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떤 소송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65
율리 체 지음, 장수미 옮김 / 민음사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나는 정신을 육체에 팔아 넘긴 문명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나는 내 살과 피가 아니라 정상 육체라는 집단적 환상을 구현해야 한다는 몸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 나는 순환 논리에 근거한 지배 체제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나는 문제가 무엇인가는 말하지도 않은 채 자신이 궁극적 답이라고 하는 안전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 나는 오직 위험 없는 삶에 대한 약속에 의지해 인기를 모으는 정치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 나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삶이 무얼 뜻하는지 내가 이해하기도 전에 동생이 죽어야 했기에"(185-186).
E.T.를 만들어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미래의 인류를 상상했다고 했습니다. 육체노동보다는 두뇌를 사용하는 일을 더 많이 할 것이라는 추측에서 E.T.의 팔다리는 가늘고 머리는 크게 했으며, 컴퓨터(키보드)를 많이 사용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E.T.의 검지 손가락을 유난히 길고 센스티브하게 그려냈다고 들었습니다. 율리 체가 <어떤 소송>에서 예견한 미래 사회는 '건강'을 최우선으로 삼고, 그 최고의 목적에 모든 것이 맞춰져 있는 체제(국가)입니다. 체제의 작동 원리는 단순합니다. 생명체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생존, 즉 (육체적) 건강이고, 이것에 대한 대합의의 토대 위에 (모두의 육체적) 건강 보장을 목표로 하는 (법률적) 체계가 세워집니다. 미래 사회는 이 체제를 "방법"(Methode)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면 모두가 합의한(?) 대로 이 "방법"에 순응해야 합니다. 이 "방법"에 어긋나는 것은 모두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소송>의 주인공인 '미아 홀'은 "방법"에 순응하며 나름대로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 생물학 전공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방법적대적인 테러리스트로 몰리게 됩니다. 미아 홀의 '정상적인' 삶을 흔들기 시작한 것은 남동생 모리츠의 죽음입니다. '반방법적'인 자유를 꿈꾸었던 모리츠는 한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한 협의를 뒤집어쓰고 체포됩니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에게 유죄를 선고한 "방법"을 거부하는 방법의 하나로 말입니다. "삶이란 하나의 제안이고 우리는 그걸 거부할 수도 있는 거야"(32).
누구보다 동생을 잘 알았던 미아 홀은 무죄를 주장하는 동생을 믿었지만, 살해된 여성의 몸에서 동생의 '디엔에이'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혼란해합니다. 생물학 전공자인 그녀는 '디엔에이'가 어떤 의미인지 또한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동생에 대한 믿음과 "방법"이 지주로 삼고 있는 '무오류성'에 대한 믿음 사이에 갇힌 미아 홀. 그녀에게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두 남자가 접근해옵니다.
매력적인 언론인 크라머는 "방법"의 완벽성을 주장하며 미아 홀의 혼란을 죄악시합니다. "우리 법률은 유기체의 신경계에 비유되리만큼 섬세하게 미세 조정되며 기능해요. 우리 체제는 완벽하며, 놀라울 정도로 생명력 있고, 신체처럼 강하죠"(41). 사익의 대변자인 로젠트레터 변호사는 "방법"의 오류를 증명하려는 목적으로 미아 홀을 소송에 끌어들입니다. "방법처럼 깨끗한 체제 뒤에조차도 어떤 비극과 모순 들이 숨었는지 우리가 보여 줄 수 있겠죠"(46). 그는 문제에 휘말리고 싶어 하지 않는 미아 홀을 이렇게 설득합니다. "법은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게임이에요"(79). "방법"에 대한 믿음이 동생에 대한 믿음에 균열을 일으켰지만 미아 홀은 결국 동생이 옳았음을 알게 됩니다. 정신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처럼 그녀의 삶을 떠받치고 있던 "방법"에 대한 믿음에 쩍쩍 금이 갑니다.
이 책만큼 밑줄을 많이 그으면서 읽은 소설도 드물듯합니다. <어떤 소송>은 독자에게 많은 물음을 던져줍니다. "방법이 의심할 여지 없이 유죄라고 확인했는데도 자신을 무죄로 여기는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런 경우에는 왜 보편적 복리와 개인적 복리 사이에 골이 생기는가? 이런 것들이 우리가 함께하는 삶의 근본 물음이에요. 동시에 방법의 근본 물음이며 항상 새로 제기되고 다뤄져야 하지요"(45).
율리 체의 목적은 체제에 대한 의심을 심어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간 사회에 작동하는 그 어떤 체계도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비판과 반성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나에게 큰 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그저 조용히 순응하여 살아가는 것이 최고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런 쓴소리를 내뱉기도 합니다. "그리고 너는, 넌 자전거를 타는 나무랄 데 없는 시민이지? 네가 누군지 말해 줄게. 비겁한 사람. 너의 모든 합리적인 생각, 너의 찬성과 반대, 네가 남보다 더 잘 알고 제일 잘 아는 체하는 건 모두 단 한 가지 목적을 위한 거야. 평생 동안 '난들 어쩌겠어?' 하며 어깨나 으쓱해 버리고 살려는 목적"(143).
무엇보다 사랑에 대한 작가의 정의가 인상 깊습니다. "그 애는 사랑을 위해 살고자 했어. 그 애 말을 경청하다 보면 사랑이란 그저 그 애 마음에 드는 모든 것의 다른 이름일 뿐이란 걸 알 수 있었지. 사랑은 자연이었고 자유와 여성들이었으며 낚시였고 고요를 깨는 거였지. 다르게 존재하기. 더 많이 소란을 일으키기. 그 모든 걸 모리츠는 사랑이라 불렀지"(31).
진정한 생명력은 고요를 깨는 것이고, 더 많은 소란을 일으키는 것이라, 그것이 사랑이라는 율리 체의 말을 꼽씹어 봅니다. 체제가 견고해지면 인간을 위해 체제가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체제(의 안정)를 위해 존재하게 됩니다. 체제는 순응하는 인간을 원하고, 그 안에서 권력과 이익을 누리는 자들은 무엇보다 간절히 '고요'(안정)를 원합니다. 그 고요의 상태의 정상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애씁니다. 요즘 뉴스 보기가 겁이 납니다. 난리와 난리, 재난과 재난에 대한 보도가 끊이지 않습니다. 지구촌에 번지고 있는 위협과 공포가 사회의 안정을 견고히 해줄 강력한 체제(빅 브라더)를 낳을 것이라는 예측이 일반적입니다. <어떤 소송>은 미래의 어느 날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오늘 우리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안정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감시와 폭력에 정당성을 더해가는 체제에 의문을 던져볼 것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