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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100점의 숨겨진 이야기 - 다섯 살짜리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현대미술
수지 하지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다섯 살짜리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현대미술(?)
요즘 "댄싱 9"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임을 표방하는 "댄싱 9"은 두 팀으로 나눠 대결을 펼치고 춤의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9인의 심판관이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승자를 가립니다. 그런데 심판관들의 점수가 흥미롭습니다. (거의 매번) 최저점과 최고점의 차이가 30점 이상이 납니다. 같은 무대를 본 전문가들의 평가가 30점 이상의 점수 차이가 생긴다는 것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전문가 '취향'의 문제일까요?
그런데 현대미술에도 이렇게 엇갈린 평가가 존재합니다. 아케데믹한 미술에 대한 반항, 급속도로 발전한 기술, 세계대전 같은 사건들의 충격 속에 나타나기 시작한 현대미술의 저항적(?) 작품들이 "다섯 살 짜리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라는 조롱을 받기도 합니다. <현대미술 100점의 숨겨진 이야기>는 아이들 장난 같은 작품이라고 평단과 대중의 강한 반감을 샀던 현대미술 100점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왜 이 작품들이 "다섯 살짜리 아이는 만들 수 없는" 작품인지 이유를 설명합니다.
<현대미술 100점의 숨겨진 이야기>는 "수많은 평론가들이 기교의 부재를 예술적 기량과 정교함의 부재로 간주"하고 있다고 일침합니다. 오랫동안 "미술가의 기교에 감탄하기만" 했던 눈으로는 잘 읽어낼 수 없는 현대 미술가의 대담함, 사회 탐구, 내재적 갈등 등을 읽어냅니다.

작품과 장난의 경계는 무엇일까요? 테크닉? 규칙? 진지함? 의미? 위의 작품은 '마크 로스코'라는 미술가의 작품(무제)입니다. 이 작품이 단순한 색칠 놀이가 아니라 미술사적 맥락 속에서 영감 가득한 작품으로 평가받게 해주는 경계(?)는 어디일까요? 이 책의 저자는 이 작품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로스코의 구성과 엷은 색채는 강력하고, 심지어 영적인 감정을 유발하기 위해 신중히 계획된 것이다"(81).
단순히 마음에 드는 색을 아무렇게나 칠한 것이 아니라, "계획"된 작품이라는 것이 그 경계라는 말일까요? "로스코는 평온하게 하거나 감정을 교양시키거나 기운을 북돋는 등의 다양한 분위기의 효과를 불러오기 위해 광범위한 색과 색조를 연구했다"고 합니다.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정말 다섯 살 짜리도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는 소리를 듣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색감이 끌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작업 No.227:꺼졌다 켜졌다 하는 전등"입니다. 2001년 터너 상을 수상한 설치작품입니다. 빈방에서 매초 전등이 켜졌다 꺼지는 것이 작품의 컨셉입니다. 이 황당한(?) 설치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가 어마어마합니다. 이 작품은 "삶에 대한 보편적인 은유, 즉 탄생(켜진 불)과 죽음(꺼진 불)으로 간주될 수 있다. (...) 전시장을 실제 작품으로 만든 "작업 No.227:꺼졌다 켜졌다 하는 전등"은 미니멀리즘과 개념주의를 재치있게 비틀고 현대미술의 오만함을 비판한다. 우쭐댈 권리를 제거하기 위해 크리드는 작품을 숫자로 분류하고 거의 상업적인 가치가 없는 재료를 활용한다. 이를 통해 의도적으로 우리의 낭비적인 문화에 도전한다"(95).
미술가의 "의도"를 눈치챌을 관람자가 몇이나 되었을까 궁금합니다. 이 작품의 주인 마틴 크리드는 "무엇이 작품인지 결정하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관람자"라고 하는데 현대미술의 이와 같이 "우스꽝스럽고 때로 불편한 방식"의 유머를 눈치채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현대미술 100점의 숨겨진 이야기>가 뽑은 100점의 작품 중 가장 장난 같으면서 도발적이면서 난해한 작품으로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을 꼽고 싶다. 저자는 마르셀 뒤샹이 뉴욕의 철물점에서 구입했다는 이 평범한 소변기를 전시함으로 "아름다움, 독창성, 취향 같은 전통개념에 도전했다"고 해석한다. 미국독립미술가협회는 "표절과 상스러움을 이유로" 이 작품을 거절했다는데, 저자는 이 작품에서 이러한 질문들을 읽어낸다. "사물을 미술작품으로 정의하는 특징과 조건은 무엇인가? 미술은 주로 눈(정신이 아니라)에 호소해야 하는가, 재료의 변화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기성품도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103)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가"의 작품이니 할 말은 없지만, 미술가의 이러한 도발이 "아이들의 생각이 미칠 수 없는 곳에 있다"는 판단 하에 "그 자체로 미술의 혁신을 이뤘다"는 작가의 해석이 그리 마음에 와닿지는 않습니다.

"미술은 항상 당대의 의미를 반영한다"(7)
루치오 폰타나의 "공간개념 '기다림'"이라는 작품입니다. 표면을 베는 기법을 처음으로 사용했다는데, "캔버스를 단 한 번 단호하게 베는 행위"를 처음 시도했다는데 이 작품의 의의가 있어 보입니다. 폰타나는 "공간주의는 과학기술로 모든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에 미술가들도 비슷한 에너지와 역동성을 창조해야 한다는 원칙에 토대를 두었다"(114)고 합니다. "베는 행위는 현실세계를 재현 혹은 장식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초월하고 무한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고자" 함이라고 합니다.
현대미술이 사물을 "진짜"처럼 그리는 것을 중단한 것은 사진의 발명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는 듯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서 자유로워진 미술가들의 작품은 훨씬 더 다양해지고 기법도 다채로워졌습니다. 어떤 현대미술은 "다섯 살짜리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라는 조롱을 받았지만, 오히려 미술가들은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으로 고고한(?) 미술계를 조롱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입니다. 관람자의 눈에 장난 같아 보이는 작품도 신중하고 철저하게 "계획"된 미술가의 의도(!)를 읽어내는 순간 독창적인 예술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미술은 오히려 더욱 난해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현대미술 100점의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서 한발짝 다가설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사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해석이 더 그럴 듯하게 들리는 작품들이 많지만, 현대미술가들의 즐거운 농담 같은 작품들 속에 그렇게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재밌는 관람이었습니다! 이 책이 호언장담을 한 번 믿어보시면 어떨런지요. "이 책을 통해 당신은 현대미술이 과거 수백 년의 사실적인 미술과 어떻게 다른지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다가올 몇 년간 당신의 미술관 방문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완전히 변화시킬 것이다"(앞 날개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