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샤니 보얀주 지음, 김명신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아닌 누군가의 삶을 생각해보다.

 

 

요즘 소설 같은 문학 작품이 아니면 타인의 삶을 정밀하게 관찰하며 관심을 가져볼 기회가 없습니다. 단짝 친구와 딱 붙어다니며 서로가 한 몸인 것처럼 서로의 모든 것을 열심히 공유하려 열정이 낯설어질 만큼, 타인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눈을 뜨면서부터 치열하게 하루를 살고 다시 눈을 감을 때까지 온통 '나', '나', '나' 하며 '나'의 문제에 골몰하고 있으니까요. 타인의 문제, 타인의 고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온 마음을 쏟아줄 여유가 점점 사라지는 듯합니다.

 

<영원의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의 경험을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을 '극동'이라고 한다면 대륙의 저 반대편 끝에 있는 '극서'의 땅에, 영토가 남한의 9분의 2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스라엘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1919년이냐 1948년이나 논쟁이 일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의 건국일은 1948년입니다. 같은 해 5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건국을 선포했습니다.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땅 한 가운데에 유일하게 유일신을 섬기는 한 민족이 나라를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로가 그 한 뙈기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전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국민들은 남자나 여자나 할 것 같이 만 18세가 되면 의무적으로 군에 입대해야 합니다.

 

<영원의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자란 20대 여성 작가의 책입니다. 이 책은 작가의, 2년 간의 군복무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쓰여졌습니다. 서로 친구이기도 한 '야엘', '아비샥', '레아'라는 세 이스라엘 소녀의 군입대 전, 군입대 후, 그리고 군제대 후의 이야기가 교차적으로 서술되며,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의 실상과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10대들의 특별한(?) 일상이 충격적으로 폭노됩니다. 

 

대한민국에서 10대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나이다", "큰 꿈을 꾸어라"일 것입니다. 그러나 10대 친구들에게 그 말처럼 공허한 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기회가 달라지고, 천편일률적인 교육 환경에 던져지고,성적에 의해 재단되는 10대들에게 이 사회는 가능성의 사회, 열린 사회가 아니라, 이미 굳게 닫힌 사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우리 사회 10대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라면, 이스라엘의 것은 좀 더 극단적입니다. 미사일이 슉슉 날아오는 소리를 들으며 친구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그 미사일이 어디쯤 떨어질지 알아맞히는 데 이력이 나고, 타고 가던 버스에 폭탄이 터질까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터졌는데 죽지 않을까봐 극도로 두려워하고, 테러로 목이 잘리는 동료를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전쟁터의 한복판에서 일상을 꾸려 갑니다. 어떤 10대는 전쟁의 광기에 휘둘리며 죄의식에 시달리기도 하고, 어떤 10대는 지루함과 질식할 것 같은 현실 사이에서 심각한 무력감에 빠져 들기도 합니다. 작가는 이스라엘의 이러한 현실을 지독한 농담처럼 조롱하기도 하고, 쓰라린 상처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며, 대부분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 적요한 활자들 사이로 부당한 전쟁과 조국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역겨움이 토해져 나오는 듯합니다.

 

<영원의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어떤 십대들의 성장소설로만 읽히지 않는 것은 그들의 경험이 너무 독특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삶에 무심한 나 스스로 어떤 죄책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전쟁터에 내몰린 10대들이 있고, 불타는 친구를 껴안고 같이 불에 타죽는 아동들이 있고, 피지도 못한 꿈을 거세 당하는 10대들이 있는데, 우리는 내가 아닌 누군가를 생각하는 일에 점점 더 서툴러지고, 다른 사람의 슬픔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한 줄의 기사로 정리되며 인생을 마감하는 그들도 직업을 가지고 있고, 은행 대출금과 아내를 가지고 있는 아버지였으며, 아들이었으며, 딸이었다는 사실을 상상해내지 못하는 것이 참 쓸쓸했습니다. 나와는 너무 동떨어진 삶이라 한 번도 상상해볼 수 없었던 타인의 삶,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한 사람을 이 책은,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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