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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일과 영성 - 인간의 일과 하나님의 역사 사이의 줄 잇기
팀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3년 11월
평점 :
"행복해지려면 일이 필요하다. 피조물의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117).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꿈을 꾸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요즘, 살아온 날들을 결산하고 또 살아갈 날들을 헤아리는 기준이 되는 것도 저마다 품고 있는 "꿈"이라 생각됩니다. 나는 어떤 꿈들을 꾸어 왔고, 그 꿈들은 내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왔고, 또 앞으로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고민하다 문득 이런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꿈을 꾼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구나!" 어떤 자리나 지위에 오르고, 무엇을 소유하고, 명예를 얻는 것이 최종 목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꿈을 꾼다는 것은 결국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가를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인에게 직업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 만큼 큰 고민(?)거리이기도 합니다. 과거 사회에 비해 선택의 기회가 더욱 다양하게 주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직업은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하이에나들이 우굴거리는 정글 같은 세상 속에서 내 생존을 지키는 방편이기도 합니다. 돌이켜 보면, 제 인생의 전반전은 "좋은" 직업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내몰린 채 숨가쁘게 달려온 시간들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잘 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잘 살펴볼 겨를도 없이 형편과 상황에 따라 직업을 갖게 된 사람들은 인생의 근본적인 고민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 일을 계속하며 살아야 하나? 이 일이 아니라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이것이 내가 원하던 인생인가?'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문제는 더욱 절실한 고민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고유한 은사와 사명을 주셨다는데, 나의 삶의 자리가 주님이 부르신 자리가 맞는가? 내가 받은 은사를 잘 활용하는 직업은 무엇인가?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려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팀 켈러의 일과 영성>은 이런 고민을 가진 크리스천들이 함께 하나님의 뜻을 찾아나가는 작업 과정입니다. 특별히 일과 이상 사이의 괴리감이나 일과 신앙 사이에 갈등을 겪고 있는 독자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라 생각됩니다. <팀 켈러의 일과 영성>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part 1"(일, 하나님의 황홀한 설계)는 "일"을 바라보는 성경적 관점을 갖게 해주고, "part 2"(일, 끝없이 추락하다)는 삶에서 부딪히는 "일"의 실체를, "part 2"(일과 영성, 복음의 날개를 달다)는 일과 영성을 연결시키는 작업입니다. 이 세 파트는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성경적 답변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36-37).
○ 왜 일하고 싶어 하는가?(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데 일이 꼭 필요한 까닭은 무엇인가?)
○ 왜 그토록 일하기가 어려운가?(어째서 열매가 없고, 무의미하고, 까다롭기 일쑤인가?)
○ 어떻게 하면 복음을 발판으로 난관을 이겨 내고 노동에서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
이 책은 성경적 관점으로 현실의 문제를 풀어내는 팀 켈러 목사님의 탁월함에 또 한 번 감복하게 하는데, 교회 조직에 속한 사람으로서 가장 와닿았던 가르침은 교회 교육에 대한 쓴소리 한마디였습니다. 교회 교육이 교회에서 써먹을 일꾼을 길러내는 데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비판을 듣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야 할 성도들을 복음으로 준비시키고, 연결시키며, 동기를 부여하는 일에 얼마나 게을렀는가 하는 뼈아픈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일을 하도록 설계되었고 일을 통해 존엄하게 되며, 일은 창의성, 특히 문화 창조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이기도 하다"(68).
<팀 켈러의 일과 영성>의 탁월한 점은 성경적 관점에서 "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일에 대한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인간은 왜 그토록 일하고 싶어하는지를 깨닫게 해주며, 나아가 정말 탁월하고 창조적으로 일하고 싶은 열망을 갖게 만들어줍니다. 일(노동)을 "자기완성의 도구이자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보는 관점이 어떻게 "개인을 파괴하고 더 나아가 사회 자체를 붕괴"시키는지 보여주며, "일"을 창조주의 황홀한 섭리로 보도록 인도합니다. 일은 "창조 세계와 청조주를 위해 피조물들을 가꿔가는 즐거운 활동"(142)임을 각인시킵니다.
일을 저주로 생각하며, 일을 하지 않고 놀고 먹는 것이 상팔자라는 관념은 그리스(신화)에서 기원한다는 설명이 재밌습니다. "그리스 사상가들은 통상적인 일을 짐승 수준으로 인간을 전락시키는 행위로 본 반면, 성경은 사람을 짐승과 구별하고 존엄한 위치로 끌어올려 주는 요소로 파악했다"(60). 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정반대입니다. "창세기는 첫 장부터 거듭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려 낸다. (...) 말할 수 없이 거룩한 신의 행위를 그런 식으로 묘사하는 것은 정말 뜻밖이다. 그처럼 태초에 하나님은 일하셨다. 뒤늦게 추가된 필요악이나 인간이 만들어 낸 제도가 아니라 창조주가 밑그림이었다. 주님은 순전한 기쁨을 얻도록 일을 지으셨다"(42).
<팀 켈러의 일과 영성>은 직업적인 성공에서 구원(자존감과 자부심)을 찾으려 하는 현대인들을, "일에 기대에 자신을 입증하고 정체성을 지키라는 압력에서 해방시켜" 주며, 직업 선택과 관련된 지혜(133-135)도 전해줍니다. 성경적인 세계관과 더불어, 세상 속에서 신앙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크리스천들에게 하나님의 "일반 섭리"를 풀어 적용하는 관점도 새롭고 탁월합니다.
<팀 켈러의 일과 영성>이 주는 감동 중 하나는 "능숙한 솜씨는 곧 사랑의 표현"(97)이라는 가르침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딜의 말을 인용하여 일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있음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능숙함"을 첫 손에 꼽습니다(96). 무슨 일을 하든 능숙하게 해내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라는 말이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유익은, 하나님은 다양하고 창의적인 일을 무척 즐기시는 분이시고, 에덴 동산은 일하는 기쁨이 두드러진 곳이며, 크리스천의 노동은 거룩한 창조 사역의 연장이라는 가르침이 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수정해준다는 것입니다.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안에 있으면 어떤 노동도 가치 없는 노동이 없으며, 어떤 일이든 창의적으로 즐겁게 능숙하게 해내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비록 세상의 '일'은 죄로 크게 오염된 상태이지만, 하나님은 만물을 보살피는 일들을 우리에게 나눠 맡기셨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어떤 자리이든지 일터를 향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