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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All 예수로 충분합니다
튤리안 차비진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예수님으로 충분합니다"(Jesus + Nothing = Everything)
매일 아침 초를 다투며 일터로 달려가다가 문득 '내가 지금 어디로,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달려가고 있지?' 하는 의문이 불현듯 찾아든 적이 있다면, 밤에 잠자리에 들 때마다 한 번씩 '이게 아닌데' 하는 불안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인생에 무엇인가 더 있을 것 같고, 무엇인가 더 해야 할 것 같은 초조감에 시달리고 있다면, 이 모든 걸 느끼는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Jesus All>(예수로 충분합니다)은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외손자이면서, 미국 코럴릿지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인 튤리안 차비진 목사의 신앙고백과 같은 책이며, 동시에 복음의 정수를 맛보게 해주는 책입니다. 하나님을 피해 달아났으나 "지칠 줄 모르는" 하나님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튤리안 차비진 목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항복하여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차세대 목회자'로 주목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중 "살 소망이 바닥"나는 경험을 합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 견디기 힘들 만큼 거센 반대의 목소리, 그 고통의 한복판에서 그는 골로새서를 통해 "부활"이라고 할 만큼 강력한 영적 진리를 깨달았고, 그것이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튤리안 차비진 목사님을 다시 일으켜 세웠던 영적 진리는 바로 "예수"(복음)로 충분하다는 한 가지 사실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자신이 그동안 "인정 중독"에 시달려 왔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 속에서 자존감과 삶의 의미를 찾으며, 남의 눈에 들려고 애를 써왔던 자신의 모습이 '복음'과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이었는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도 오랫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 속에서 자존감과 삶의 의미를 찾아 왔다. 이제 하나님은 복음을 새롭게 밝혀 주심으로 나를 그 노예 상태에서 구해 내는 작업을 시작하셨다"(34).
<Jesus All>은 우리 안에 "예수님이 아닌 다른 무엇에서 마음 깊은 곳의 갈망을 채우려는" 못된 버릇이 있음을 밝혀냅니다(51). "예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소리에 설득될 때, 우리는 자기중심적 신앙에 갇히고, 예수에 자꾸만 무엇인가를 더하는 갖가지 우상숭배의 길에 빠져들게 됩니다. <Jesus All>이 포착해낸 현대인의 여러 가지 우상숭배 중에 가장 심각하고 충격적이었던 것은 "율법주의"의 정체였습니다. 율법주의는 교회 안에 성행하는 우상숭배인데, 이것은 다름 이름으로 '성과주의', '도덕주의'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차비진 목사님은 이것이 복음의 최대 걸림돌이요, 최대 적이라고 꼬집습니다. 율법주의, 또는 성과주의는 "예수님이 이미 해주신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더 중요해질 때 발생"하는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이미 이루어 주신 일에서 쉼을 얻지 못하고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서서 성과를 내려고 애쓰"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얼마나 심각하게 복음을 훼손하고 교회 안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차비진 목사님의 한마디가 벼락 같이 마음에 울렸습니다. "수많은 설교자가 '복음'(예수님이 해 주신 일)은 전하지 않고 입만 열면 '율법'(우리가 해야 할 일) 타령이다"(61).
차비진 목사님은 "예수님으로 충분하다"는 영적인 깨달음을 이렇게 도식화합니다. "Jesus + Notning = Everything!" 이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 그는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내게 부족한 품성과 태도를 스스로 채워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109)고 고백합니다. 어쩌면 차비진 목사님이 "예수님으로 충분하다"는 이 진리에서 이토록 강렬하고 놀라운 은혜를 경험한 것은 그가 믿는 자의 집안(그것도 너무도 유명한)에서 태어난 모태신앙인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둘려 싸여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강요받아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만으로 충분하다는 진리 안에서 그토록 강렬한 은혜와 완전한 자유를 누구보다 깊이 맛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Jesus All> 다소 지루하게 생각될 정도로 "예수로 충분하다"는 한 가지 진리를 반복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절박하게 우리가 붙들어야 할 복음의 진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Jesus All>은 날마다 "복음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받은 것을 더 깊이 깨달으라고 요청합니다. 자신과 자신의 성과에서 눈을 떼고 예수님과 예수님이 우리에게 해주신 일을 바라볼 때, 참된 신앙성장과 쉼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복음이 현재적 능력이라고 선포합니다!
"진짜 질문은 우리의 노력을 어디에 집중시키느냐다. 성과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가? 아니면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성과 안에서 쉬려고 애쓰는가?"(201)
<Jesus All>을 읽으며 내 안에 자리한 불안의 정체와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으로 충분하다는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헛된 것을 구해왔던 많은 밤들을 회개했습니다. "예수님으로 충분하다"는 이 한 문장 안에 담긴 엄청난 은혜와 자유를 더 깊이, 더 깊이 누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