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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 태양과 청춘의 찬가
김영래 엮음 / 토담미디어(빵봉투)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문학에서 받은 충격,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꾸어 놓을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문학의 첫 충격은 카프카의 <변신>이다. 카프카의 <변신>이,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고 있을 때 느닺없이 얼굴로 날아든 공이었다면, 그래서 너무 놀라 무엇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면, 두 번째 문학적 충격을 안겨주었던 카뮈의 <이방인>은 얼굴을 정통으로 강타하는, 그래서 얻어맞은 자리에 그만 주저앉게 만들었던 강한 고통이었다. 그것은 지독한 것이었다. <시지프의 신화>에서 카뮈는 "이 운명은 의식을 하게 되는 드문 순간에 있어서만 비극적이다"라고 했다. 내게는 <이방인>을 만났던 그 시간이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의식하게 된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부조리한 세상이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함에 처음 눈 뜬 순간, 겨우 뜬 눈을 다시 질끔 감아버릴 만큼 그 거대한 정체에 질려버렸다고나 할까. 카뮈가 보여준 세상(부조리)은 내 힘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제대로 덤벼보기도 전에 압사 당해버린 꼴이다.
그래서 그건 아마도 카뮈의 <이방인> 때문이었을 것이다. 십대의 내 친구들은 자주 울었다. 성적이 떨어져도 울고, 친구와 싸우고도 울고, 선생님께 야단을 맞고 울고, 좋아하는 영화배우나 가수 때문에도 울었다. 난 그런 일로 울어본 적이 없다. 그저 웃기만 하는 내게 친구들은 '지나치게 낙천적'이라고 핀잔을 주면서도 그런 모습을 장점으로 받아들였다. '염세주의', '비관주의'라는 말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지나치게 낙천적으로 보였던 것은 사실 지나치게 비관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카뮈의 <이방인>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베르 카뮈>는 카뮈와 사랑에 빠진 한 작가가 카뮈 탄생 100주년을 기념으로 엮어낸 책이다.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는 카뮈의 문장들을 모은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열 개의 단어를 묻는 질문"에 카뮈는 "세계, 고통, 대지, 어머니, 사람들, 사막, 명예, 비참, 여름, 바다"를 말했다고 한다. 이 책을 엮어낸 이는 이 열 개의 단어를 테마로 카뮈의 문장들을 모으고 '열 개의 거울에 비춰본 카뮈'라는 제목을 달아놓았다. 제2부는 카뮈의 대표작을 (부분적으로) 읽으며 그의 작품을 음미해보는 시간이었다. <이방인>, <페스트>, <시지프의 신화> 中 '시시포스의 신화'를 다루며, '카뮈를 읽다'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제3부는 '카뮈를 만나다'는 강연, 편지, 인터뷰, 연대기, 여러 증언들을 통해 카뮈의 삶과 시대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알베르 카뮈>에서 내가 건져낸 의미 있는 발견이라고 한다면, <이방인>에 대한 작가 자신의 견해를 처음 접해보았다는 것이다. 카뮈는 <이방인>의 서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어떠한 영웅적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한 인간을 <이방인> 속에서 읽는다면 크게 틀린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좀 역설적인 뜻에서이지만, 나는 내 인물을 통해서 우리들의 분수에 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를 그려보려고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211). 읽은지 오래인 내 기억 속의 뫼르소는 그저 눈부신 태양 빛 때문에 방아쇠를 당긴, 그러고도 자신을 변호하기를 귀찮아 하는, 반항하지 않는 반항아로 저장되어 있었는데, 뫼르소가 카뮈에게는 그리스도였는가! 이 한마디 말이 '뫼르소'라는 인물을, <이방인>이라는 책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카뮈는 뫼르소를 한마디 말로 이렇게 요약한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209). 유대인과 로마인의 법정에서 극악무도한 죄인이었던 그리스도처럼,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바로 다음 날 해수욕을 하고 코미디 영화를 보고 여자와의 정사에 골몰하는 이 남자는 법과 종교의 논리 안에서 극악무도한 죄인으로 편명된다. 카뮈는 그의 유죄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다만, 이 책의 주인공은 유희에 참가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선고를 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자기가 사는 사회에서 이방인이며, 사생활의 변두리에서 주변적인 인물로서 외롭고 관능적으로 살아간다"(209-210).
사실 카뮈의 것이 "문학적 충격"으로 기억될 만큼 강렬했다고 고백하기는 했지만, 나는 그동안 카뮈를 잊고 살았다. 이 책은 카뮈와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것이다. (순전히 주관적인 견해이겠지만) 카뮈를 사랑하고, 그래서 "더"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있겠지만, 카뮈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 문장들이 오히려 지루할 수도 있겠다. 전체적으로 글들이 조각나 있다는 인상 때문이다.