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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과의 대화 - 세계 정상의 조직에서 코리안 스타일로 일한다는 것에 대하여 ㅣ 아시아의 거인들 2
톰 플레이트 지음, 이은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대한민국의 어린이들에게 닮고 싶은 위인,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대답을 많이 합니다. 반기문 사무총장님처럼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세계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자리에 오른 반기문 총장님에게 열광하며, 한국인의 자부심을 드높인 성공 신화를 조명합니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반기문 총장님에 관해 출판된 책들 대부분은 자기계발서입니다. '반기문 사무총장님 되기'가 목표인 것입니다.
그런데 <반기문과의 대화>를 읽으며 제일 많이 들었던 생각은 우리가 열광하는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자리가 사실은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유엔 사무총장은 세속적 교황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유엔 회원국 수를 감안하면 200여 명의 보스가 있는 셈"(23)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유엔의 실력자로서 반기문 사무총장이 국제사회에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유엔 사무총장의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낙관적이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안정보장이사회의 "5개의 상임이사국은 반기문의 직속상관"이나 다름 없습니다. "안전보장이사회에 제기된 문제에 대하여 5개 상임이사국이 전부 동의하지 않으면 유엔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5개 상임이사국은 유엔 전체를 압박할 힘을 가지고 있으며, 5개국 중 어느 국가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유엔의 숨통을 조일 수 있습니다. 또 유엔은 "회원국들의 지지가 없으면 아무리 슈퍼맨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가장 큰 재정 후원국인 미국은 유엔의 "열렬한 비판자"이기도 하며, 국제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가운데 유엔의 간섭(?)을 달가워하는 국가는 없습니다. "악랄하고 잔인한 독재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인권 침해 행위에 대해 엄중히 질책하고, 이제 그만 총을 내려놓고 국민들을 존중하라고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건 비웃음뿐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요구였지만, 완고하고 잔인한 독재자들에게는 그의 말이 무장을 완전히 해제하라는 바보 같은 소리로 들렸다"(120).
그래서 유엔 사무총장을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직업"이라고 합니다. "유엔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 침묵해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것이 유엔 사무총장의 현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반기문의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입니다. 그런데도 반기문 사무총장을 지켜보는 각국의 눈과 언론은 그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합니다. 모든 비판은 온전히 유엔 사무총장의 몫이다. "책임은 항상 제게 돌아옵니다. 그리고 저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유엔을 비판할 때 도마에 오르는 건 늘 사무총장입니다. 그럴 때 저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습니다"(171-172).
<반기문과의 대화>는 유엔 사무총장의 현실과 좌절에 맞서는 사무총장의 철학과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그의 일이 "사명감이 필요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더 평화롭고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전히 유엔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소한 시도라도 해보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꿈꿔왔던 일보다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기운과 역량을 쏟"고 있습니다. 유엔을 섬기며 세계시민의식을 호소하는 반기문 사무총장의 철학은 솔선수범입니다. 그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실적으로 평가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반기문과의 대화>를 읽으며 반기문 사무총장님을 더 열심히 응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책임과 사명, 그리고 현실과 좌절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며, 반기문 사무총장의 영어 발음을 운운하고 있었던 우리의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반기문과의 대화>는 "아시아의 거인들"이라는 주제로 시리즈는 집필하고 있는 톰 플레이트가 반기문 사무총장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엄격해보이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다소 가볍게 보이는 면도 없지 않으나 편안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장란스러운 듯한 짖꿎은 질문 속에 담긴 날카로움이 유엔 사무총장이 처한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는 효과를 냅니다. "한국인"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눈에 보이는 성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반기문 사무총장님이 어떤 싸움,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 누구보다 우리가 먼저 알아주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