다고 합니다. 입으로는 "난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는데, 얼굴(표정)과 온 몸으로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부모(양육자)의 이런 태도가 아이의 정신에 (지독한) 혼란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어느 심리학과 교수님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개 같은 시절>은 부모의 사랑을 갈망했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잔혹한 폭력과 학대에 시달려온 한 남자의 울부짖음입니다. 어쩌면 그의 아버지는 그것이 사랑이었고, 교육(가르침)이고, 관심이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내면에 깊이 새겨진 끔찍한 구타와 경멸과 멸시는 아이가 성인이 된 뒤에도 그의 삶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 "나는 내가 만든 감옥 안에서 수치라는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 수치는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284).

 

그런데 이 아이는 "본능적으로 글을 쓴다는 쓴다는 것이 (서투르고 형식적일지라도)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삶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112)을 느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를 패배자로 낙인 찍으며 쓸모 없는 인생으로 추락하던 그를 구원해준 것은 바로 '글쓰기'입니다. <개 같은 시절>은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행기자"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그는 자신의 증언이 '틀림 없는 사실'이라고 고백하지만, 이 책의 장르(소설)을 감안해서 읽어야 합니다.) 혐오스러울 정도로 끔찍한 구타와 학대에 시달린 그의 어린 시절은 '역겨움' 그 자체이지만, 그의 이야기가 여기에서 멈췄다면 이 책은 큰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자신을 향한 "모든 멸시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의 어린 시절의 상처와 작별하기 위해 이 글을 썼을 것입니다. "심지어 나는 여전히 소아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과거의 문제들을 내려놓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며 바라보는 다섯 살짜리였다"(282).

 

이 아이는 아버지를 '개자식'이라고 부릅니다. 그의 아버지는 주변 사람을 짓밟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여겼던 '개자식'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꼬리를 내린 개 같은 삶을 산 여인으로 기억됩니다. "어머니는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 같았다. (...) 어머니는 나약한 모든 이가 저지르는 죄를 지었다. 스스로 환경을 바꾸려 하지 않고 희망하기만 하는 죄"(250). (어느 한 쪽의 부모가 무조건 참기만 하며 사는 것이 자녀의 인생에 어떻게 또다른 독이 되고 고문이 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하는 불쌍한 개자식"일 뿐이었다고. "자식도 살고 싶다는 것, 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 자식을 구속하고 쉴 새 없이 의심하기보다 격려해줘야 한다는 것, 죽었다 깨어나도 아버지가 이해하지 못할 것들이었다"(240).

 

'사랑 받지 못한 아이'이라는 정체감은 평생을 따라 다닙니다. '개 같은 시절'을 보낸 아이의 어릴 적 기억은 무엇으로도 지우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 기억과 화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매일 아버지를 죽이는 꿈을 꾸었던 이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 참 후, 어쩌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도 있는 빛을 발견합니다. '전쟁터'의 경험이 아버지를 어떻게 파괴했는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건강하고 매력적인 청년이었다는 것, 아버지의 아버지가 건넨 불행에서 도망칠 힘이 없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 속에 자리잡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아는 중에 가장 외로운 인간이었다. 어머니보다, 나보다 외로운 사람.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곁에 아무도 없는 사람"(259).

 

"내 인생은 도둑맞았다. 모험도, 기쁨도 없었다.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부모도 없었다. 잔뜩 지저분해진 모습으로, 콧물 흘리며 집으로 돌아와 놀이터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에 흥분할 때, 그 호기심과 순수함, 경험에 대한 갈망을 칭찬받는, 아이다운 인생이 없었다. 나는 어린 군인이었다"(95).

 

혹시 당신이 '사랑 받지 못한 아이였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개 같은 시절>은 자신의 아버지를 개자식이라고 부르며 절규하면서도 결코 희망을 멈추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잔혹한 폭력 앞에서는 나를 굽힐지라도 그 밖의 상황에서는 무너지지 말라고 격려합니다. 나의 존엄은 누가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켜가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하며 우는 한 아이와 함께 울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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