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배심원
아시베 다쿠 지음, 김수현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어째서 그들은 그토록 배심제를 꺼렸던 걸까?"(411)

 

 

법은 정의의 편이라고 배웠지만, 살아 보니 법은 확실히 강자의 편입니다. 강자의 편에 선 법과 대면, 사회적 약자에게는 가장 큰 절망의 벽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절망은 저항의식과 분노마저 삼켜버리는 무력감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열세 번째 배심원>은 그런 무력감을 걷어치웁니다. 약자이지만, '시민'으로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이었습니다. <열세 번째 배심원>은 '법정 미스터리'입니다. 법정 스릴러의 흥미진진한 대결과 추리소설의 묘미가 잘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게다가 재밌는 소설을 읽으면서 사회적 문제까지 깊이 성찰해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 지망생인 '다카미 료이치'에게 출판업계에서 일하는 선배 '후나이 신'이 괴상한 제안을 해옵니다. "... 자네, 누명 사건의 히어로가 되어볼 생각은 없나?"(21)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죄'의 범인이 되어보라는 제안이었습니다. 자진해서 누명을 쓴 뒤, 수사 기관이나 매스컴을 의도적으로 함정에 빠뜨리자는 것입니다(37). "경찰과 매스컴이 판결은커녕 재판조차 시작되기 전에 '범인'을 단정"짓는 행태를 고발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그 체험을 책으로 펴내 일약 스타 작가로 데뷔하라는 유혹.

 

그는 누명 계획의 주인공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계획대로(!)  범인이라는 누명을 쓴 뒤. 법정에 선 다카미 료이치. 그런데 계획이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계획한 범죄가 아닌, 실제 강간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다카미 료이치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지만, 뒤늦은 깨달음이었습니다. 반박 불가능한 결정적 증거들이 그를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꼼짝없이 유죄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는 다카미 료이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변호사 '모리에'입니다. 모리에는 다카미 료이치 사건 뒤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음모의 실체를 감지합니다. 모리에는 다카미를 구하기 위해 세 개의 싸움에서 이겨야 했습니다. 첫째는 강간 살인죄의 진범을 밝혀내는 것, 둘째는 다카미에게 죄를 덮어씌운 계략의 진상을 폭로하는 것, 셋째는 배심 재판에 사악한 의도를 가진 자들을 백일하에 끌어내는 것입니다(310). 이 싸움의 성패는 한 가지 질문에 달렸습니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연출한 (보이지 않는) 적이 이 재판의 종막에서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359)

 

(스포일러가 될까 직접으로 다룰 수는 없지만) <열세 번째 배심원>은 법정 스릴러라는 장르를 빌어 '배심제'에 대한 중요한 사회적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배심제란 "열두 명의 일반 시민이 심리에 참여해 직업 재판관을 대신해서 사실 인정을 하는 제도"(112)입니다. "사실 인정"이란 한 마디로 유죄, 무죄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재판관은 그 결과에 따라 형을 결정합니다. 작가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 중 유일하게 일본에만 배심제가 없다는 사실을 꼬집습니다(초판 당시). '정상적인(!) 국가"라면 필요불가결한 이 제도가 일본에서만 왜 도입되지 않고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들은 그토록 배심제를 꺼렸던 걸까?"(411)

 

한때 일본에서는 배심 재판이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이 횡행했다고 합니다. 저널리즘도 "일반인의 사법 참가는 말도 안 된다", "일반인에게 맡겨둬서는 제대로 된 재판이 불가능하다", "일본인의 문화수준으로는 시기상조다", "국민성에 맞지 않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쏟아내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검은 목적이 숨겨져 있습니다. '시민의 사법 참가를 저지하려는' 세력이 존재했습니다. 배심제가 도입되면 고란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배심제가 왜 이토록 중요한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이고, 사실 우리에게는 던져진 적도 없는 질문입니다. 작가가 폭로한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면, "일본의 재판은 서면이 우선되고 법정에서의 변론은 중요시되지 않는다"(303)고 합니다. 오히려 주장이나 논쟁을 저속하다고 생각하는 풍조 때문에 '범인의 자백'을 결정적 근거로 해서 수사가 종결되는 결함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배심제를 도입하면 변호사는 물론 검사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상식을 가진 열두 명의 일반 시민을 납득"시켜야 합니다. 용의자의 자백 외에, 납득할 만한 증거가 수집되고 보존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작가는 "경찰이나 검찰이 고생해서 법정에 끌어낸 피고인을 무죄로 하는 것은 곧 '한 식구'의 체면을 구기는 짓이며 그것이 그대로 출세에도 영향을 끼치는"(241) 현실을 고발합니다. 그런데 배심제, 즉'사법 업계인'과는 무연한 일반 시민의 눈이 더해지는 것만으로 이런 풍조가 상당히 나아진다는 것입니다(303).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그들만'의 재판을, 시민이 감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포일러 주의) <열세 번째 배심원>이 폭로하는 검은 세력(배심제를 반대하는)의 목적은 이것입니다. "엘리트와 그 피를 잇는 자는 설령 어떤 죄를 저지르더라도 벌해서는 안 된다는 전통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언제까지고 계속 이 나라를 지배하게 하기 위해!"(398) 다른 말로 하면, 법 권력을 시민과 나누지 않겠다는 맹렬한(!) 의지인 것입니다!

 

<열세 번째 배심원>은 반전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기막하게 정교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법 흥미진진하고 끝나는 순간까지 섣부른 예측을 거부하는 묘미가 있습니다. 혹시 법정 미스터리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 하더라도 '배심제'에 담긴 사회적 함의를 함께 읽어보자는 의미에서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희망을 함께 품어보고 싶습니다. 함께 품어야 더 커지는 희망이고, 약자 편이 아닌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든 숨기고 싶어 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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