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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 ㅣ 세계문학 마음바다 2
조지 오웰 지음, 안경환 옮김 / 홍익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배반당한 혁명"(33)
매너농장의 주인 존스 씨가 날마다 술에 취해 농장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을 때, 늙은 수퇘지 메이저는 동물들을 모아놓고 간밤에 꾼 이상한 꿈과 자신이 깨달은 세상살이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메어저가 깨달은 동물들 삶의 본질은 "비참한 노예의 삶"이라는 것이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할 정도의 먹이를 얻어먹는 대신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여 죽도록 일하라고 강요받고 있소. 그리고 쓸모없게 되는 순간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오. 영국 땅의 동물치고 늘그막에나마 한가하게 여생을 누리는 동물은 단 하나도 없소"(23). 메어지는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이 "인간"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힘들게 노동하여 만든 생산물을 모두 인간에게 약탈당하기 때문이오"(24). 메이저는 이제 "스스로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유일한 생물", 동물들의 노동력으로 살아가면서 모든 동물의 주인 노릇을 하는 인간을 타도하는 것이 동물들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동물들은 흥분하여 인간을 몰아내고 모든 동물이 평등하게 사는 농장을 건설하는 꿈을 꾼다.
그런데 반란은 예상치 못한 시기에 느닷없이 일어났고, 동물들은 어떨결에 반란에 성공한다. 그리고 반란을 주도한 두 돼지가 농장의 새 지도자로 공인된다. 동물들은 유토피아의 꿈을 꾼다. "동물들이 기아와 채찍에서 해방되어 모두가 평등하고, 각자의 능력에 맞게 일하고, 메이저의 연설이 있던 날 밤 자신이 어미 잃은 오리새끼들의 앞다리를 감싸주었던 것처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보호해주는, 그런 동물들이 사회"(112)가 건설되는 미래를 꿈꾸었다. 그러나 <동물농장>은 "순수하고 절실하게 필요했던 혁명이 배반의 독재로 전락"하는 과정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오웰은 그의 에세이에서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작가의 문학적 소재는 그가 살았던 시대가 결정한다. 적어도 우리 시대처럼 소란스러운 혁명의 시대에는 그렇다"(204). 오웰이 <동물농장>의 소재로 삼은 시대상은 러시아 혁명이었다. 오웰은 독자들이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주요 동물들이 어떤 역사적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도록 했다. 농장의 무능력한 주인 존슨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를, 동물들에게 현실의 끔찍함과 이상을 일깨우는 돼지 메이저는 마크르스를, 혁명을 주도한 돼지 나폴레옹과 스노볼은 스탈린과 트로츠키를, 스스로를 혹사 시킬 정도로 우직하게 일만 하는 말 복서는 프롤레타리아트를, 동물들이 죽어서 가는 '슈거캔디 마운틴'이라는 신비로운 나라가 있다고 주장하는 갈가마귀 모제스는 러시아정교를 상징한다.
오웰은 <동물농장>을 통해 원대한 이상과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된 혁명(러시아 혁명)이 본래의 목적을 잃고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혁명을 주도한 세력이 새로운 독재 계급으로 출현하면서, 본래 독재자를 몰아내고 평등 사회를 건설하려는 혁명의 이상은 허탈하게 깨어지고 만다. 모든 혁명이 실패로 마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숭고한 이상으로 시작된 혁명이라 할지라도 그 이상이 인간의 본성(권력욕과 탐욕)을 넘어설 수 없다. 민중의 무지는 혁명 주도 세력에게로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낳고, 집중된 권력은 반드시 독재로 이어진다. <동물농장>은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라고 해설한다.
매너농장의 혁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또다른 요인은 동물들의 무지이다. 매너농장의 동물들은 반란(혁명)을 꿈꾸었지만, 반란 "이후"의 삶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동물농장>이 풍자하고 고발하는 주요 인물들 중에 가장 문제 인물은 어쩌면 복서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내가 좀 더 일하지", "나폴레옹은 항상 옳다"는 신념으로 죽도록 일만 했던 순진무구한 "복서"는 해방을 내세우며 새롭게 권력을 잡은 추악한 돼지들과 그 동조자들에게 배반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의 무지와 선량함은 오히려 진실을 외면하게 했고, 독재를 방조하고 그 세력을 더욱 견고히 하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동물농장>이 내게 가르쳐준 가장 뼈아픈 진실은 성공한 혁명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부패한 인간의 본성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그 어떤 혁명도 결국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것. 아무래 숭고한 정신을 가지고 시작된 혁명이라 해도 권력과 부가 집중되기 시작하면 혁명을 주도했던 이상(목적)이 독재를 견고히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부패한 인간의 본성을 견제하며, 숭고한 이상을 이 땅에 실현하는 길은 한 번의 성공한 혁명이 아니라, "끊임없는 운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홍익출판사에서 발간한 <동물농장>은 구성이 풍성하다. 각 장마다 번역자인 안경환 선생님의 "해설"이 덧붙여 있고, 부록에는 오웰과 그의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동물농장>의 발간을 염두에 두고 쓴 오웰의 서문과 에세이, 그리고 번역자와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러시아 혁명을 고발한 <동물농장>이 오늘날까지 '전쟁의 승리나 원자탄보다 더 깊이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뿌리박은 인류의 문화자산"으로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동물농장(권력의 독재)의 삶이 여전히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동물농장"의 숭고한 이상이 변질되는 것에 절망할 모든 이들에게 "역사는 이상주의자의 쓰라린 좌절을 통해 결국은 진보하니까", "우리는 이상주의를 폐기할 것이 아니라, 더욱 날카롭게 이상주의의 칼날을 버려야 할 때"라는 안경환 선생님의 말을 전하고 싶다. 고전이 왜 고전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주었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