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호킹
키티 퍼거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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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스티븐 호킹. 물리학자이자 우주론자이고, 약간은 몽상가지요. 나는 움직일 수는 없어도 컴퓨터를 통해 말을 할 수 있고, 내 마음속에서 나는 자유롭습니다"(433).

 

 

올해 10월, 물리학계와 지구촌은 '힉스 입자'로 뜨거웠습니다. 거의 반 세기 동안 존재를 증명하기 어려웠던 '힉스 입자'의 존재가 확인되었다는 발표가 있었고, 이 힉스 입자를 예측한 두 명의 과학자에게 노벨물리학상이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와 연구팀은 49년 전 힉스 입자의 존재를 예견했지만, 신의 입지라 불리는 이 힉스 입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 중에서 유일하게 관측되지 않은 가상의 존재였습니다. 137억년 전 우주대폭발(빅뱅)이 일어난 직후, 1000만 분의 1초 동안 존재했다는 '힉스 입자'는 우주 탄생의 비밀을 풀어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넘어서는 과하계의 혁명적인 연구 성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힉스 입자의 존재가 확인되었다는 발표가 있자 무신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열렬히 환호했습니다. 쏟아지는 덧글들을 보면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주장하는 기독교는 이제 끝장이라고 하는 조롱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힉스 입자의 존재를 예측한 피터 힉스 교수와 스티븐 호킹이 내기를 걸었다는 것입니다. 전세계의 영웅적인 물리학자인 호킹은 "힉스 입자가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쪽에 내기를 걸었다"고 합니다(161).

 

우리에게 "알려진" 스티븐 호킹은'근육위측가쪽경화증'으로 전신이 마비되는 장애와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세계적인 물리학자으로 우뚝 선 영웅적인 인물이면서, 무신론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위대한 물리학자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증명'해 냈다고 믿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스티븐 호킹>을 읽으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우리가 물리학(우주학)에 대해, 그리고 호킹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호킹을 인용해" 자기 주장을 펴는 사람들 중에 "호킹의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이 아주 많다"고 놀라움을 표시하는데(429), 저도 그 많은 사람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그래도 변명을 하자면 과학적 배경지식 없이 호킹의 책을 제대로 읽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스티븐 호킹>은 제가 그에 대해 처음 제대로 읽은 책입니다. 스티븐 호킹의 생애를 다루면서 그가 이룬 물리학적 업적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정신을 집중하며 읽어야 했고 어떤 부분은 완전히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물리학(우주학)에 대해, 물리학의 과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전개되고, 학계에서 논의되고 핫 이슈는 무엇이며, 해결되지 않은 과제, 풀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었고,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느낀 책이었습니다.

 

물리학, 특히 우주학은 종교(기독교)와 사이가 나빠 보입니다. 사람들은 물리학이 발달할수록 '신'은 우주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대 물리학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시 세계와 넓은 우주에서 더 많은 것을 발견하수록 우리는 뭔가 신중한 계획과 믿기 힘든 미세 조정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존재하는 우리가 절대로 나타날 수 없었을 거라는 느낌이 강해"(176)지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비밀이 풀릴수록 "생명의 발달을 가능하게 하도록 미세 조종돼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물리학자들은 "모든 것이 처음 만들어질 때, 누군가 혹은 무엇이 우리를 염두에 두고 그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믿고, 어떤 물리학자들은 "우연한 행운에 불과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스티븐 호킹은 후자의 믿음을 택했을 뿐입니다. "어쩌면 과학은 우리 우주와 우리가 존재할 수 있도록 자연의 법칙들을 정한 뭔가 더 높은 권능자가 존재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행운들이 잇따라 일어나도록 조정한 위대한 설계자가 있을까요? 제 생각은 꼭 그렇지 않다는 쪽입니다(438).

 

<스티븐 호킹>을 쓴 저자 키티 퍼거슨은 "20년 넘게 물리학과 우주론에 대한 대중적인 글을 쓰고 과학 강연을 해왔다"고 하는데, 스티븐 호킹을 특별히 영웅적으로 미화하지 않으면서 아주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호킹의 생애와 과학에 넘치는 역설을 자세히 보여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물리학의 본질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설명합니다. "놀라운 가설과 이론을 내놓지만, '궁극적인 답'을 제시한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과학은 '답'을 제시하고 나서 그 '답'을 혹독하게 비판하면서 틀렸다고 증명함으로써 발전한다"(219). 호킹의 연구 과정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호킹은) "우주는 특이점에서 시작한게 틀림없다고 증명했다. 그러고 나서는 무경계 가설로 특이점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사이에 블랙혹은 절대로 작아질 수 없다고 주장한 뒤에 다시 작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219).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며, "그래서 신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그의 말을 인용하거나 잘못 인용하는 사례가 많다. (...) 호킹이 한 말(혹은 다른 과학자들이 한 말)을 자신의 믿음이나 불신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그 말이 뒤집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220)고 경고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항상 벼랑 끝에서 살아왔는데, 결국에는 벼랑 끝에 뿌리를 내렸어요"(호킹의 첫 번째 아내 제인의 말, 242). 의학적으로 잘해야 2년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통보를 받은 청년이, 전신마비와 죽음의 위협 속에 비록 위태위태하지만 생명을 이어오며 학문에 대한 열정과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것은 인류가 간직해야 할 감동적인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런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가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도 매력적입니다. 

 

그런데 <스티븐 호킹>이 매우 정직한 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호킹의 업적만으로는 큰 명성이나 수백만 부의 책 판매라는 결과를 낳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다"(246)라는 언급 때문입니다. "그가 자신의 불쌍한 상황을 이용했고 훨체어를 타고 명성과 부를 거머쥐었다는 말이 옳을까? 진실을 말한다면, 비록 호킹은 그러지 않길 바랐겠지만, 물리학계 밖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과학적 업적보다는 불굴의 정신을 더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246). <위대한 설계>에서 스티븐 호킹이 "그 모든 수수께끼들에 실제로 답을 제시하려는 시도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427)는 평가도 합니다. 스티븐 호킹이 답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426), 완전한 답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힉스 입자'도 그렇지만, 물리학자들과의 다른 내기에서도 호킹이 계속 졌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그의 말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하고 절대시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스티븐 호킹보다 덜 유명하지만 그보다 뛰어난 물리학자들이 많다는 것도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호킹의 어머니가 한 말이 재밌습니다. "스티븐이 말하는 것을 전부 다 복음 같은 진리로 여겨서는 안 돼요. 걔는 탐구자이고, 뭔가를 찾고 있어요. 그리고 가끔 엉터리 같은 소리도 하지만, 뭐 우리는 그러지 않나요?"(444)

 

<스티븐 호킹>은 완전히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책이지만 어려운 중에도 나름 재미가 있습니다. 그를 지지하며 신뢰하는 사람들,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알려진" 것과 다르게 우리가 그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아주 많다'는 사실이 흥미로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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