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과의 대화 - 넬슨 만델라 최후의 자서전
넬슨 만델라 지음, 윤길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자신에게 정직해지면 우리 또한 도전해야 할 크고 작은 투쟁에, 정치적이거나 개인적인 투쟁에 직면해 있음을 알게 된다. 두려움과 의심을 떨치고, 성과가 불확실할 때에도 계속 열심히 노력하며,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면서 도전해야 할 투쟁말이다. 이 책에 있는 이야기, 만델라의 삶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오류 없는 인간이 거둔 필연적 승리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건 사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버락 오바마, 7).

 

 

대한민국의 2013년도 만큼 지도자에 대한 목마름이 심했던 해가 또 있었을까 싶습니다. 정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좋은 지도자인 '척'도 하지 않는, 대놓고 자기 배불리기 급급한 저급한 정치 현실에 많은 국민이 저항보다 환멸에 빠져드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2013년 12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전 세계에서 정의와 평등, 인간의 존엄을 위한 투쟁의 상징"이었던 넬슨 만델라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그토록 안타까웠던 것은 우리의 현실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절망적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남아프리키와 브라질의 현대사에 등장한 위대한 지도자가 우리나라에도 등장해주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첫 번째 "28"은 넬슨 만델라가 감옥에 갇혀 있던 총 햇수이고,

두 번째 "44"는 그가 처음 감옥에 갇혔을 때의 나이며,

세 번째 "72"는 그가 마침내 감옥에서 풀려났을 때의 나이다.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이지선 씨가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한 일은 그저 화상(장애)이라는 엄청난 시련을 "견딘 것'밖에 없다고. 그런데 유명해졌고, 많은 사람에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위대한 점은 시련 속에서도 꿈이 꺾이지 않고, 고통을 희망으로 견디어낸 인물들을 "위인"이라고 부르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흑인인권운동가인 넬슨 만델라가 세계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존재"가 된 데에는 종신형을 받고 28년 간 옥살이를 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그의 삶이 서사시적 규모를 지닌 것은 그가 27년 넘게 감옥에 있었을 때다. 만델라는 전 세계에서 정의를 위한 투쟁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죄수였다"(176). 

 

 

"육체의 쇠사슬이 정신에는 날개일 때가 많다오"(75).

 

넬슨 만델라가 어떤 사람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재미있는 편지가 한 통있습니다. 인생의 가장 절망적인 환경이라 할 수 있는 감옥에서 쓴 편지인데, 넬슨 만들라는 남아프리카 대학교에 "라틴어 1의 면제"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설령 언젠가 변호사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더라도, 실제로 그렇게 할 리가 거의 없습니다. 현재 나는 종신형을 살고 있으니까요. 만일 이 요청을 받아 준다면, 라틴어 1 대신 아프리카 정치를 수강 신청하겠습니다"(52). 그는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법학사 학위를 따기 위해 계속 공부했고, 1989년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피부색 편견이 낳는 악을 마침내 없앨 수 있는지, 이와 관련해 내가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내가 규율 있는 자유 운동에 참여하고 싶으면 어떤 조직에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시행착오를 통해 우연히 배워야 했다"(54).

 

 

<나 자신과의 대화>는 넬슨 만델라가 직접 쓴 기록들과 녹음된 대화,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의 속편으로 쓴 미완성 원고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만델라는 "거의 언제나 부지런히 기록을 하고 강박적일 정도로 기록을 보존했다"고 하니, 훌륭한 인물들은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또 한 번 확인됩니다.

 

이 책의 '서문'을 쓴 미국의 버락 오바마는 이 책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이 책은 몇십 년에 걸친 그의 일기와 편지, 연설, 인터뷰 등을 통해 그가 살었던 삶을, 감옥에서 시간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된 평범한 일상부터 그가 대통령으로서 내린 결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7). <나 자신과의 대화>는 "넬슨 만델라의 최후의 자서전"이라고 소개되지만, 기록의 단편들이라 통합된 이야기를 읽을 수 없는 것이 아쉬운 점입니다. 사적인 기록들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발췌한 글 모음이기 때문에, 단편적인 글들을 읽으며 넬슨 만델라라는 인물에 대한 이미지를 통합해내야 하고, 이곳에 그 부분이 인용된 '의도'를 알아채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도 합니다. 넬슨 만델라는 전혀 모르는 독자에게보다 넬슨 만델라에 관한 통합된 하나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독자들이 읽으면 더 좋을 책입니다.

 

그러나 <나 자신과의 대화>는 공개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사적인 기록들"이기 때문에 "날 것"으로서의,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넬슨 만델라의 다양한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서양 문물이 아니라, 초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무리 지어 일하고 놀았던 경험, 공동체의 어른들 주위에 모여 그들의 풍부한 지혜와 경험에 귀를 기울이던 관습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치의식이 자라는 과정과 투쟁의 과정, 동지들과의 교류와 다정한 기억들, '비폭력과 폭력에 관한 입장, 현실적인 어려움(심정)은 물론, 그리스 희극을 좋아하고 유머러스한 그의 성격과 그의 이혼에 대한 잘못된 소문까지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정치인으로서, 가족으로서, 아버지로서의 고뇌와 고민도 엿볼 수 있는데, 무엇보다 한 어머니의 아들로서 그가 가졌던 고민를 읽으며, 늘 비판에 노출되어 있지만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희생되어야 하는 지도자의 아픔에 우리가 많이 소홀하다는 반성도 해보았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위해 싸우면서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육십이 다 된 어머니를 돌보고, 어머니에게 꿈같은 집을 지어 드리고, 어머니에게 좋은 음식과 좋은 옷, 자신의 사랑을 모두 드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정치 활동은 그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문득문득 그런 질문을 하게 하는 양심을 지니고 사는 것은 쉽지 않다"(96-97). 

 



 

 

"혁명을 시작하기는 쉽지만 혁명을 지속하기란 무척 어렵다"(147).

 

 

넬슨 만델라는 "사람들이 더는 피부색을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웠습니다(164). 그가 꾼 꿈은 피부색에 상관 없이 누구나 "집에서 편히 쉬며 조용히 책을 읽고, 냄비에서 나오는 달콤한 냄새를 맡고, 가족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고,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수 있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지극히 당연한 권리였는지 모릅니다. 그가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괴로워했던 그 시절의 간절한 소망처럼말입니다.

 

넬슨 만델라의 꿈은 어쩌면 대단할 것 없는 것일지 몰라도 "가장 고귀한 이상을 위해 싸우고 그것을 위해 죽"고자 했습니다.  위대한 꿈을 좋아했던 그를 보며, 환상과 환멸의 과정을 겪으며 한 때 그토록 갈망했던 이상을 모두 잃어버린 채 냉소과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현실과 타협하는 우리의 현실의 돌아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성인"으로 여겨지는 것을 불편해했습니다. "감옥에서 심히 걱정했던 것 하나는 내가 나도 모르게 바깥 세상에 투사한 허상, 내가 성인으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며, '성인은 계속 노력하는 죄인'이라는 세속의 정의를 따르더라도 아니다"(518). 자신을 "노력하는 죄인"으로 여겼던 넬슨 만델라는 우리에게 작은 것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찾아 그 일을 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삶이라는 교훈을 남겨주었습니다. 세상에 내 이름을 내보자 하는 허명을 좇는 것이 아니라,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얼마나 큰 일을 이룰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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