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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제주도가 중국땅이 되고 있다는 괴담(?)을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중국인들 덕에 경기가 살았다고 좋아하는 이도 있다지만, 그 관광수입의 대부분은 다시 중국으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중국 자본이 투자를 명목으로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정부는 뭘하고 있는가 하고 물으니, 제주땅을 중국인들에게 팔아넘기는 데 앞장서는 사람이 '제주 시장'이라는 소문이 있답니다. 루머라고 믿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돈벌이를 위해 보물 같은 나라 땅을 팔아먹는 공무원이 있는 나라에 산다는 것은 깊은 절망이니까요.
거대 자본은 국가 간의 경계를 빠르게 허물어뜨리며 돈이 될만한 곳으로 쉴 새 없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눈 감으면 코 베가는 세상이 아니라,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제3에너지를 둘러싸고 국가간에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진다면 어떨까요?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최첨단 우주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놓고 벌이는 국제 첩보전입니다. 에너지 기술과 거대 자본, 그것을 움직이는 기업과 정치인들의 이권 다툼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일까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손지'라는 일본 정계의 거물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정보입니다. 정보는 보물이에요. 보물찾기에 뛰어난 자가 이 세상을 제압할 겁니다"(220).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에서 벌어지는 에너지 전쟁은 다른 측면에서 정보 전쟁이기도 합니다. 제3에너지 전쟁을 놓고 각국의 "우수한 보물찾기(정보) 프로 집단"의 한판 대결이 볼만합니다. 인터넷 연예 통신사로 가장하고 있는 일본의 'AN 통신'의 다카노와 그의 라이벌인 한국의 데이비드 김, 정체를 알 수 없는 AYAKO라는 여인이 서로 다른 상대와 목적을 위해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가운데 국제적인 음모의 실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작품을 드라마로 만든다면, 몇 해 전에 방송된 드라마 "도망자(Plan.B)"와 닮아 있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베트남, 홍콩, 일본, 중국을 넘나드는 스케일, 비밀스러운 과거를 가진 등장인물, 화려한 액션 등이 많은 면에서 그 드라마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데뷔 15주년을 맞은 작가 요시다 슈이치는 이 소설이 "내 문학 인생의 분기점이 될 작품"이라고 자평했답니다. 그의 작품을 모두 챙겨 읽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전작들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는 읽는 재미를 더하고, 그러면서도 등장 인물의 불행에 대한 따스한 시선, 한국에 대한 친근감 등은 여전합니다. 특별히 등장 인물들이 사랑스럽습니다. 24시간 연락이 두절 되면 저절로 폭발하는 장치를 심장에 달고 움직이는 AN 통신의 다카노, 한류 스타를 닮았다는 데이비드 김, 국회의원의 입장에서 일본을 배신할 수 없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 이가라시 등 책을 읽어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들을 응원하게 될 것입니다. 또 국제적인 첩보전에 반드시 등장하는 미모의 여인도 매력적입니다. 가장 비밀스러운 존재이기도 한 "AYAKO"의 대사는 남성들이 주축이 된 전쟁에 여자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를 말해주기도 합니다. "남자란 칠칠맞지 못한 생물이라고 AYAKO는 생각했다. 그래서 강할 때가 아니면, 이기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한다. 약할 때 그리고 지고 있을 때에도 살아 내는 것은 여자뿐이다"(377).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국제 사회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여기에 그려진 전쟁은 '픽션'이 아니라 '팩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재미 있게 읽을 소설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정보 전쟁의 묘미와 더불어 정보(뉴스)의 홍수 시대에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되새겨볼 수 있습니다. "뉴스나 신문에 부모에게 학대받은 아이들에 대한 기사가 너무나 자주 나옵니다. 육아 방기로 굶어 죽은 남자아이, 온몸에 멍이 든 채 죽은 여자이아, 그런 건 더 이상 드물지도 않은 이야깃거리가 디었어요. 그들의 죽음을 전하는 뉴스를 보고 1분이라도, 아니 1초라도 좋아요, 그들의 비통함에 바싹 다가가서 묵념해 주는 사람이 이 나라에 하나라도 있습니까? 뉴스는 배설해 놓을 뿐이에요.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들 그들을 잊어버려요"(498). 그리고 또 하나, 세상은 정보나 자금이나 권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유혹과 갈등과 불행 속에서도 사람들의 선한 의지 속에서만 살아갈 만한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태양, 자본이, 권력이, 아무리 짓밟고 빼앗으려고 해도 절대 짓밟을 수 없는 것이 태양인 것처럼, 그 태양이 사람들의 선한 의지를 비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자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