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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치료 - 한 번도 소리 내어 울지 못한 그대에게
존 폭스 지음, 최소영 외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3년 6월
평점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의 풀꽃이라는 시입니다. '학교 2013'라는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이 강제 전학을 가야 하는 친구에게 이별의 말 대신, 위로의 말 대신, 격려의 말 대신 이 시를 들려주었습니다. 조금 '부족하다'는 이유로, 부적응자로 낙인찍힌 친구에게 들려준 이 시가 그 어떤 명대사보다 더 마음을 울렸습니다. 백마디 말보다 더 진실했고, 절실했으며, 드라마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너무도 선명하게 와닿았습니다. 제게는 시가 가진 치료의 힘을 경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미술치료, 독서치료, 음악치료, 웃음치료, 연극치료 등 다양한 심리치료가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현대인들이 상처난 마음, 깨어진 관계를 안고 살아간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詩 치료>는 제목 그대로 시를 읽고, 짓고, 나눔으로써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누군가와 시를 읽고 쓰며 서로 소통하고, 알므다운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시치료다"(10). 이 책은 실제로 저자 존 폭스가 "시치료 워크숍을 진행한 내용을 중심으로 실제 사례를 엮은 치유 에세이"입니다. 워크숍에 참가한 사람들이 시를 통해 내면의 고통을 쏟아내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그것을 나누는 과정에서 어떻게 치유를 경험했는지를 읽을 수 있으며, 또 독자들도 직접 그들과 함께 시를 써보도록 돕고 있습니다.

시 한 줄 쓴다고 뭐가 달라지나
역시 "학교 2013"이라는 드라마에서 한 문제 학생이 쓴 시의 첫줄입니다. 선생님은 시를 쓰기 어려워 하는 학생들에게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말, 마음에 떠오르는 말을 그대로 한 줄 적어보라고 요청합니다. 선생의 요구에 '오정호'라는 학생이 마지 못해 제출한 시가 이것입니다. 그는 "시 한 줄 쓴다고 뭐가 달라지나"라고 반항적인 마음을 표현했지만, 시청자들은 이 한 줄의 시에서 이미 그 학생 안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시詩 치료>는 "시는 그저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은 그저 진실을 "소리 내어" 말하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5). "시의 본진적인 소리, 은유, 이미지, 감정, 리듬 등이 치료제로 작용해 신체적, 정신적, 영적 시스템을 강하게 만든다"(23). 가끔 마음이 울적하거나 이유 없이 가라 앉는다고 느낄 때, 무엇인가 끄적이고 싶은 욕구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뭔가를 적어내려가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비워지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시詩 치료>를 읽다 보니 시를 쓴다는 것은 마음을 토해놓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것을 시의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이 상처가 주는 고통에 함몰되지 않고, 마음에 공명을 주는 "소리"로 바꾸어 내면서 그것을 극복할 힘을 주는 듯합니다. 혼자만 느끼는 내면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해내기 위해 시의 언어를 찾는 그 과정이 상처를 객관해주고, 두려움 없이 마주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들어지 않나 싶습니다. "어떤 방식의 치료든 당신의 체질에 맞아야 하고, 종이 위에 당신의 경험을 창조적으로 표현하여 구체화하며 거기에 귀를 기울여 줄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면 오랜 상처를 풀어낼 수 있다. 과거의 파괴적 행위나 경험을 오직 과거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다"(68).
<시詩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하게 시를 쓰는 것만큼이나 진실하게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과정입니다. <시詩 치료>에서 만난 시 중에 조디라는 한 남자가 쓴 "당신의 눈물을 닦아내지 마세요"라는 시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당신의 눈물을 닦아내지 마세요.
볼을 타고 흘러내리도록 내버려 두세요.
얼굴에 자국을 남기도록 내버려 두세요.
치유의 눈물이 흐르도록 말이죠.
...
조심스러워 하지 마세요.
억제하지 마세요.
에의 바르지도, 공손하지도 마세요.
당신의 눈물을 닦아내지 마세요.
입술 위 눈물의 맛을 보세요.
그러면 당신의 오늘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시를 읽으며 슬퍼하지 말도록 억압받아 온 한 사람의 내면과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해받을 수 없고, 그래서 스스로도 억제할 수밖에 없었던 내면의 슬픔이 견고한 둑을 깨뜨리고 터져나오는 순간을 마주했습니다. 조디는 "울음으로써 치료의 강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생각한다"(80)고 고백합니다. 눈물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조디는 이렇게 시를 통해 억압된 감정을 분출할 수 있었고, 그의 시가 주는 감동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으며 그들은 함께 시를 읽고 함께 눈물을 흘림으로써 치료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시에 감동하거나 타인의 시에 감동하는 바로 그 순간이 치료제로서 시의 본질이다"(24).
<시詩 치료>는 다양한 각도와 관계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것을 시의 언어로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는지 고민하는 창조적 과정을 통해 이해와 수용과 용서와 성찰이 가능하도록 합니다. 꼭 치료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해도 시를 쓰는 일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우리의 경험과 상상을 함께 엮어 아름다운 시의 언어로 표현해내는 훈련 교재로도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