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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관상 1~2 세트 - 전2권 - 관상의 神 ㅣ 역학 시리즈
백금남 지음 / 도서출판 책방 / 2013년 9월
평점 :
"관상으로 왕의 운명을 보는 자의 고독한 싸움"
(표지 中에서)
역사소설은 역사 자체가 스포일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그 이야기의 '결국'을 미리 알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역사소설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화석처럼 굳어진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생기를 불어넣기 때문일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진실성을 담보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된 대하드라마를 통해 역사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 상황과 변수와 매개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것인지 그 '긴장'을 읽는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관상>은 위태로운 왕권을 놓고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대립을 중심으로 한 관상쟁이의 생과 갈등을 다룬 작품입니다. 최고의 실력을 가진 관상쟁이 김내경은 그 유명세 덕분에 원치 않는 정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김종서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한을 품었으나, 그 김종서 장군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수양의 얼굴에 '조선이 들었음'을 봅니다. 수양대군은 관상쟁이에게 반역의 기미를 읽히지 않기 위해 가짜 수양까지 내세웁니다. 관상쟁이는 세월이 흐르다 보면 본래 상이란 변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얼굴에 "주름 하나"로 자신이 속았음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폐륜의 난을 막기 위해 비록 원수지만 김종서를 도와 수양대군의 상을 바꾸려는 위험한 시도를 합니다.
오늘날에도 대통령 선거 때마다 관상과 사주 보는 이를 통해 차기 대통령이 점쳐지기도 하고,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을 선발하며 관상가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관상이 그토록 믿을 만한 것이라면, 운명은 정해진 것이며, 우리는 그 정해진 운명을 얼굴에 드러내며 살고 있는 셈입니다. <관상>은 임금과 관상쟁이의 대화를 통해 관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네게 관상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임금이 문득 물었다.
"한 길 사람 속을 온전히 이해해보겠다는 열망이옵니다. 경험과 통계를 바탕으로 한 과학이라고도 하나, 궁극의 목표는 피흉추길의 방도를 강구하는 것이옵니다."
"나는, 사주와 점성술을 크게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다. 네가 사람의 얼굴로 지나온 길을 얼추 짐작할지 몰라도 그자의 앞날까지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지? 그것은 하늘만이 아는 것이 아니더냐?"
내경이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읍하며 아뢰었다.
"만물의 상은 본시 타고나는 것이옵니다. 그렇기에 그에 맞는 형상이 있는 것이옵니다. 그 형상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인간의 삶이옵니다. 몸놀림과 찰색만으로도 그 사람의 상태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 관상이옵니다. 모두 알 수는 없사오나 미리 대비하고 경계하는 자세를 일깨워줄 수는 있사옵니다."
(2권, 166).
피흉추길이란 흉한 일을 피하고 길한 일로 나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천하의 관상쟁이 김내경은 수양의 얼굴에 들어 있는 조선의 운명을 '미리' 알았지만, 한 사람의 관상을 바꾸는 시도만으로는 결국 역사를 바꿔놓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운명의 힘이 그만큼 세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고, 역사는 한 사람(과 그의 관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군상들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역동성에 의해 완성된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릴 적 어른들은 "생긴대로 산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러나 생긴대로 살도록 정해졌다면 생김새를 바꾸면 운명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는 말도 될 것입니다. 누구나 관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한 사람의 '인상'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을 알아가고 교제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얼굴'에 참 많은 정보를 노출한 채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관상>을 읽고 나니, 내 얼굴이 생김새가 다른 사람이 볼 때, 어떤 이미지로 보여지는 궁금했습니다. 눈빛이나 얼굴 표정에 이전보다 더 신경이 쓰이기도 합니다. (책의 띠지에 보면) 이 책은 "누구라도 읽고 나면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되는 책"이라 하였는데, 저에게 적중한 셈입니다. 영화는 아직 보지 못해 잘 모르겠지만, 재밌게 술술 잘 읽히는 책입니다. 그런데 결말이 싱겁다고나 할까, 원수인 김종서의 편에 서서 역모를 막아보겠다는 관상쟁이의 시도가 다소 어설프다고나 할까, 분명 재밌게 읽었는데 뭔가 심심한 뒷맛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